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준 Jun 20. 2019

가시리

[오늘은 언제 끝나?]

[..오늘은 학교에서 실습이 있어서 늦을지 몰라..]

[그럼... 끝나고 전화 줘..]


물론 전화는 오지 않았다. 


일병 휴가 이틀째 날. 7박 8일의 휴가 기간 중 벌써 하루가 지나갔다. 아직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 식 후 대학 입학 전에 나는 그녀에게 고백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 동안 고백 못하다가 서울로 대학을 가고,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불안함에 고백을 했다.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었다. 여자 친구가 지방에 있다 보니 대학 신입생 답지 않게 주말에도 고향으로 내려왔다. 화려한 서울의 볼거리와 즐길 거리도 처음 사귄 여자 친구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녀가 서울에 살다 지방으로 이사를 온터라 서울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많이 알았고, 서울로 오는 걸 즐거워했다는 점이다. 갓 스무 살을 넘긴 커플에겐 세상 모든 장면이 즐거웠다. 함께 손을 잡고 걷기만 해도 좋았고, 놀이동산을 가면 아침 일찍부터 입장해 해가 지고 폐장 시간이 되어서야 아쉬운 맘에 다음에 또 오자며 나왔다. 당당하게 술집에서 마시는 술은 여자 친구를 더 예쁘고, 귀엽게 보이게 만들었고, 로맨틱한 밤을 보내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 만든 통장의 비밀번호는 그녀와 관련된 날로 정했고, 1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내 통장 비밀 번호로 남아있다. 


장거리 연애지만 꽤나 잘 헤쳐 나갔다. 

대학 동창들은 내가 지방에 여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모두 다 알정도였고, 여자 친구가 올라오거나 내가 내려가거나 하는 상황에 균형이 잘 맞았다. 누구 하나 일방적으로 희생하거나 양보하지 않는 상황에 더 잘 버텨왔던 것 같다. 그렇게 1년 6개월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이제... 그만 만나자...나..너한테 기다리라고 말하기 싫어서 그래. 2년 2개월 긴 시간이잖아. 너한테 기다리라고 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나 들어가기 전에 너 놓아주려고 그래..]

[싫어. 헤어지기 싫다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런 말 하지 마]

[아니야... 지금은 아니어도 나 군대 가고 너 힘들다가 멀어지게 되면 내가 더 힘들 거 같아서 그래.. 그래서 지금 얼굴 보며 정리하려고 하는 거야 그때는 정말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몰라서..]

[...나.그럴일 없을거야...]


며칠 동안을 고민했던 정리했던 말들을.. 막힘없이 쏟아내었다. 지킬 수 있는지 자신도 없는 체 무턱대고 헤어지자 통보를 했다. 군 입대를 앞두고 많은 생각 속에 내린 가장 이.성.적인 결론이었다. 모든 일이 이성적으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는 걸 머지않아 알게 되었다. 


큰맘 먹고 여자 친구에게 이별을 고하고 입대한 입장이지만, 훈련소에서 편지를 쓸 시간이 되면 떠오르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사람이 간사하게도, 내가 먼저 헤어지자 했으면서도 군 입대할 때 그녀의 주소를 적은 종이는 꼭 손에 쥐고 있었다. 그녀가 받으면 어떤 기분이 들지, 어떤 감정일지 생각해 보지도 않은 체, 군 생활의 외로움을 토해내는 편지를 그녀에게 보냈다. 훈련소에서 보낸 편지에 그녀가 답장을 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6주간의 군사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 후 첫 전화를 그녀에게 했을 때, 그녀의 울먹이는 숨소리와 반가움과 그리움의 목소리는 20여 년 가까지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난다. 


뒤에서는 선임이 기다리고 있고, 바짝 군기가 든 이등병이었지만, 그 순간 그녀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정말 하마터면 울 뻔했다. 그날 이후로 부대로 그녀의 편지가 왔다. 말 그대로 버팀목이 되었다. 군대가 정말 힘든 이유는 몸이 고된 것도, 먹는 게 부실한 것도, 선임의 꾸지람을 듣는 것도 아니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는, 자유에 대한 속박이 가장 힘들었다. 실향민이 된 것처럼,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갈 수 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데 갈 수 없다는 사실에 버틸 수 있는 딱 한 가지가 그녀의 편지였다. 


전쟁 영화에서처럼 상의 포켓에 고이 접어 두고, 훈련시나 틈틈이 쉬는 때 꺼내보고, 다시 읽어보고, 편지지의 무늬가 어떤지, 어떤 펜으로 쓴 것인지. 몇 번을 읽어 접힌 부분이 찢어지려 할 때까지 읽고 또 읽으며 하루를 보냈다. 


백일 휴가는 정말 영화 같았다. 부대에서 고향까지 5시간 정도 걸리는데 여자 친구가 중간 못 미치는 도시까지 마중을 나왔다. 그녀를 만나고 가장 오래 떨어져 있던 시간이었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도, 거칠어진 손도 어루만져주는 그녀가 더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휴가기간 내내 그녀를 만났다. 아침이면 전화해 나를 깨우고 함께 만나 밥을 먹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손을 잡고 밤이면 헤어져 다음날 해가 뜨기도 전에 다시 만나고..



그랬던 그녀인데.. 백일 휴가 이후 6개월 만에 나온 휴가인데 아직도 그녀 얼굴을 보질 못했다. 게다가 오늘은 내 생일인데... 생일 축하한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휴가가 절반쯤 지났을 때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기말고사 때문에 바쁘다고는 하지만 달라졌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하루가 지나 숙취를 재우기 위해 꾸역꾸역 밀어 넣는 해장국처럼 그녀는 내 생일을 축하한다 말했고, 둘 사이에 지나는 어색함을 견딜 수 없어 영화를 한 편 보자 청했다. 최소한 2시간 동안은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함께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제목만을 보고 고른 영화는 화끈한 제목과는 다르게 에로틱하며, 집착에 가까운 영화였다.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에게 집착한 나머지 상상치도 못한 일들을 마구 해버리는 노출이 심한 영화였다. 영화 후반이 지날 무렵에 내 모습이 저 영화의 여주인공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착-


이럴 상황을 알고 먼저 헤어지자 이야기해 놓고는 결국 이런 상황이 되어 버리자 당황한 것이다. 애써 인정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옆에서 봐도, 날 떠난 그녀인데 인정하지 못하고, 내 손에 쥐고 싶었던 것이다. 군 생활을 버틸 유일한 버팀목이란 믿음을 놓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발 물러서 객관적으로 본 내 모습은 지질한 집착 외에 그 무엇도 아니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 앞에서는 다시 붙잡을까 싶어 말도 못 하고,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공중전화로 전화를 했다. 


그동안 미안했노라고


내 모습이 찌질해 보여 걱정인데... 이제 놓아주겠다고...

벌써 한참 전에 헤어진 우리들인데.. 내가 미안하다고. 


한참을 말없이 듣고 있던 그녀는 


[...잘 지내...]


짧은 인사만을 남겼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는

버리고 가시리잇고 나는

위 증즐가 大平盛代 (대평성대)


날러는 어찌 살라 하고 

버리고 가시리잇고 나는 

위 증즐가 大平盛代 


잡사와 두어리마나는

선하면 아니 올세라

위 증즐가 大平盛代 


설온 님 보내옵나니 나는

가시는 듯 돌아 오소서 나는

위 증즐가 大平盛代 

- 가시리


작가의 이전글 해장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