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어쩔수가 없다" 중
어제 밤에는 어쩔수가 없다 라는 영화를 봤다. 7700원인가 쿠팡플레이에서 결제해서 볼 수 있길래 (좋은 세상!) 잠이 오지 않는 새벽 1시에 결국 티비를 틀었다. (별 스포는 없지만 예민하신 분들은 주의)
박찬욱이 좋아하는 여러 은유들이 내가 보기엔 너무 직접적으로 자주 드러나있어서 오히려 조금 불편했다. 태양이나 햇빛에 대한 묘사라던가 치통에 대한 것들이 그랬다. 그러나 내 눈길을 사로잡고 정지 버튼을 눌러서 오랫동안 나를 생각하게 한 대사는 이 대사였다.
"실직당한 게 문제가 아니라, 실직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문제야"
ㅡ 이아라가 구범모에게 소리를 지르며.
구범모는 실직 자체를 문제삼으며 힘든 삶을 이어간다. 구범모는 좋은 오디오로 가득찬 방에서 음악만 듣고 늘어져, 제대로 씻지도 않은 채 여기저기 입사 지원서를 내며 구더기 같은 인생을 산다. 이아라는 그런 가정을 어떻게든 지켜내려 여기저기 면접을 보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힘쓴다. 이아라의 성욕을 채워줄 수 없는 남편 몰래 젊은 남자와 육체적인 바람을 피우기도 한다. 그러나 이아라는 구범모에게 계속해서 말해왔다. 나는 풀리지 않는 성욕이라는 문제가 있고 당신이 이걸 해결해주길 바란다고. 당신의 실직상태가 문제가 아니고 씻지 않고 무력하게 지내는것이 문제라고. 언제든 다시 재기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외쳐왔다.
이아라에게 나를 투영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불편함이 익숙해져버린 이아라의 모습을 봤다. 구범모처럼 씻지 않은 채로 구더기같은 삶을 살고 있다면 난 이미 그 집을 떠났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아라는 구범모에게 여러번에 걸쳐 설명하고 요구했다. 구범모는 그 문제를 해결할 줄 몰랐고 해결해주지 않았다.
모든 인간은 삶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만난다.
신생아로 태어난 순간 소리를 내서 울어야 하는 숙제에 직면한다. 그 이후에는 입만 벌리면 들어오던 양수가 아닌 빨아먹어야 하는 모유에 익숙해져야 한다. 또 씹어먹어야 하는 숙제도 곧 받는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걸어야 한다. 소리내어 엄마를 불러야 한다. 공부를 해서 성적을 내야하는 문제, 친구들 사이의 갈등을 소화하고 해결하는 문제, 또 사회에 나가서 성취해야하는 여러 문제를 마주친다.
문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은 많은 문제를 만나본 사람일 수 밖에 없다. 어릴때부터 더 많은 문제에 노출된 사람들은 성인이 되면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줄 알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어릴때 엄마를 잃고 사랑보다는 책임감 기반으로 나를 키운 가족들 사이에서 자란 나는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사람이 분명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느낀다. 여러 문제에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본질을 탐구하며 문제를 해결해왔다. 그러나 남편은 확실히 나와 달랐다. 문제를 해결할 줄 몰랐다. 문제를 인식하지조차 못했다.
남편에 대해 내가 좋게 평가한 부분은 항상 올바른 삶을 살아온 트랙이였다.
키도 크고 외모도 나쁘지 않았으며 SKY 상경대학을 졸업했고 우리 둘 다 대기업에서 만났다. 8학군지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고 두 부모님 모두 은퇴에 대비가 되어있는 기독교 신자인 등 가정환경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환경을 만드는 데는 남편이 스스로 일궈낸 부분보다, 남편의 어머니 아버지가 희생 또 희생을 해서 만든 부분이 훨씬 크다는 건 간과했다. 그러니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던거다. 이 환경은 절대로 평생 유지되지 않는데. 스스로 문제해결을 해 나가지 않는 한 그럴 수가 없는데.
모든 인간은 삶에서 문제를 만난다.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은 문제를 해결해 본 사람이다.
문제 없는 삶을 우아하게 살아온 사람은 큰 문제를 만났을 때 허둥대고, 프로답지 않으며, 감정적이다.
여러분이 만나고 있거나 만나려는 사람들이 삶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해왔는지 꼭 살펴보길 바란다.
난 그걸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던 잘못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