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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독서모임 Dec 13. 2017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꿈에서 태어났더니 갑자기 벌레로 변한 사내의 이야기

부조리, 실존주의 용어, 인생에서 삶의 의의를 찾을 희망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뜻한다.


“그레고리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침대 위에 거대한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갑각류의 딱딱한 등을 대고 누워 있었으며 머리를 조금 들자 활 모양의 마디들로 나누어진 갈색을 띤 반원형의 배가 보였다. 그 꼭대기에서는 침대 시트가 거의 미끄러져 흘러내리기 직전의 상태로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평소의 굵기에 비해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가 눈앞에서 힘없이 흔들거렸다.”


카프카는 [변신]의 첫 문단에서 완벽한 부조리를 그렸다. 그레고리 잠자의 변신 이유를 찾으려는 독자의 시도를 알고 있었다는 듯이 카프카는 자신의 흡입력을 함정으로 발동시켜 그들의 시도를 해제시킨다. 그레고리 잠자는 벌레가 된 뒤 인간 사회에서 인간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인간의 존재가 존재 자체만으로는 인정받을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린 현실. 돈벌레로 살아온 그레고리 잠자는 더는 돈을 벌 수 없는 존재가 되자 완벽한 벌레로 전락하게 된다.


이는 가족이라는 아주 작은 울타리에서도 똑같이 적용됐다. 가족이라는 성은 한순간에 벽이 되어 그를 사회로부터 그리고 인간성으로부터 서서히 고립시켰다. 그레고리 잠자는 벌레로 변한 순간부터 가족으로부터 자신이 벌레라는 사실을 확인받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저것으로부터 벗어날 길을 찾아야 해요.”라는 여동생의 말로 그레고리 잠자는 완벽하게 “그것=벌레’로 전락하게 되고 자신도 무너져내리고 만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새벽 그레고리 잠자의 방안에는 차갑게 식어버린 벌레 한 마리만 덩그러니 남게 된 것이다.


유대인은 오랫동안 유럽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전쟁은 하루아침에 그들을 유대인이라는 가면을 씌우고 축출해버렸다. 마치 그레고리 잠자가 하룻밤 사이에 벌레가 된 것처럼 말이다. 유대인들의 수많은 노력은 미풍에 흩어진 연기와 같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카프카는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런 일은 전쟁뿐만 아니라, 늘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카프카를 유럽 사회 속에 성공한 독일인으로 만들려는 아버지와 단지 작가로 살고 싶은 그의 욕망 사이에 차갑고 두꺼운 벽이 생기게 된다. 마치 그레고리 잠자의 등에 박혀 그를 썩게 만든 사과를 던진 그의 아버지는 아치 카프카의 아버지처럼 아들을 차갑게 대한다. 뿌리를 내리지 못한 사과는 그 스스로도 나무가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레고리 잠자를 썩게 만들었다. 카프카 또한 평생에 그의 뿌리로부터 부정받아야 했다.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할 수 없는 존재다. 우리는 끊임없어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며, 만약 그렇지 못하면 존재 자체가 부정받게 된다. 이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동안 절대 벗을 수 없는 굴레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내가 인간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네가 인간이라고 인정하는 것” 뿐이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 벌레가 되었다면, 나 자신 또한 벌레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벌레를 치우거나, 벌레가 인간임을 인정하는 것. 하지만 [변신]은 전자를 택했다. 아니, 어쩌면 인간은 모두 전자를 택할지도 모른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처럼 우리는 전자에 끌리는지도 모를 일이다.



글쓴이 (필명)

J.Young - 독서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10년 경력의 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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