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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Nov 07. 2023

모든 문장이 마음속에 있던 말이다

https://brunch.co.kr/@sunshine/177


옛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옛말에 맞춰 내가 살아가고 있는 건지 점점 어른들이 하는 마을 허투루 듣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도 너 닮은 애 낳아봐라! 


나도 세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대단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나는 스스로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무난했던 어린 시절에 인생 큰 굴곡 없이 살아왔기에 삶의 모진 풍파를 비켜나간 것은 내가  운이 좋기 때문이라고, 내가 잘 극복해 왔다고 여겨왔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나의 운이 아님을 알았다. 

내가 인생의 큰 아픔이나 굴곡 없이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소나기의  우산이 되고 바람막이가 되어줄 나의 든든한 쉘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속이 좁아 아이들에게 생색을 낸다.  엄마 아빠가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해서 너희들에게 좋은 것들 먹이고, 입히고,  보여주는지 아이들에게 엄청 생색을 낸다. 그리곤 그에 걸맞은 리액션이나,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엄청 서운해하면서 굳이 이를 숨기지도 않는다. 

참 속 좁은 아빠다.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4형제  나이 차이 많은  막내이신 아버지가 외벌이 공무원 생활을 하셨으니 우리 집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엔 이사를 밥 먹듯 해야 했지만, 초등학교를 입학할 무렵에 장만하신 단독주택에서 내 결혼식까지 치르셨다. 중학교 입학을 할 무렵 우리는 집안의 첫차로 네이비 컬러가 섞인 짙푸른 르망을 처음 사셨다. 그 차도 15년을 넘게 타셨다. 게다가 내 동생은 어린 시절부터 소아 당뇨로 꽤 오랜 생활을 병원을 다녀야만 했다. 우리 집안의 경제 상황은 분명 그리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모자라지 않게 자랐다. 풍족하지 않았다. 그래도 돈이 없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다니고 싶은 학원을 다니지 못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얻어먹으면 나도 친구들을 대접할 수 있었다. 나는 평탄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돌아보면 나의 굴곡이 없던 유년은 나의 부모님의 노력이고 희생이었다. 내가 헛디딜 수 있던 굴곡을 매워주셨고, 젖을 수 있는 빗방울에 우산의 씌워주셨다. 나는 운이 좋았던 것도, 내 힘으로 극복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내가 부모가 되어서 그것을 깨달았다. 부모가 얼마나 아이들을 위해 큰 희생을 감수하고, 인내하는지 

내가 아이들을 위해 그러했던 것 이상으로 우리 부모님들이 많은 인내와 희생이 있었는지 이제야 실감을 한다. 나도 내가 부모가 되어서야 깨닫게 되는 것을 나는 아이들에게  제발 고마워해 달라고 심술부리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아이들이 또 부모가 되면 그때가 되어야 엄마 아빠의 희생을 알게 되겠지. 



아시지요? 제가 얼마나 감사해하는지.... 말로는 못해도... 저 항상 마음속 깊이 감사드려요.. 

앞으로는 더 표현할게요 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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