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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참고 양보하고 싶지 않다.

by 부끄럽지 않게

어렸을 때부터 철학을 좋아했다.

삶이란 무엇을 성취하고 얻느냐가 아닌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올곧은 태도와 행동으로, 나도 행복하고 타인도 행복할 수 있길 바랐다.

그래서 불교의 '공(空)'을 좋아했고,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에 따라 살고자 했다.


새로 입주한 아파트에 하자가 발생했다.

냉장고 정수기에 관을 연결하기 위해 설치해둔 배수 드레인에 물이 찼고,

보일러를 켤 때마다 그 물이 바닥 마루 아래로 나와 마루가 들떴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보일러 누수 가능성이 있다고 해,

아파트에 하자 보수를 신청했고

보수팀에서 점검 후 보일러 누수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설치된 로봇청소기와 식기세척기의 문제일 수 있으니

설치 기사를 불러 확인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식기세척기와 로봇청소기 설치 기사를 불러

문제 여부를 확인했으나 문제는 없었다.

다시 아파트 하자 보수팀에 연락해,

식기세척기와 로봇청소기 모두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했다.


이때부터 논쟁이 시작되었다.

문제의 원인은 알 수 없는데,

문제는 발생한 상황에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아파트 측에서는 보일러에 문제가 없으니 자신들의 책임은 아니라며,

바닥 보수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나대로 억울했다.

식기세척기와 로봇청소기를 설치한 외에

배수 드레인에 물이 찰만한 하자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데

죄없이 죄값을 치뤄야했다.

한참을 서로 같은 말만 반복했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기계처럼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서로 간의 의견 간극은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결론을 맺지 못한 체 통화는 마무리되었고,

대화하며 마음을 너무 쓴 탓에 순간적으로 심한 두통이 일었다.


불현듯,

나 스스로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예전이었다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좋게좋게 이야기를 풀어 갔을텐데

이제는 내 잘못이 아닌 일에 조금도 손해보고 싶지 않았다.


무엇이 나라는 사람을 이렇게 바꿨나.

대화하며 상대방의 처지와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갔는데.

더 슬픈 것은,

예전이라면 이런 생각이 떠올랐을 때

'그래, 이렇게 살지 말자.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지'

하며 나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을텐데

이제는 굳이 그런 노력을 하고 싶지 않다는 점이다.


나는 왜 이렇게 변한 것인가.

무엇이 옳은 것일까.

머리 속에 계속 의문이 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더이상 참고 양보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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