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화가 잘 되지 않는 편이다.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거의 허기를 느끼지 않는다.
아내는 대화에서 최소 언어 사용을 지향한다.
정확하고 간결하게 사실을 전달하는 것을 중시한다.
우리의 각각의 특성이 만나
어제 나는 아내의 학교 사람들에게
이 시대의 가부장 남편이 되었다.
"회식 장소 왔어.
끝나면 거의 8시는 되야 집에 도착할 것 같은데
저녁 먼저 챙겨 먹어"
"자기, 집에 와서 밥 따로 또 먹을 거지?
그럼 나 자기 올 때까지 기다릴래.
아까 점심 먹은 게 아직도 소화가 안되서
자기 집에 오면 같이 먹어도 될 것 같아.
먹고 싶은 메뉴 있으면 미리 이야기 줘!
자기 오기 전에 미리 포장해 둘게"
"괜찮겠어?
아냐, 그럼 내가 집에 갈 때
포장해서 갈게"
8시 정도는 되야 집에 올 수 있다던 아내가
7시가 조금 넘었는데 집에 왔다.
회식 너무 일찍 빠진 것 아니냐고 물어 봤더니
다 알아서 잘 하고 왔다 한다.
평소 부연설명하지 않는 성격인 걸 알아서
걱정돼 어떻게 말하고 나왔냐 물으니,
"저, 먼저 일어나도 될까요?
남편이 집에서 밥을 안 먹고 저 기다린다고 해서
먼저 가야할 것 같아요"
"응.....?? 그게 끝....??"
"응, 맞잖아.
내가 포장해서 오기로 했으니
자기가 밥 안 먹고 나 기다리고 있는 거.
정확하게 잘 이야기했는데?"
"그래..
학교 선생님들이 다른 말씀은 없으셨어..?"
"별 말씀 없으시던데?
아, 한 분이 조심스럽게
남편이 안 차려주면 밥 안 먹는 스타일이냐고 물으시던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