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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의자가 뭐라고...

by 성준

해진은 본격적으로 서울 생활을 정리하기로 했다. 일단 내년에 취업을 더 준비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남기신 것들을 정리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보기로 했다. 서울 생활 정리는 간단했다. 고시원은 이번 달까지만 지내겠다고, 주인아주머니에게 말씀드렸다. 학기 중에는 방이 잘 안 나간다며, 몇 달만 더 지내라고 부탁을 하셨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시골로 내려가 봐야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더 이상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다. 마지막 학기는 3학점 짜리 수업 두 개를 남겨두었는데 휴학하기로 했다. 졸업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대학생이란 직을 남겨두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6학점은 계절학기로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학교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어떨지는 아직 자신이 없다. 가족이 없으니 목표가 사라진 것 같다. 아무렴 어때라는 생각만 들었다.


고시원의 짐은 간단했다. 노트북 한대와 옷가지 몇 벌들. 신발 몇 개. 단출하다. 가구도 하나 없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삿짐이 아니라 여행 가는 거라고 생각할 것 같다. 지하철을 타고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도착했다. 여기서 집까지 버스는 있지만 정류장에서 집까지 여행 가방을 들고 걷기엔 너무 멀어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고향집은 과수원 꼭대기에 있다. 과수원이래도 그렇게 큰 산은 아니다. 작은 동산 정도의 꼭대기에 집을 지으셨다. 보통은 작업하기 편하도록 과수원 입구 쪽에 집 겸 작업 공간을 만드시는 게 일반적인데 아버지는 꼭대기를 고집하셨다. 높은 데서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좋다고 하셨다. 겨울에는 눈이 소복이 쌓인 모습이, 봄에는 파릇파릇 올라오는 새싹이 가을에는 풍성하게 달린 과수를 볼 때 행복하다고 하셨다.


택시는 과수원 초입까지만 올라올 수 있고, 난 도리없이 캐리어는 어깨에 메고 과수원을 올랐다. 다행히도 입구부터 집에까지 가는 길은 그래도 벽돌로 길을 내놓았다. 꼭대기에 집을 짓는 대신 진흙탕을 밟기 싫다는 어머니와 타협을 하신 거라고 했다. 군데군데 벽돌이 빠져 삐죽이 흙들이 고개를 내밀기도 했지만 웬만한 비에도 신발이 빠지지 않고 걸을 수 있을 정도다. 한참을 낑낑 거리며 집에 올랐다. 단층에 가로로 넓은 집은 운치 있다. 산 정상이다 보니 바람도 시원하고 사방이 막혀있지 않아 가슴이 트인다.


마루에 캐리어를 던지 듯 내려두고는 지친 몸을 누워본다.


"다녀왔습니다. "

듣는 이 없겠지만 그래도 인사를 한다. 순간 아무도 반겨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실감되어 감정이 울컥 솟아오른다. 천정을 보고 누운 눈에서 눈물이 조금씩 차오른다. 해진을 소매로 쓰윽 닦고는 몸을 일으킨다. 감상적이지 말자고 집에 들어오기 전부터 다짐을 했는데 별 수 없는 것 같다.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캐리어는 한 곳에 두고 며칠 비어 내려앉은 먼지를 걸레로 닦아 낸다. 안방, 거실, 작은방, 부엌, 그리고 옆의 작업 공간까지 쓸고 닦고 청소를 했다. 오후 내내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며칠간 내려앉은 먼지들을 닦아냈다.

집에는 온통 아버지의 흔적들이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이후로 이 집에 해진의 물건은 거의 없다. 옷가지 한 두벌이 전부다. 정리하고 청소하면서 아버지의 흔적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생각했지만 답이 나오지가 않는다. 버릴 수도, 태울 수도, 그냥 둘 수도 없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마당에는 작년에 아버지가 큰맘 먹고 구입하신 캠핑용 의자가 있었다. 의자 옆에는 아버지가 손수 만드신 화로대가 남아 있었다. 나이가 드시니 불멍이 좋아진다면서 낭비를 싫어하시던 분이 캠핑용 의자를 본인이 주문하셨다. 몇 년간 최고의 사치였다고 말씀하셨을 때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던 기억이 난다.


해진은 캠핑 의자에 앉아보았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어떤 풍경을 바라보고 계셨을까? 오후의 태양은 금새 넘어가고 하늘이 색을 바꾸고 있었다. 캠핑 의자는 노을을 바라볼 수 있게 자리 잡혀 있었다. 캠핑 의자가 있는지도 우리 집에서 보이는 노을이 이리도 근사 하다는 것도 처음 느꼈다. 하늘빛이 주황색으로 바뀌다가 보라색으로도 바뀌다가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주위가 칠흑처럼 어두워지는 장면이 장관이다.


' 아 우리 집의 노을이 이렇게 멋졌구나 난 왜 몰랐을까? '


집을 둘러보니 뒤편으로 벽에 장작이 한 무더기가 쌓여있었다. 그 옆에는 날이 잘 서있는 도끼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아버지는 직접 장작을 만드시기까지 하셨구나.. 한 아름 장작을 들고 와 불을 피워보기로 했다.

티브이에서 보던 불 피우는 일은 쉬워 보였는데 잘 붙질 않는다. 연기만 피어오르고, 몇 번 연기를 마셔 컥컥거리다 겨우 불을 붙였다. 한 번 피워진 불은 장작을 꾸역꾸역 넣어주었더니 제법 크기도 커졌다. 괜스레 겁이 나서 옆에다 방화수 한통을 떠 놓고, 캠핑 의자에 느긋히 앉았다.


' 아버지는 이런 풍경을 즐기셨겠구나. '


산 정상에 아무도 없는 집에는 빛공해도 없어 우리 집 등불만 끄면 칠흑 같다. 그래서 하늘의 별도 잘 보인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주황색 일렁이는 불빛을 보고 있자니 정말 빨려 들어갈 듯했다. 제법 쌀쌀하다 느꼈던 날씨도 타오르는 불의 온기로 화끈 거릴정도다. 주변 소리라고는 벌레소리와 장작 타는 소리 그리고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전부다. 음악소리도, 사람들의 말소리도 없다. 아버지와 이런 분위기를 즐겼어도 좋았을 텐데...

아버지는 혼자 이런 멋진 취미를 누리고 계셨던 거다. 나중에 나중에 만나면 한껏 투정을 부려야겠다.


일렁이듯 춤을 추는 불을 멍하니 바라보니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할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머릿속에 장면 장면이 스치듯 떠오르긴 하는데 아직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분명 서울에 있을 때보다는 더 확실히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해진은 사그라지는 불길에 장작을 몇 개 더 넣고는 뜨거운 커피와 빈 노트를 가져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머리속에 그려진 생각들을 정리하려한다.


해진의 머리 위로 별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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