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문산 말고...
오늘 난
너에게 문산포종이란 차를 내려주고 싶었다.
"문산포종? 그게 어떤 찬데?"
"대만 오룡차 중 하나인데, 살짝 풀향기도 나고, 꽃향기도 나고. 암튼 마셔봐"
내가 찻잎을 건네자, 너는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아본다.
"(당황) 아니이... 그렇게 코를 차에 갖다 대지는 말고..."
"아 미안. 그치만 아무 냄새도 안 나는 거 같아서.."
그러더니, 손으로 휘휘 허공을 저으며
냄새를 잡아보려고 하는 너.
갑자기 귀엽다.
"흠. 쪼으끔 나는 거 같다. 녹차랑 비슷한 거 같은데?"
"녹차 아니고, 오룡차야"
"오룡차랑 녹차가 어떻게 다른데?"
"만드는 방법이 다르지. 녹차는 살청이라는 과정을 통해 찻잎이 발효되는 것을 딱! 막아주거든"
"살청????? 와우. 좀 살벌하게 들리는데"
"하. 일리는 있어. 죽일 살자 쓰거든"
"에에???"
"죽일 살殺. 푸를 청靑. 한 마디로 ‘푸른빛을 죽인다’는 뜻. 찻잎에 들어 있는 산화효소에 열을 가해, 효소 작용을 멈추게 하는 작업이야"
"그래애애애?"
네가 날 물끄러미 본다.
감탄하는 건가?
나 오늘 잘하고 있는 걸까?
"근데 말야. 전부터 느낀 건데. 너 설명할 때 보면, 항상 눈이 짝짝이다?!"
이건 또 뭔 소리…?
"오른쪽 눈이 완전 커져. 뭐랄까. 너의 그, 논리적인 좌뇌가 막 활성화 되나 봐"
뭐지? 어쨌든 칭찬은 아닌 것 같다.
"차나 마셔"
때마침 물이 끓는다.
나는 다호 뚜껑을 열고, 주전자에서 끓고 있는 물을 조용히 붓는다.
쪼르르르르
물 따르는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예뻐진다.
제발 너의 경우도 그러길 바라.
다호의 물을 비워내고,
찻잎을 조심스레 넣었다.
"그 물은 왜 버리는 거야? "
"다호를 데워야지. 찻물의 따뜻함이 유지되도록"
"(끄덕끄덕) 역시 김유리의 모든 행동엔 이유가 있었군"
왜 저러는 거지?
좀 신경 쓰인다.
몰라 몰라. 난 오늘 그저 너에게, 기가 막히게 멋진 문산포종의 맛을 맛보게 하고 싶을 뿐.
집중해 보자.
하나 둘 셋... 넷...
지난번처럼 놓치지 말아야지. 집중 집중.
오늘은 마음속으로 40 정도만 세자.
"근데 말이야, 문산포종이라면, 문산에서 나는 차를 말하는 건가?"
"응"
"파주 옆 문산?"
"야 바보야. 아까 대만 오룡차라고 했잖아. 근데 웬 파주 옆 문산? 내 말 듣는 거야?"
침묵이 흐른다.
아차, 나도 모르게 발끈했구나.
창피하다. 차를 내리며 발끈하다니.
"왜 화를 내고 그래..."
"화내는 게 아니구."
"화내고 있잖아 지금..."
"화내는 게 아니라니깐!"
이런.
정말 화를 내고 말았네.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게다가 진짜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또 숫자를 까먹고 말았다.
40까지 세고 차를 내려주려고 했는데. 아 씨..
시무룩한 내 표정을 보더니, 이 남자, 걱정한다.
"... 진짜 화 난 거야?"
"... 망했어. 너랑 얘기하다가, 차 넣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까먹었어"
서둘러 다호의 찻물을 투명한 유리 숙우에 내린다.
근데 빛깔은 참 곱구나.
마침 창문에서 햇살이 들어, 유리그릇 안의 찻물이 투명하게 빛난다.
"색깔은 되게 예쁜데! (킁킁) 와!! 진짜 풀향기, 꽃향기 장난 아니다 응?"
괜히 호들갑을 떨어주는 너.
"따라 줘 봐 얼른. 맛있을 거 같아"
쪼르르르.
찻물이 너의 잔 속으로 흘러간다.
"지난번에 니가, 절대루 원샷하지 말라고 했잖아. 이번엔 천천히 음미하며 마셔볼게“
그러더니 호로록. 호로록.
조심스럽게 찻물을 조금씩 입안에 흘려 넣는 너.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니?
"맛있다. 이런 맛 첨이야. 정말. 진짜로"
"진짜? (그럴 리가) 진짜 맛있어?"
"응.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차 처음이야. 와! 김유리 최고"
그 말에 조금 마음이 풀려
나도 한 모금 따라 마신다.
호로록.
으악!!!!!!!!
퉤퉤퉤!!!!
최영민 너 미맹이니?
어떻게 이렇게 떫게 내려진 차를 맛있다고????
하지만
말없이 나를 보는 너.
나도 너를 본다.
"유리야
난 네가 내려주는 차는
전부 다 맛있어"
우리 사이를
향긋한 차향이 채운다.
PS
너에게 오늘 맛있는 문산포종을 내려주고 싶었어.
왜냐하면.
지난번 타이베이에 갔을 때,
갑자기 문득, 네 얼굴이 떠오르게 만든 차였거든.
닮았어. 은은한 풀향기랑 꽃향기 나는 이 차랑. 너는.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