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외로워서 그런 건 아닙니다만..
어쩌다 보니 카카오친구 1308명. 근 십몇 년을 사용한 전화번호라 전화번호를 주고받은 사람들이 쌓이고 쌓여 한번이라도 등록된 친구들의 그 수가 네 자리가 되었다. 얼마나 풍족한 인맥인가 싶겠지만 실상은 그저 속빈강정. 한 번은 외로워 누구라도 대화를 하고 싶어 그 리스트를 훑었다. 누군지는 아는데 이야기를 나눠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어제도 그랬듯이
'연락을 해볼까? 너무 오래되었나?'
'잘 지내고 있나? 근데 뜬금없겠지? '
'영업하려 한다고 오해하려나?'
'날 기억할까? 근데 무슨 이야길 해야 하나?'
한참을 망설이고 망설이다 결국 폰을 엎었다. 나는 스스럼없이 연락도 하지 못할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왜 이렇게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을까? 지우지도 못하고 가지고 있어야 전화도 걸지 못하는 전화번호가 야속하기도 하고, 이 사람들도 내 전화번호가 있을지 혹시 나에게 연락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을지 고민도 해본다. 속이 상하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이렇게 연락할 사람이 없다고?
우리는 같은 시간을 공유한 적이 있었는데, 그 시간들은 서로에게 어떤 기억들을 남겼을까?
영원할 것만 같은 청춘은 금방 지나간다. 서른이 너무 빨리 와서 당황했는데, 아뿔싸 마흔은 그보다 더 빨리 찾아도 왔다. 잘 들어라 청년들아. 금방이다.
그 청년 시절에 영원할 것 같은 우정을 나눈 사람들도 어느덧 잊히고 소원해졌다. 이런 걸 거른 거라 해야 할까 걸러진 거라 해야 할까? 이제는 명절에 단체 카톡도 별로 오지 않다. 단체로 보내는 명절 인사의 진정성에 대해서 민폐라는 사회적 합의가 생긴 것마냥 이제는 단체카톡이 오는 일도 별로 없다. 그것 조차 아쉬운 맘이 드는 건 외로워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군대 훈련소에서 6주간의 고생을 하고 자대배치를 받으며
[동기들아 영원하자 우리 전역하는 날 꼭 다시 만나자]
라는 지키지도 못할 공약속 처럼 우리는 너무도 쉽게 영원하자는 말들을 하곤 했다. 첫사랑이 영원할 것 같았고, 전역한 후의 잠시 철듦이 영원할 것 같았다. 인생의 중간중간의 깨우침들과 만났던 사람들과의 우정과 추억들이 영원할 거라 믿었다.
우리에게 영원이 이렇게도 짧은 시간들이었던가? 그 순간의 진심 어린 약속마저도 시간이 지나며 그 진심이 바래고 무게는 가벼워진다. 상대방도 이해할 거라 합리화시켜 어느덧 내 머릿속에 추억으로 차곡차곡 쌓아둔다. 그래 어쩌면 이게 인생 인지 모른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이며, 인간은 살아갈 수 있는 기억만 남기고 살아가는데 필요하지 않은 기억은 잊어가며 살아간다. 어쩌면 내게서 잊히고 내가 잊힌 것은 살아가는 길 위에 한 순간인지도 모른다.
관계란 일방통행이 아니다.
일방통행에서는 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 마주 봄으로 주고받음이 날실과 씨실처럼 얽혀야 한 폭의 천이 된다. 내가 그동안 그 사람들에게서 잊혀졌던 것은 내가 그 사람들에게 보낸 씨실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나도 일방적으로 받기만을 원했기에 우리 관계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내가 꾸준히 연락을 하고 관심을 둔 사람에게서 내가 잊힌다면 그 관계는 손절하면 그만이지만 내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은 욕심인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나에게 관심을 가져다준 지인이 있다면 감사 인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맞는 피드백과 연락들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 사람에게 손절당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