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가 다시 읽을 나를 기다리는 글
내 안에 좋은 문장이 있을까.
쓰는 일을 놓지 못한다. 해가 지기 전에 급하게 다녀온 오후 다섯 시 산책길에, 늘어지는 석양빛에 노랗게 삐져나온 산수유 봉우리. 그런건 이렇게 써두지 않으면 날아가 버린다. 매일 아침 아이가 등교하는걸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는 데, 눈이 오는 날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서로가 서로를 기다리는 일이 조금도 미안하거나 짐이 되지 않는 아이들의 발길질도 이렇게 써두지 않으면, 그저 아침 출근길처럼 바삐 떠나버린다.
읽는 일도 놓지 못한다. 가장 세속적인 마음까지도 다 털어서 보여줬던 박완서 할머니 글, 글이 너무 참해서 자꾸 책등을 쓰다듬었던 신영복, 황현산 선생님. 아니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구조적이며 정갈하고 따뜻한가, 그런데 왜 결국 내가 그 글 속으로 끝끝내 들어가는 길은 어렵나!! 골치를 썩으며 읽었던 신형철 작가님의 글들. 지나온 글들이 이렇게 서늘하고 다정해 나는 발이 묶였다. 근데 또 한켠에는 아직 가지 않은 글들이 줄을 섰다. 서점 가판대에 오르자마자 품에 안고 온 진은영 선생님의 새로운 산문집이 일하는 책상에 계속 놓여있다. 켄리우, 비비언 고닉, 김승섭.. 읽어야 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그 위에 차곡차곡 놓여있다.
나는 너무 셈을 부리느라 읽고 싶어 잔뜩 안아온 이름들 중에서도 아주 좋은 문장이 있을 책을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도 좋은 문장을 찾는다.
내 안에 좋은 문장이 있을까.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뜨자마자 셈을 하고 있었다. 어제 자기 전까지 읽었던 걸 잡아 읽으면서도 이게 지금 읽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문장일지 안달이 났다. 신나게 글줄을 넘다가, 책장 넘어 쌓인 책 등을 보며 저기 어디 이 새벽에, 곧 있으면 아이가 깨고 허둥지둥 학교를 보내고 출근을 하고 나면 다시는 오지 않을, 한 줌 시간을 넣어도 아깝지 않을 더 좋은 문장이 없을지 셈을 하다, 문득 궁금했다. 내 안에 좋은 문장이 있을까? 고르고 골라 양껏 씹어내고 있지만 나는 그것으로 무엇을 만들어 내고 있는 걸까. 문득 쓰지 못해 안달하는 마음과 좋은 문장을 읽겠다고 셈을 하는 마음이 서로 조금도 닿아있지 않아 부끄러웠다.
사라지지 않으면 좋을 것들을 묶어내지만, 언젠가의 내가 다시 돌아와 읽어줄 수 있을까?
나는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글들을 쓰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