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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m Essay Jun 28. 2018

신포도

by 연도


방 안의 정적을 깨고 큰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한 치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도대체 뭐가 그리 잘못되었기에 큰소리를 치는지, 나 또한 언성을 높여가며 말했다.


  “나는 꼭 이 길을 택할 거야. 엄마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 도대체 이유가 뭐야? 왜 그렇게 열을 내면서 하지 말라고 하는 거냐고? 제발, 제발! 그냥 내버려 둬.”

  “그렇게 화가가 되고 싶니? 정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니? 보나마나 돈도 못 벌고 빌빌거리겠지. 어떤 엄마가 아들이 그렇게 살기를 원하겠니?”

  “나는 돈 벌려고 화가가 되려는 게 아니야. 그림을 그리는 일, 그 자체가 좋아. 내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좋을 뿐이라고. 그리고 엄마가 알아? 경험해 봤어? 그냥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들로 내 꿈을 펼치기도 전에 포기하라는 건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벽이랑 대화하는 것 같았다. 내 말은 부메랑처럼 나한테 날아 돌아올 뿐이었다. 난 그냥 다른 애들처럼 ‘알겠어요’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어차피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이니까. 그러나 그 상황 또는 누군가와의 관계가 어긋날까봐 싸움을 피한다면 그건 멍청한 짓이다. 싸움을 피하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싸움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상황이나 관계를 악화시키기도 하지만 호전되게 하는 것 또한 싸움이니까.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몸을 던졌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스케치 노트와 연필이 어질러져 있는 책상 위에서 손을 휘저어 지갑을 찾고 밖으로 나왔다. 막상 갈 데가 없었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하릴없이 시간과 버스들을 흘려보냈다. 한 시간이 지났을 즈음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을 흘려보냈는지 알 수 없는 버스를 잡아탔다. 


버스 안은 제법 한산했다. 앉으면 그냥 주저앉아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일까. 나는 자리에 앉지 않고 서서 가기로 했다. 버스 귀퉁이에서 눈알을 굴렸다. 내 눈높이에 버스노선표가 붙어있었다. 나는 길거리에 지나가는 예쁜 여자를 보듯 그것을 훑었다. 버스는 커브를 돌 때마다 휘청거렸다. 그에 따라서 난 춤을 추듯 팔다리를 흔들었다. 팔이 뻐근해서 버스 좌석 손잡이와 버스 위에 달린 손잡이 사이를 오갔다. ‘이번 정류장은 여의도공원입니다’ 나는 뒷주머니에서 버스카드를 꺼내 단말기에 가져다댔다. ‘삑─ 하차입니다’ 


공원에는 소풍 나온 가족들과 산책하는 커플들이 털 뭉치처럼 엉켜 있었다. 그들 사이의 틈은 다닥다닥 붙어있는 번화가의 건물 틈 같았다. 자그마한 틈 사이를 헤매며 한적한 곳을 찾아다녔다. 틈에 끼어 더는 몸이 웅크려질 수 없을 즈음,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있는 곳을 발견했다. 나는 그 틈보다 더 작은 틈을 비집고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 순간 파─하고 숨이 트였다. 강을 등지고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명은 앉아서 기타를 치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 나는 눈을 감았다. 바람을 타고 노랫말이 귀에 박히듯 흘러들어왔다. 노래가 끝나고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노래 잘 들었어요. 방금 부른 노래 제목이 뭐죠?”

  “아, 잘 들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임재범의 비상입니다.”


다음 곡을 부르려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나는 계속 걸었다. 입구에서 멀어질수록 사람들과 나 사이의 틈은 벌어졌다. 사람들의 출몰은 점점 줄어들었다. 해는 어느덧 잠자리에 들려고 하늘을 이불 삼아 누워있었다. 나는 강가에 다가가 허리를 숙여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강물이 흔들렸다. 강물에 비춰진 나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매섭고도 차가운 바람이 나를 만지고 지나갔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다행히 좌석 하나가 비어있었다. 나는 좌석에 몸을 기대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많이 걸은 탓일까, 몸이 나른했다. 눈을 한번 깜빡일 때마다 정류장을 서너 개씩 건너뛰고 있었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위아래도 없나. 너거 부모가 그리 가르치드나?’ 할아버지 한 분이 내 좌석손잡이를 부술 듯이 잡으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잠에 취해 있었다. 


‘이번 정류장은 신림역입니다.’ 아─. 버스에서 내렸다. 집을 지나쳤다. 집까지 걸어갔다. 거리의 자동차들은 눈에 불을 켠 채 나를 한 번씩 훑고 지나갔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게 좋았다. 그리고 잘 그렸다.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줄곧 학교에서 상을 받아오곤 했었다. 어머니도 좋아했다. 내가 이렇게 진지하게 내 꿈을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그전 까지는 그냥 단순히 자식의 재롱으로 보고 있었단 말인가? 휴대전화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여보세요? 왜 전화했냐?”

  “뭐? 왜 전화해? 오늘 저녁에 농구하기로 했잖아!”

  “그랬나? 미안. 너 어디야?”

  “난 이미 농구장에 왔지. 정신 나간 새끼. 온종일 연락도 안 받고 뭐했냐?”

  “그냥 있었어. 야, 빨리 나갈게. 몸 풀고 있어라.”


트레이닝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나왔다. 달은 출산기가 다가온 임산부의 배처럼 차 올라 있었다. 전봇대 밑에는 몸에 얼룩이 진 길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뒤지고 있었다. 고양이를 보자 요즘 젊은이들이 떠올랐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 좀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살아가는. 마치 짐승이 생존을 위해 먹이를 사냥하는 듯, 그냥 생존하기 위해 취업하는, 취업이라는 먹이가 인생의 목표가 된 그런 젊은이들이…. 농구장에 가까워질수록 공 튕기는 소리가 커졌다. 하얀 조명은 뿌연 먼지를 밝히고 있었다. 농구장 주변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컴컴했다. 


  “왔냐? 늦었으니까 음료수는 네가 사라?”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마라. 딱 10분 늦었다.”

  “그럼, 내기하자. 10점 먼저 넣기.” 우리는 공만 보면 달려드는 개처럼 뛰어다녔다.

  “야, 신포도 얘기 아냐?”

  “뭐?”

  “이솝 우화 여우 이야기 말이야.”

  “알지. 근데 왜?”

  “아까 ‘그냥’이 그냥이 아니었어. 엄마랑 싸웠다. 화가가 되겠다고 하니까 열을 내시더라고. 그래서 나도 열을 내면서 말했지.”

  “그래서? 이해해 주셨어?”

  “아니, 내가 재능이 있냐며 돈 못 버니까 하지 말라는 식이었어. 근데 그건 현실과 타협하라는 말이잖아? 결국 현실에 안주하고 꿈에서 도망치는 것밖에 더 돼? 중도포기도 아니고 그냥 뒷걸음질 치는 거잖아?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랑 뭐가 달라? ‘저건 분명 신포도일거야.’하면서 자기위안 하는 거라고. 자기 꿈에 대해서 도전해 보지도 않은 것들이 하는….”

  “진성아, 네 말도 맞지만 세상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잖아. 그렇지 않냐?”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는데 꿈을 꿨다. 나는 스케치노트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꿈에서의 감각이 너무나 선명했다. 불을 켜고 책상에 앉아서 스케치 노트에 연필을 끄적거렸다. 꿈에서 본 무언가를 생각해보려 안간힘을 썼다. 내 기억은 안개에 쌓인 것처럼 희미하기만 했다. 그것을 생각해 내려 하면 할수록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슨 동물의 형체였던 것 같았다. 다시 불을 끄고 누웠다. 내 시선은 자연스레 형광등에 꽂혔다. 형광등의 기다란 관을 따라 잔광이 남아있었다. 그 검은 것은 다 쓰고 남아버린 쓸모없는 찌꺼기 같았다. 난 그 찌꺼기를 오랫동안 바라봤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제 형광등을 너무 오래 본 탓일까, 내 눈에도 잔광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눈을 몇 번 깜빡이고 타박타박 거실을 돌아다니다가 물을 따라 마셨다. 차가운 물이 몸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다가 작은 숨이 되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머리가 얼얼했다. 얼굴에 물을 흠뻑 적셨다. 내 얼굴은 물을 흡수하지 못하고 턱 밑으로 계속 떨어뜨렸다.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다. 뉴스에는 세상의 온갖 불행을 보도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자살, 누군가의 살인, 누군가의 강간, 정치판의 싸움 등이 끊임없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필요 이상의 불행이 계속해서 눈과 귀를 통해 내 뇌에 주입되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끄고 소파 끄트머리에 머리를 대었다. 간밤의 꿈을 떠올렸다. 기억이 더 희미해진 것 같다. 아무 동물이나 생각나는 대로 읊었다. ‘고양이, 토끼, 너구리, 여우, 낙타, 사자.’ 마찬가지였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가 어젯밤에 끄적거린 스케치 노트를 보았다. 동물이라기보다는 여러 개의 작은 원의 집합체 같았다. 알람이 울렸다. ‘영화’ 스케치 노트를 책상 위에 던지고 옷을 입었다.


  “아우! 추워. 야, 안 춥냐? 날이 갑자기 이리 추워지냐?”

  “그니까. 겁나게 춥다. 영화시간 얼마나 남았냐?”

  “한 삼십분 정도?”

  “어디 들어가 있을래?”

  “그래, 그러자 이러다가 얼어 죽겠다.”


우리는 근처에 있는 코인노래방에 들어갔다. 노래방에 들어서자마자 먼지를 머금은 공기 때문에 기침이 났다. 안은 각자의 사연을 담은 노래들로 넘쳐났다.


노래 대여섯 곡을 부르고 영화관에 들어갔다. 영화 상영 전, 광고가 참 많았다. 현대인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레 그리고 많이 광고에 노출되어 있는 것 같다. 이러다가 무의식적으로 물건을 사진 않을까 걱정됐다. 영화는 전형적인 권선징악 영화였다. 집에 강도가 들어 강도를 물리치는. 문득 우리 집에 강도가 들면 무엇을 훔쳐갈지 또 나는 무엇을 훔치지 못하게 할지 생각했다. 현금? 통장? 스케치노트? 나는 아마도 책상을 사수할 것 같다. 버스에 타기 전 친구는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보지도 않고 그것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녀석은 ‘간다!’ 한 마디 하고 버스를 탔다. 


나는 홀로 번화가를 거닐었다. 사람들은 딱 세 가지의 표정을 갖고 있었다. 웃거나 찡그리거나 무표정이거나. 난 휴대폰을 얼굴 가까이 가져다댔다. 화면에 비친 내 얼굴도 저들과 다를 바 없었다. 해는 아직 잠잘 생각이 없었다. 높이 떠올라 아래를 굽어보고 있었다. 고개를 치켜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손을 눈썹위로 가져다 대었다. 미처 가리지 못한 몇 줄기의 빛이 손 틈새로 새어 나왔다. 아찔했다. 내 시야는 비 오는 날 자동차의 유리창처럼 흐릿해졌다. 


병원 침대에 누운 채로 가벼운 빈혈이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가벼운?’ 난 태어나서 빈혈을 겪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스트레스가 원인인가? 찝찝한 마음을 접어두고 원무과에서 병원비를 지불했다. 길가로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라디오를 듣던 기사 아저씨는 정겨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디로 모실까요?” “신림역이요.” 택시 안은 청년실업이 심각하다는 라디오 소리와 그에 찬동하는 기사 아저씨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집에는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흔히들 집은 포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 집에서 포근함이라거나 따뜻함이란 걸 느껴본 적이 없었다. 다만 여관 같다는 느낌은 들었다. 방에 들어가 책상을 뒤졌다. 어지러이 널브러진 잡동사니 속에서 스케치노트와 연필을 찾아 현관에 앉아서 운동화 끈을 동여맸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비행기를 탄 느낌이 들었다. 특히 내려갈 때. 엘리베이터가 하강할 때의 느낌은 비행기가 상승할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간질간질하면서도 답답하고 뭔가 거북한 그럼 느낌. 그것은 아주 빠르고도 안전히 날 저 아래로 끌어당겼다. 


집 앞 공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공원 가에 있는 나무 벤치에 앉아서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원은 참 많은 일을 해내는 공간이다. 누군가는 연애의 시작을, 누군가는 이별을, 말하려면 끝도 없다. 눈을 감고 한 번 더 공원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여러 이미지가 겹치다가 한 가지 이미지가 선명히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을 공원에서 찾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주 굵직하고 커다랬다. 손과 발이 아주 길었다. 머리카락도 풍성하다 못해 부스스했다. 그리고 공원의 그 어떤 것보다도 푸르고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가 그리 자신 있는지 땅에 다리를 단단히 박고서 올곧이 하늘을 향해 머리를 쳐들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4개의 페이지에 나누어 그렸다. 그것은 태양을 가로막고 우뚝 서있었다. 마치 태양에게 맞서기라도 하려는 듯이. 태양은 기꺼이 그것의 장단을 맞춰줬다. 점점 땅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명함을 꺼냈다. ‘(주)여름과 바다 디자인부 부장 최태석’


집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산책을 했다. 평소에는 잘 가지 않는 길을 택했다. 똑같은 동네였지만 느낌이 전혀 달랐다. 건물의 구조와 배치, 분위기마저. 마치 어느 판자촌 혹은 빈민가에 홀로 뚝 떨어진 것 같았다. 블록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어둠이 짙어졌다. 손이 축축해졌다. 손을 바지춤에 가져다대며 연신 땀을 닦아냈다. 네 번째 블록을 지나던 중 나는 주저 않았다. 블록 귀퉁이에서 복면을 쓴 사람이 방망이로 사람을 후려치고 있었다. 그는 맞던 사람의 저항이 수그러지자 땅에 떨어진 무언가를 줍고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그 남자가 날 봤을까? 아니야 날 봤으면 나도 맞아죽었겠지. 얼른 여길 뜨자. 빨리 도망가자.’ 나는 마약한 사람처럼 눈을 뒤집고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뛰었다. 숨이 찼다. 헛구역질이 나왔지만 다리를 멈출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아까 그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진이 빠져 나무 아래에 누웠다.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얼굴을 타고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집은 컴컴하고 적막했다.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는 뱀이 허물을 벗듯이 옷을 벗어 던지고 샤워기를 틀었다. ‘그 남자는 어떻게 될까? 경찰이 잡았겠지. 그 남자는 왜 그렇게 사람을 패고 있었을까? 원한? 돈?’ 눈과 귀를 박박 씻었다. 손으로 문지르다 샤워타월로 사정없이 문댔다. 샤워기를 더욱 세게 틀었다. 나의 때는 샤워기에서 나온 물들과 함께 하수구 속으로 소용돌이치며 사라져갔다. 


간만에 가족 모두가 모여 저녁식사를 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적당히 사람 사는 집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기어들어 갔다. 몇 년 만에 먹어보는 엄마의 요리였다. 여전히 맛은 형편없었다. 그래도 티내지 않고 잘 먹었다. 물론 밥을 먹으며 물을 한통 가까이 마셨으나, 괜히 마음속의 말을 입 밖으로 내면 싸움만 날 것이었다.


  “진성아 과일 먹어.”

  “아니, 나 안 먹을래.”

  “내가 들어갈까. 네가 나올래?”

  “아, 알겠어. 곧 나갈게 엄마.” 난 소파에 머리를 딱 붙이고 앉아 과일을 먹었다. 

  “아, 엄마! 왜 재미없는 뉴스를 보고 난리야? 딴 거 보자.”

  “가만히 있어봐 자식아.”


‘아홉시 뉴스 박희석입니다. 어젯밤 9시경 신림동에서 강도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경찰은 범행 동기를 돈을 위한 계획적 살인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어머, 우리 동네잖아? 어휴 무서워라. 무서워서 살겠니?”

  “걱정도 참. 엄마, 우리 돈 없잖아? 근데 포도가 왜 이렇게 셔? 시어도 참 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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