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은 모르는 행복
나는 세 아이가 있다. 1남 2녀. 딸, 딸, 아들의 아빠. 5살, 9살, 13살의 4년씩 터울의 세 남매.
지인들에게 농담처럼 이야기한다.
- 전 10년 동안 육아 중이에요. 첫 째를 키워 어린이집을 보내 이제 좀 살만하면 또 갓난쟁이가 생기고, 그 둘째를 또 몇 년 키워 어린이집을 보내놓고 시간이 좀 나려나 싶으니 또 갓난쟁이가 생겨 지금 10년째 육아 중입니다. -
이건 사실 농담이 아니다. 농담으로 포장한 진심을 담은 마음속의 절규였다. 2011년부터 막내가 태어난 19년까지 8년을. 게다가 막내가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한 21년도 정도 부터하면 딱 10년이다. 이제야 심리적으로 여유도 생겨 글도 쓰고 살지만, 쉽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엄마들은 알지 않을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되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많이 잃어가는 시간인지에 대해. 나 역시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지만 두 번을 다시 겪으라 한다면 자신은 없다. 내 자신의 잃어버린 10년 인지도 모른다.
허나 그 순간들이 하나하나 힘들기만 했을까?
마냥 힘들기만 했다면 내가 견딜 수 있었을까?
지금은 사춘기로 아웅다웅하는 딸도 마냥 사랑스럽기만 했던 순간들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돌이켜보면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당근들이 있었다. 냉정하게 세어보면 쉽지 않은 날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당근의 맛은 너무 달콤하고 행복해 또 다시 맛보길 바라며 하루하루를 버텼는지도 모른다. 내가 10년간 육아를 하면서 견딜 수 있었던 달콤한 순간들. 이 순간은 내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나만의 보물이고, 내가 죽는 순간 주마등처럼 스쳐갈 기억이며, 어쩌면 내가 남기고픈 기록들일 것이다.
당근 하나.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다 보면 참 다양한 표정들을 만날 수 있다. 나의 첫 아이를 키우던 때, 그러니까 나의 첫 번째 육아는 모든 일상이 배움이었다. 그만큼 서툴렀고, 서둘렀다.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심리적으로 덜 긴장했지만, 아내 없이 내 혼자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처음에는 너무 겁이 났다. 아이가 우는 데 왜 우는지 모르겠더라. 분유는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기저귀는 아직도 뽀송뽀송하고, 열이 없는 거 보니 어디 아픈 것 같지는 않은데 아이는 계속 칭얼거리며 운다. 우왕좌왕, 허둥지둥거리다 안 되겠다. 일단은 우는 것부터 달래야겠다 싶어 가슴에 안고 등을 토닥토닥 '울지 마라, 울지 마라' 거리며 거실을 빙그르 돌기 시작했다. 몇 분을 달래고 등을 토닥토닥했더니... 시원하게 "끄~~ 윽" 하며 트림을 하신다. 편안해지셨나 보다. 칭얼대던 울음은 금방 잦아들고 이제는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는 그릉그릉 잠에 빠져 주신다. 혹여나 깰까 살곰살곰 아이를 침대에 내려놨는데..
아.. 깨지 않고 주무신다. 그것도 아~주 편안한 천사 같은 얼굴로.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본 일이 있는가. 정말 천사다 천사. 내 아이뿐만 아니다 잠들어 있는 모든 아이들의 얼굴은 천사다. 게다가 불편해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어 재웠을 때 그 예뻐 보임은 다른 아빠들이 쉽게 마주하기 힘든 경험일 것이다.
당근 둘. 둘째가 태어나고 돌이 좀 지난 때였다. 큰 아이는 6살 작은 아이는 두 살이었겠다. 거실에서 뽀로로를 틀어주고는 잠시 일을 하고 있는데 무언가 조용하다. 엄마들은 알겠지만 아이들이 조용할 때 더 무서운 법. 급히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찾았다. 오! 이런....
큰 아이가 자신의 무릎에 둘째를 앉히고는 함께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다. 솔직히 좀 감동했다. 형제간의 우애, 사랑, 이런 것들을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이 장면을 자랑하고 싶었다. 혹여나 아이들이 눈치챌까 조용히 사진을 찍었다. 언제봐도 사랑스러운 아이들
이 날의 감정을 좀 더 이야기하자면.. 나는 둘째가 태어나기 몇 달 전에 동생을 잃었다. 두 형제였던 나는 졸지에 외아들이 되었다. 살갑지 않았던 남자 형제간이지만 혈육의 정은 무섭다. 이 사진을 찍고 동생 생각이 가슴이 얼마나도 먹먹했던지. 내가 아이를 셋이나 키울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형제의 정을 아이들에게 알게 해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당근 셋. 엄마가 일로 바쁠 때 아빠는 아이들과 놀아줘야 한다. 하루는 큰맘 먹고 아이 셋과 에버랜드를 가기로 했다. 집에서 그리 멀지는 않다. 문제는 아이 셋이 갓 돌을 지난 2살 아가부터 6살 누나, 10살 큰누나 이렇게 나이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아기 띠로 막내는 안고, 6살 아가는 손에 잡고 큰 10살 첫째는 혹시 몰라 예비로 챙긴 유모차를 밀고 당당하게 에버랜드를 입성했다. 아직 아이가 어리니 놀이기구에 큰 욕심은 없고, 정원과 동물원 등 산책 위주로 걷기 시작했다. 언덕을 오르내리고 아이를 안고 잡고 언덕에서는 유모차도 잡고. 눈앞에서 사라지는 첫째 둘째를 부지런히 쫒고 하니 온몸에 진이 빠질 정도였다. 한참을 산책 겸 구경을 하고 목마르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긴 줄을 섰다. 한 참을 기다리다 내 앞차례에 나이 드신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를 계속 쳐다보시더니 무언가 주저하시며 말씀하신다.
- 아빠가 잘 놀아주네 대단해~ 먼저 줄 서요. 내가 양보할게요 -
-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럼 염치 불고하고.. 먼저 살게요 -
아마도 아빠 셋이 아이들 안고 잡고 끌고 오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말은 안 하셨지만 스을쩍 벤치의 자리를 양보하던 젊은 커플. 아이 화장실이 급하다고 칭얼거리자 옆에서 저쪽으로 가면 화장실이 가깝다고 가르쳐주던 젊은 엄마. 아이들의 놀이기구도 함께 타줄 수가 없어 막내와 있으면 아이들 자리까지 친절하게 에스코트해주던 에버랜드 직원등 오늘 내가 경험한 배려가 너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모두 친절했고, 고마웠다. 나 혼자 아이들을 키운다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알게 혹은 모르게 받았던 배려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인간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란 것을 느꼈고, 이런 사회라면 아이 셋을 키우는데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마지막 당근. 23년도에 막내는 유치원 생이 되었다. 제법 의사 표현도 또렷하고 위로 두 누나들이 있어서일까 또래보다 사용하는 어휘도 풍부하다. 큰 누나의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는 아주 자연스럽게 누나 방을 똑똑 노크하며 이렇게 외쳤다.
"누나 실례할게~ "
누나들은 막내의 근본 없는 귀여움에 빵 터졌다. 이렇게 사소한 장면들의 행복은 라떼파파가 아니면 캐치하기 어렵다. 큰 아이는 곧 중학생이 된다.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자신만의 생각과 행동들이 분명해졌다. 지금도 갓 태어난 순간이 기억나고, 어릴 때의 그 모습이 또렸한데 이제는 청소년이다. 너무 빨리 커버리는 게 서운하면서도 대견하다. 가끔은 막내가 아무런 걱정도 없고, 해맑게 환한 표정으로 아빠를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아빠에게 기대어 논다. 아빠를 등져 아빠 몸에 기대고는 자신의 장난감으로 로봇놀이를 한다. 조금 귀찮아질 무렵 살짝 아이를 일으켜 세웠더니 고개를 들어서는 아빠를 보고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씨익 웃고는 한 발짝 떨어져 다시 놀이 삼매경에 빠진다. 큰 아이의 사춘기를 경험하면서 아이들이 어서 빨리 커버리기를 바랐기도 했다. 둘째가 어느 정도 자라 초등학생이 되니 마찬가지로 훌쩍훌쩍 커버리기를 바랬다. 그런데 막내가 이렇게 씩 웃어주는 그 순간의 가슴 찡함을 느끼자 아이들이 아빠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던, 그 모습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순간이라는 것을 느꼈다. 정말 아빠의 손이 필요하지 않을 때가 되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순간이 되면 아마도 아빠의 시간은 훨씬 많아지고 여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최고고, 아빠를 필요로 하는, 무적의 아빠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사춘기의 하루도, 키만 커가는 둘째의 하루도, 아직 키울 날이 한참 남은 막내의 하루도 어제 보다 더 소중해졌다. 내가, 그리고 아이들이 서로서로에게 필요하고 집중할 수 있는 날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른이 아이를 키우고 아이가 어른을 일깨운다. 내가 생각하는 육아다. 어른도 아이를 키우며 배운다. 삶의 행복과 가치를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법을. 인간이 찾고자 하는 행복의 길을 배워간다. 그 배움이 모두 쉽고 아름답지 많은 않다. 아이를 키우면서 얻었던 기쁨만큼 힘들었던, 속상했던 시간들도 많았다. 특히 고정적 성력할과 조금은 다른 방식의 삶고 있는 남성이기에 얻은것도 있는만큼 잃은 것도 있다. 다음에는 육아하는 아빠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