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작업 이야기
지난 화요일에 방영된 PD수첩 '두 평에 갇힌 청춘'에 그림 작업을 했다.
그림 의뢰가 좋은 건, 평소에 그리지 않을 것들 - 평소라면 해보지 않았을 것들을 하게 만든다.
사실 그림 의뢰가 좋은 건, 무엇보다도 내 그림이 좋다 라고 말하면서 시작하는 그 한마디 때문.
서울살이가 이제 거의 십년을 바라보고 있다.
가장 맘고생하면서 살았던 서울에서의 2년은 재개발 지역에 있는 삼십 년도 다 된 다세대 주택이었다.
월급에서 큰 덩이를 떼어다 월마다 주면서, 두 평 자리 감옥에 있기는 싫어 치안 걱정을 앉으나 서나 해야 하고 - 불편함은 항상 몸에 바늘처럼 꽂혀 쫓아다니는 철거 직전 주택을 구했었다.
두 평이나 네 평이나
신촌 번화가 바로 옆에 있는 왠지 보험사기꾼들만 있을 거 같은 병원 건물 뒷골목에 꼬불꼬불한 골목 모퉁이를 돌고 돌면 나오는 집이었는데, 집을 계약하고 나서는 집을 못 찾아 헤매기도 했었다.
그때의 나는 매일 퇴근길이면 도시의 시궁창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너무 우울했어요
제대로 인간으로서 대접받지 못하는 느낌
돈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라,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최소한의 삶은 사회나 국가의 제도가 보완해야 한다.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빵을 주라는 게 아니다. 대기업과 재벌로만 돌아가는 지금은 개인으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문턱과 벽들이 있다. 아래 인터뷰에 여학생이 이야기한 것처럼 집인 대전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지금처럼 불안한 삶을 살지 않았을 거다. 이건 지역 불균형이 불러온 기괴한 부동산 문제다.
그걸 단순히, 젊으니- 없으니 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일이 있을까.
방송을 다시 보면서 또 흥분하게 된다.
그림 작업은 몇 자의 텍스트와 대화만으로 그려졌지만, 그리는 동안 허름한 주택가를 걷던 내가, 2년마다 집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던 내가, 친구가 떠올랐다. 십년이 더 된 이 고질병은 아직도 스무 살 아이들을 붙잡고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 방영된 프로그램에 인터뷰이를 한 번도 만나보지 않았는데도, 크게 다르지 않게 그릴 수 있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