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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un 10. 2019

어디든 떠나야 했다.

여행가기 싫었던 남자

평소 여행을 잘 다니지 않았다.


나는 어려서 여유롭지 못했고, 여행의 재미를 알지 못했다. 여행은 가까운 근거리의 계곡이나 물가를 찾아가는게 전부였고, 친척집을 제외하고 기억에 남는 여행은 국민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였다.) 시절 독립기념관을 다녀온 게 전부다.


그래서 커서도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았다. 여행이 내게 주는 힐링과 만족,설레임보다 여행을 준비하는데에 드는 스트레스가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다. 대학생이 될때까지  작은 이모가 있는 대전 남쪽으로 스스로 여행을 떠나 본적도 없었다. 어학연수나, 해외여행을 원하긴 했지만 끝내는 실행하지도 못했다.


결국 나의 첫 해외 방문은 신혼 여행지가 되었다. 여권의 입국 스템프가 신기했다.


그런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여인과 결혼을 했다. 20대 중반에 영국으로 연수를 다녀오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는 여행을 가야하는 여인과 만났다. 신혼 여행을 시작으로 나는 홍콩, 세부, 마닐라를 다녀오게 되었고, 부산도 남해도 제주도도 여행이라는 이름 아래 다녀오게 되었다. 20대 후반까지의 내 삶과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좋았다. 매일 만나던 풍경이 아니고, 매일 먹던 음식이 아니고, 내가 잘 모르는 곳이라는 설레임과 두려움의 긴장감이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켰다. 장거리 운전도 잘 하는 편이었고, 좋은 숙소도 편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또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있는데 먹고 싶고, 보고 있는데 보고 싶다는 말처럼 여행중에 또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짧고 흥분된 며칠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익숙한 아파트의 차단기가 오르는 순간 모든 것이 현실로 돌아온다. 신데렐라에게는 12시 종소리라면, 내게는 살고 있는 아파트 차단기가 올라가는 순간이다. 여행지의 빨래와 짐들을 모두 다 꺼내 세탁기를 돌리고, 짐을 정리하고, 장거리의 운전으로 녹초가 되고 며칠사이 쓴 여행경비를 정리하다보면 마법같은 여행의 기쁨은 온데간데 사라진다. 며칠만에 몰아서 하는 빨래와 짐정리와 함께 그간의 숙박요금이며, 먹고 쓰는데 들어간 비용을 모두 더해보면 집에서 그돈을 써도 행복할 수 있을 거란 생각마저 든다.


즐거움에는 대가가 따랐다.

여행의 피로를 풀어줄 좋은 숙소를 구하기 위해서는 정보력과 순발력도 필요하지만 결국은 그에 맞는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관광객이 줄을 서서 맛보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평소 점심이라면 고민조차 하지않고 리스트에서 지웠을 법한 음식만큼이나 대가를 지불해야한다. 지금의 나처럼 어린 아이들이 있는 여행이라면 더 그렇다. 혼자라면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 법한 동선과, 여행지를 택하고, 정작 하고 싶거나 가고 싶은 곳은  아이를 고려해서 리스트에서 삭제한다. 그러면서 더 젊었던 날에 떠나지 못한 여행을 후회한다. 지난날 여행하지 않은 대가인지 모른다.


합계 금액을 보면 한동안 여행은 가지 말아야 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음에 와이프가 여행을 계획하면 필사적으로 말리리라 다짐도 한다. 우리집 결정권은 아내에게 있기에 결국 여행을 떠나게 된다. 출발하는 그 순간까지도 여행이 옳은것인지. 지난 여행의 합계 금액의 후유증을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속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도착한 여행지에서는 왜 좀더 여행을 자주 다니지 않았는지 또다시 지난날을 후회한다.


매번 비슷한 패턴으로 여행을 다니고 있다.


지금 여행을 다니는 이유는 한 가지가 더 늘었다. 내가 몰랐던 여행의 즐거움과 여행지에서 느끼곤 했던 감정들 - 평소에는 절대 느끼지 못했을,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었으면 해서다. 여행이라는게 낯설고 어색했던 사람도 여행지에서는 많은 것들을 느끼고 돌아온다. 매번 여행을 다녀오면 글로 남기고 싶었고,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잊고 싶지 않았던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아오면 며칠동안은 그 여행지에서 느낀 것들, 또 다시 간다면 좀 더 깊게 보아야 할 것들을 뒤적이며 보낸다. 여행이 끝나서까지도 이어지는 것이다.


나는 몰랐기 때문에 즐기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든 떠나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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