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중학교를 다닐 큰아이가 자신의 출생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겠다고 나섰다.
아빠의 핸드폰 사진첩에 본인이 태어난 날 보다 하루 전에 자신을 찍은 사진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의 탄생은 18일인데 17일 날 찍은 사진의 사진을 보았다는 것이다. 벌써 십 몇 년이 지난 일이니 사진의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아이의 탄생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는데 아이가 17일 날 사진을 찍혔을 리가 없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데이터 시간 설정의 오류정도의 해프닝일 가능성이 크겠다.
아이는 믿고 싶은데로 믿나 보다. 분명 자신은 17일 날 찍힌 자신의 사진을 보았고, 병원에서 부모가 바뀌어 버린 경우 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마도 본인의 부모님은 재벌이 아닐지 모른다고 뻥을 친다.
하도 어이가 없어 나도 함께 맞장구를 쳐준다.
- 또래 재벌 아이들 중에 부모님이 너랑 얼굴이 닮은 사람들이 있는지 잘 살펴봐 그분들이 너의 부모님일지도 몰라 -
- 맞아 맞아 아빠 나는 병원에서 바뀐 건지도 몰라. 아 더 커서 나를 찾아오면 어쩌지? 그럼 나 어떻게 할까? -
아주 소설을 써라 소설을.
초등학교 6학년인 꼬맹이가 요즘 K 드라마에 빠져 요것 저것 살펴보더니 드라마와 현실을 혼동하는구나.
어쩌니 아해야
니가 병원에서 부모님이 바뀌었다고 하기엔 아빠와 너는 너무도 닮았단다.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너는 바로 내 딸이라고 하더라. 그만 포기해라.
아이는 끝끝내 십 몇 년이 지난 엄마의 산모수첩까지 찾아내며, 자신의 탄생과 성장 기록을 살펴보았다. 범죄 현장의 단서를 찾아내듯 꼼꼼하게 뒤적이는 폼이. 그 집중력으로 책 좀 보지 그랬냐... 말이 목구멍까지 절로 튀어나왔다.
한참을 뒤적이며, 자신의 꼬물이 시절부터 탄생의 시간까지의 사진과 글들을 주욱 읽어 보고는 재미난 이야깃거리를 찾은 듯 싱글싱글 웃으며 콧노래를 부르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에게는 사실은 중요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냥 이야깃거리가 필요했고, 그 순간의 놀이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 놀이에 자신의 어린 시절 어쩌면 리즈 시절일지 모르는 귀여운 모습들의 사진들을 잔뜩 보고는 뭐가 기분이 좋은지 자신의 출생의 비밀 따위는 언제 고민했냐는 듯 이제 묻지도 않는다.
사춘기를 접어든 아해는 감정이 오락가락이다. 말을 잘 들을 때는 마냥 귀여운 아이 같다가도, 한 번 엇나가면 저 딸이 내 딸 맞나 싶다. 모든 부모들의 첫 번째 위기는 첫 아이의 사춘기를 경험하면서 일지도 모른다. 와이프와 아이는 많이 싸우기도 싸운다. 모든 게 걱정스러운 엄마와 모든 게 재미난 아이는 그 접점을 찾기가 어렵다. 나는 그 중간에서 더 화를 내기도 때로는 중간에서 토닥이기도 때로는 무심하게 넘기기도 하면서 스스로 아슬아슬 균형을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와이프보다는 조금 더 모험스럽기에 아이가 많이 삐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에 인생을 걸었다. 적당히 삐뚤어지기도 하다 보면 인생의 굴곡을 넘기는 일이 더 수월할지도 모른다고 믿는 편이다. 육아법의 정반합 정도랄까?
뉴스의 사건사고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 신념이 많이 흔들리는 요즘이다. 아이들의 성장도 빠르고, 미디어의 편리함과 함께 그 부작용도 더 심각해지고, 예전에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 아이들의 성장과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일들이 너무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부모님의 세대에 비해 나도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모른다. 어느 세대나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소리를 듣지 않은 세대가 없는 것처럼 자녀와 아이들을 바라보는 고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런 걱정 속에서도 나와 내 와이프는 잘 자랐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잘 자라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걱정을 덜 한다는 것이 관심을 주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나는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처음 산책을 나간 강아지들이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주며 냄새를 맡고 다니는 것처럼 우리 아이도 세상 모든 것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하고 있다. 나는 가만히 지켜보면서 함께 산책을 할 것이다. 산책 시간이 조금 길어지겠지만 그 산책 시간은 어쩌면 내가 두 번 다시 경험하지 못할 소중한 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의 탄생의 비밀 파헤치기는 조금 싱겁게 끝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적당히 의심스러운 증거를 하나 남겨 둘 걸 그랬다. 다른 산모와 아이를 함께 찍은 사진 정도 하나쯤은 남겨두고서는 이 아이가 너고, 우리 아이가 저기 아줌마한테 갔어라는 둥의 이야기라도 흘릴 것을 그랬다. 그러면 며칠쯤은 고민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