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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un 09. 2019

로맨틱한 용신전설의 마을

남해 빛담촌 feat.용발떼죽

어느 다리를 건너도 한참을 차를 타고 들어와야 닿는 마을이 있다. 

빛을 담는 마을이라는 빛담촌은 꽤나 유명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곳이다. 

처음 남해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은 산과 바다가 꽤나 가깝게 붙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굽이진 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오른편에는 산이 이어져 있고, 왼편에는 절벽 아래 바다가 이어져 있어 꽤나 묘한 기분과,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파도와 모래사장과 완만히 이어지는 대지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산들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바다 그리고 바로 옆 산으로 이어지는 남해는 이국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빛담촌 역시 그렇게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산 중턱에 조성된 마을이다. 

햇살이 잘 드는 양지바른 언덕 위에 남해의 신도시처럼 기획적으로 조성된 마을이다. 팬션이 주로  있기에 개성 있고, 세련된 건물들이 구역을 나누어 예쁘게 자리 잡고 있고, 편의점도 있다. 또 남해의 꽤 유명한 관광 스팟이 지근거리에 있어 처음 남해 여행을 가는 사람이라면, 숙소로 정하기에 손색없는 곳이다. 


빛담촌을 들어서면 처음 맞이하는 것이 공용 주차장이다.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주차 시설을 만들었는데 꽤나 유용한다. 주차장에서는 바로 바다를 내려다볼 수도 있는 데크가 깔려있고, 이곳에서 사진 한 장 남기기도 좋다. 친절하게도 포토존을 만들어 두기까지 했다. 빨간색 액자 프레임으로 바다가 보인다. 햇살을 받으며 반짝이는 바다는 꽤나 좋은 배경이 된다. 액자 프레임 위에는 여의주를 문 용이 있다. 잘 정돈된 팬션마을에 느닷없는 용 조각이라... 꽤나 생뚱맞아 보이기도 한다. 


빛담촌이 자리 잡은 곳은 응봉산 중턱쯤이다. 

응봉산 8부 능선쯤에는 10평이 채 되지 않을 너럭바위가 있고, 이 바위를 보금자리 삼았던 용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산세가 투박하고, 험한 응봉산에는 정상 아래 8부 능선쯤 너럭바위가 있었고, 어느 순간 너럭바위에 용이 머물기 시작했다. 용이 살기 시작하면서 응봉산은 운무에 둘러 쌓이는 날이 많았고, 자연스레 사람들은 응봉산을 오르길 꺼리기 시작했다. 너럭바위는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는데, 용은 어느 날 마을 우물에 물을 길으러 온 처자를 보게 되었다. 평소 심성이 착하기로 소문난 처자였는데 심성만큼 외모도 출장해 용의 마음에 들게 되었다. 용은 물을 길으러 온 처자를 낚아채어 너럭바위 보금자리로 데리고 갔다. 소문은 금세 온 마을에 퍼졌다. 평소 처자를 흠모하던 마을 총각은 여인의 소식에 상심하여 곡기를 끊고 시름시름 상사병을 앓았다. 어느 날처럼 운무에 가득한 너럭바위를 올려다본 마을 총각은 '그래 병으로 죽으나, 용에 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지다'며 여인을 구하러 가기로 결심했다. 달이 없는 한밤 중에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운무 가득한 응봉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칠흑같이 어둡고, 거친 산을 오른 총각의 온몸은 상처 투성이가 되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너럭바위에 오르자 그곳에는 여인과 용이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너럭바위에 앉은 처자에게 손을 내밀었고, 총각이 여인의 손을 잡는데 용은 지그시 바라볼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온통 처자 생각뿐이었던 총각은 여인의 손을 놓지 않은 채로 마을로 내려왔다. 용에게 잡혀갔다는 처자와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총각의 사연은 금세 퍼졌고, 마을 사람들은 총각이 처자를 데려가는데도 용이 지그시 보고만 있었던 연유를 깊은 밤 험한 산길을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올라온 총각의 정성과 사랑, 결기를 갸륵히 여겨 그냥 보고만 있던 게 아닐까라고 짐작했다. 이 일이 있은 뒤 용은 뒷산 너럭바위를 떠나 자취를 감췄고, 너럭바위에는 용이 날아오를 때 발톱 자국이 세겨졌고, 이때부터 용발떼죽은 사랑을 이루고픈 청춘남녀가 있다면 이 곳에 올라 용발떼죽에 빌거나 만지면 그 사랑이 영원히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작은 이야기 하나로 조성된 마을이 급 몇백 년의 역사를 지닌 듯 보였다. 마침 올려다본 응봉산 정상은 어제 내린 비로 인해 연무와 구름으로 덮여있었고,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증거처럼 보였다. 한눈을 팔면 구름을 박차고 용이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이 묘한 긴장감을 주었다. 아이들은 당장에라도 응봉산으로 오를 태세였지만, 평소 운동부족의 내게 산을 오를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용발떼죽은 마을 길을 통해 3-40분 정도 오르면 도착할 수 있다지만, 산의 형세를 보면 산책하듯 만만하게 오를 코스는 아닌 듯 보인다. 평소 권선징악이나, 보은 혹은 악당의 역할로 자주 접한 용이야기가,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에 등장하니 꽤 신선했다. 여인을 향해 목숨을 건 남자의 사랑을 인정해 준 용이라니.. 참 로맨틱한 용신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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