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사랑하는 법

우리는 아직도 사랑을, 사람을 모른다.

by 잔잔

씬/01# 길 한복판(저녁)

퇴근 인파가 흩어지는 골목. 가로등 아래, 죽집 불빛이 유독 밝다. 한 남자가 간판을 바라보고 있다. 오늘 아내가 감기 몸살 기운에 아프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던 남자는 운이 좋다고 생각을 한다. 그 죽집 문을 열고 들어가서 아내를 위한 닭죽 하나를 포장한다. 그의 걸음은 가벼워 보인다.


씬/02# 집


남편은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자신의 겉옷을 벗어 식탁 의자에 아무렇게나 걸친다. 부엌 싱크대로 향한다. 손을 씻고 사온 죽을 비닐봉지에서 꺼내든다. 그리고 냄비를 꺼내 내용물을 붓는다. 집에 오는 동안 찬 바람에 식어버린 죽을 다시 데울 참이다. 가스레인지의 치익, 퓨슉, 소리가 경쾌하다. 냄비에는 열기가 더해지고 죽은 작은 공기방울들이 올라오며 끓기 시작한다. 냄비 안에서 죽이 천천히 움직인다. 남편은 접시에 죽을 덜고, 식탁 한가운데에 놓는다. 수저를 꺼내 접시와 방향을 한 번 맞추고, 다시 조금 옮긴다.


안방 문 앞. 남자는 손잡이를 잡고 잠깐 멈춘다. 문을 조심스럽게 연다. 아내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린 채 누워 있다. 미간이 잔뜩 접혀 있다.


남편/ (걱정스러운 듯) 내가 죽 사 왔어, 나와서 먹어.


아내는 몸을 느리게 일으키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식탁 위에는 그의 정성이 놓여있다. 아내는 입 안이 까끌거려 그 무엇도 먹고 싶지 않았지만 의자에 앉아 애써 숟가락을 들어본다. 하지만 죽을 입 안으로 넣어 씹고 있자니, 아무래도 속이 울렁거리는 탓에 목 뒤로 넘기기가 힘겹다. 아내는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 채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처진 몸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남편에게 말한다.


아내/ (작은 목소리로) 미안해요, 도저히 먹기가 힘들어요.


다시 안방으로 향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남편은 아내의 손목을 잡아챈다


남편/ 아니, 당신 아프잖아. 이럴 때는 뭐라도 먹어야 하는 거야. 그래야 얼른 낫지.


아내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다가 의자에 걸쳐진 남편의 옷을 본다. 정리도 안 한 채 엉망으로 걸쳐져 있다.


남편/ 그러지 말고 조금이라도 먹어봐. 한 숟가락이라도.


아내/ 지금 배가 안 고파요.


남편/ (조금 날카로워진 말투로) 사 온 사람 성의가 있지, 한 숟가락이라도 들라니까?


아내/ (짜증을 내듯)... 당신 왜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해요?


남편은 아내의 말에 황당하였다. 힘들게라니. 아픈 사람을 생각해서 지금까지 죽을 끓인 내가? 힘들게 한다니.




우리는 늘 사랑을 건너며 살아간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친구라는 온기로, 그리고 연인이라는 달콤하면서도 쉽게 어긋나는 관계로. 그렇게 서로의 삶 속으로 스며들며 살아간다. 사랑에 빠지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한순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관계는 다르다. 관계는 만들어지는 것보다, 지켜지는 일이 훨씬 더 연약하다.

누군가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조심스럽다.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그 사람의 하루와 몸과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종종 하나의 병이 생긴다. '이심전심병'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의 마음이 나의 마음과 같기를 바라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음이 통하기를 기대한다. 이 병은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가 깊어질수록 더 짙어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증상은 비슷하다. 상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면서도, 나는 이미 그 사람을 다 안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니까, 나의 기준이 곧 당신의 기준일 것이고, 나의 방식이 곧 당신에게도 편안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사랑에는 분명 배려와 존중이 필요하지만, 이 착각은 사랑을 아이러니하게 만든다.

집에 돌아와 식은 죽을 다시 데우고, 접시를 놓고, 수저의 방향을 한 번 더 맞추는 그 짧은 동작 속에는 분명 아내를 향한 마음이 담겨 있다. 남편은 아내가 아픈 몸으로 제대로 된 한 끼도 먹지 못했을 것이라 짐작했고, 죽을 사 왔고, 다시 불 앞에 서서 밥상을 차렸다. 아내 역시 그의 노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내의 몸은 지금 죽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입 안은 까끌거리고, 속은 울렁거린다. 오히려 먹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하지만 남편은 누워 있고 싶어 하는 아내를 붙잡는다. 아프니까 먹어야 한다고, 이럴 때는 뭐라도 먹어야 낫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은 아내의 지금 상태를 지나쳐 간다. 지금 먹을 수 있는지,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는 묻지 않는다. 이미 정해 놓은 답을 품은 채, 아내를 설득한다. 아내는 결국 짜증을 낸다. 그는 분명 아내를 위해 움직였지만 죽집에 들어가기 전에 단 한 통의 전화로 확인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이 장면은 사랑이 서로를 지나쳐 가는 장면이다.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충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상대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긋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면 쉽게 착각한다. 나의 기준이 곧 당신의 기준일 것이라고, 내가 옳다고 느끼는 방식이 당신에게도 편안할 것이라고. 알지 못하면서도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실수를 한다. 사랑은 소통이다. 상대가 원하지 않은 배려는 배려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존중이 필요하다. 나와 다른 몸, 나와 다른 감각, 나와 다른 속도를 가진 사람으로 상대를 다시 바라보는 일. 나에게 옳은 것이 반드시 당신에게도 옳지는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 어쩌면 사랑의 진짜 얼굴은 존중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우연한 서점 / 광안리 북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