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위한 그림
정말 감사한 일은 뜨문뜨문 그림 의뢰가 들어온다.
개인이 요청할 때도 있고, 브랜드나 매체 일 때도 있다.
사실 이전에는
나 외에 누군가를 위한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가 시켜서나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닌,
내 그림은 온전히 그냥 내가 그리는 것이어서.
그런 나에게 의뢰나 내 개인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그림을 그리게 만든 건, 이 말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항상 일상이나 내 마음을 그리는 게
전부였던 내 그림이었는데, 그는 내 그림들을 가만히 보고는 이 말을 하고
이 그림을 제안했다.
나는 새벽에 낯선 공간에서 낯선 마음으로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은 세월호 미수습자 허다윤 양의 아버님께 허다윤 양이 안기는 모습이다.
허다윤 양 아버님의 사진을 여러 장 검색해서 한참을 보고 앉아 있었던 그 밤,
나는 그 마음을 도저히 헤아릴 수 없었다.
여러 달, 여러기사 속에서 그의 모습은
시간의 속도와 무관하게 시들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그림을 그리는 그 새벽에 나는 누구보다도 깨어있고 누구보다도 작고, 누구보다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심으로 다윤이가 아빠에게 와 안겼으면 좋겠다고
감히 간절하게 기도하며 아버님의 얼굴을 다시 보고
또다시 보고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은 MBC 페이스북 콘텐츠로 쓰였다.
이 그림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이걸 올린 담당자는, MBC를 조금도 바꿀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그림으로 한걸음, 한 뼘 - 잴 수 있는 게 있다면 -
딱 그 하나만큼 변했다.
누군가를 위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 줌의 마음 밖에는 가닿지 못하더라도,
혹은 그 한 줌마저도 가 닿지 못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다.
**돌이켜 보면 난 그 해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