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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bae Mar 24. 2017

두 평(1)

PD수첩 작업 이야기

지난 화요일에 방영된 PD수첩 '두 평에 갇힌 청춘'에 그림 작업을 했다.


그림 의뢰가 좋은 건, 평소에 그리지 않을 것들 - 평소라면 해보지 않았을 것들을 하게 만든다.

사실 그림 의뢰가 좋은 건, 무엇보다도 내 그림이 좋다 라고 말하면서 시작하는 그 한마디 때문.


서울살이가 이제 거의 십년을 바라보고 있다.


가장 맘고생하면서 살았던 서울에서의 2년은 재개발 지역에 있는 삼십 년도 다 된 다세대 주택이었다.

월급에서 큰 덩이를 떼어다 월마다 주면서, 두 평 자리 감옥에 있기는 싫어 치안 걱정을 앉으나 서나 해야 하고 - 불편함은 항상 몸에 바늘처럼 꽂혀 쫓아다니는 철거 직전 주택을 구했었다.

두 평이나 네 평이나 

신촌 번화가 바로 옆에 있는 왠지 보험사기꾼들만 있을 거 같은 병원 건물 뒷골목에 꼬불꼬불한 골목 모퉁이를 돌고 돌면 나오는 집이었는데, 집을 계약하고 나서는 집을 못 찾아 헤매기도 했었다.

그때의 나는 매일 퇴근길이면 도시의 시궁창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너무 우울했어요
제대로 인간으로서 대접받지 못하는 느낌  

닭장 그리는 일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화면에는 빨갛기만 했지만, 흔하게 마주치는 천국도 그렸다

 

그리기 너무 괴로웠던 건, 영상속에 그녀가 이야기 한 것과 같은 마음이었겠지



돈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라,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최소한의 삶은 사회나 국가의 제도가 보완해야 한다.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빵을 주라는 게 아니다. 대기업과 재벌로만 돌아가는 지금은 개인으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문턱과 벽들이 있다. 아래 인터뷰에 여학생이 이야기한 것처럼 집인 대전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지금처럼 불안한 삶을 살지 않았을 거다. 이건 지역 불균형이 불러온 기괴한 부동산 문제다.

그걸 단순히, 젊으니- 없으니 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일이 있을까.

방송을 다시 보면서 또 흥분하게 된다.


그림 작업은 몇 자의 텍스트와 대화만으로 그려졌지만, 그리는 동안 허름한 주택가를 걷던 내가, 2년마다 집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던 내가, 친구가 떠올랐다. 십년이 더 된 이 고질병은 아직도 스무 살 아이들을 붙잡고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 방영된 프로그램에 인터뷰이를 한 번도 만나보지 않았는데도, 크게 다르지 않게 그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자료사진이나 영상을 받은 적 없는데, 학생방이 내가 그린 이불이랑 너무 비슷해서 깜작 놀랬다.
일부러 "명품" 부동산도 넣었다. 왜 실외기는 그렇게 다들 덕지덕지 있는지
지하를 그리기 전, 스캔본은 색감이 너무 다르군
지하는 깨알같지만, 책상이랑 학생도 그렸다. (공용화장실도)


작업할 때 의뢰텍스트를 몇 번씩 읽고 다시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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