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의 무서움은 익숙함이다. 어떤일이 다가올지 잘 알기에 충분히 준비할 수 있고, 좋은 일에는 더 기뻐할 수 있으며, 나쁜 일에는 충격을 감할 수 있다. 3살아이가 바라보는 세상과 40살 아저씨가 바라보는 세상이 다른 이유는 경험과 익숙함이 다른 이유일테다.
때로는 습관과 익숨함이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고통이다.
태어나자 마자 맞는 예방 접종은 청소년기나 성년이 되어서도 익숙해 지지 않는 고통이다. 주사 바늘이 어느정도의 아픔인지 익숙하면서도, 섣불리 팔을 걷어붙이기가 쉽지 않다. 다만 창피하거나, 주사를 맞은 후의 이로움을 잘 알기에 참는 것이다.
익숙하다고 해서, 고통이 없는 건 아니다. 그저 언제쯤 그 고통이 지나갈지 안다는 것쯤으로 해두자
헤어짐도 그와 다르지 않다. 만남의 설렘과 흥분도 곧 사그러든다. 그 사람과는 더 뜨거운 감정이 없을 것 같아 헤어졌는데 이별의 감정은 만남의 감정만큼이나 뜨겁고 아프다. 더이상 달콤함을 얻을 수 없어 이별을 택한 것의 대가인냥 마지막으로 찡하고, 아픈 감정을 마지막으로 남겨두고 돌아선다.
하지만 거기 까지이다.
이별마저 익숙해진다. 첫사랑의 이별이 가슴아파 오래 기억이 된다. 그래도 두번 째 사랑은 시작할 수 있었다. 그 두번, 세번째 사랑마저 이별의 순간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내 경험상 늘 그랬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만남에는 늘 헤어짐이 있었고, 떠난 사람은 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새로운 사랑이 돌아왔다.
단 한번의 이별을 제외하고..
내가 쓰는 필명 성준은 내 동생의 이름이다.
세월호가 바다에 잠기던 그 해 동생도 물 속에 가라앉았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고, 누구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30대 중반의 내 인생에서, 3살아이가 된 듯 처음 겪는 세상이 다가왔다.
형제간의 정이 애뜻하지 못했던 동생은, 내게 아무런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은체 세상을 떠났다.
형제가 외동아들이 되었다.
얼마있지 않은 동생과의 추억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기억도 얼마 없어, 모든 순간이 떠오르는 듯 했고,
그 모든 순간이 후회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안타깝고, 원망스럽고 그리고 아팠다. 동생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 동생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졌고,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고르느라 쉬이 꺼내지 못했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여전히 동생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조심스럽다. 지금껏 경험한 어떤 이별과도 같지 않은 슬픔과 상처이기에 주저주저 하면서 글을 쓴다.
조심스럽게 동생의 이야기를 쓰는 까닭은 두려움이다.
동생의 이야기를 떠올릴때마다 그날 그 순간만큼의 슬픔과 같지 않음을 느낀다.
이제는 밥을 먹을 수도 있고, 여행을 떠날 수도 있으며, 즐겨보는 영화를 볼 수도 있다.
헤어짐이 달라진 것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죽을 만큼 슬펐던 일들이 예전같지 않음을 느낀다.
상처가 아물어간다고 해야할까?
동생과의 이별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그 상처에 딱지가 앉아버린걸까?
그저 다른 사람들도 그렇듯 남겨진 자는 그렇게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그 딱지에 새살이 돋아날지는 아직 잘 모르갔다.
그러나 분명한건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그 이별조차 익숙하지 않은 익숙함으로 변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