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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

by 성준

- 오빠는 이제 계속 민박을 할 거야? -


- 음... 아직 잘 모르겠어 시간도 보내고, 몸도 움직일 겸 시작은 했는데. 쉽지가 않아. 일은 별로 어렵지 않은데 민박을 왜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 사명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벌자고 하는 일도 아니니까. 무언가 동기부여할 만한 게 필요한데 그게 무엇인지를 잘 모르겠어 혼자 하려니 버겁기도 하기도 하고 -


- 오빠! -


- 왜? -


수인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지금부터 자신이 하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한번 뱉어 버리면 쉽게 돌이키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쯤은 어렴풋이 느낄 수가 있었다. 책임감뿐 아니라 금전적인 면 등등 여러 가지로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 오빠... 나 여기에 오면서 처음엔 되게 당황했거든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거야. 관광 명소도 없고, 풍경은 예쁘지만, 주변에 편의시설 하나도 없고, 처음 과수원에 도착했을 때는 숙소가 있기는 한 건가 의심마저 했었다니까. 만약 내가 아는 오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면, 아마도 112에 전화를 했을지도 몰라. 납치된 것 같다고.


그런데 오늘 밤을 여기서 시간을 보내면서 뭔가 내 안에서 굉장히 달라진 것 같아. 여기는 내가 지냈던 곳과는 너무 다른 곳이야.


나는 밤이 이렇게 어두운 줄 몰랐어,


어둠이라는 걸 처음 경험한 것 같은 느낌? 그런데 밤하늘은 또 너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단 말이지. 여기 이렇게 불멍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너무 마음에 드는 거야. 그냥 앉아만 있어도 내 속에서 무언가 녹아내리고 있는 것 같아.


그동안 쉽게 털어놓지 못해서 딱딱하게 뭉쳐 있는 응어리들이 무언가 살랑살랑 녹아서 다 흘러내리는 것 같아. 마음이 좀 홀가분해졌어.


그래서 말인데. 나는 오빠가 이 민박을 계속했으면 좋겠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도 이 민박 같이 하고 싶어.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여기를 힐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니 내가 여기서 힐링을 하고 싶어.


나. 지금까지 많은 것들을 하지 않았는데. 항상 제대로 쉬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어. 그냥 하는 일 없이 계속 쫓기는 기분으로 살아왔는데. 여기서는 쉬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이 민박이 계속되었으면 좋겠어. -

- 수인아. 근데 그러기엔 여기가 좀 부족하지 않을까? 제대로 꾸며 놓은 것도 없고.. -


- 내가 투자할게. 딱 천만 원만. 그리고 수익은 반반이야. 투자금액은 2년 후에 회수할 거야. 그때까지만 우리 운영해 보자 -


- 너... 진심이구나? -


- 나? 응 진심이야! 완전 진심!! -



해진의 집은 툇마루가 있는 방 3개짜리 공간이었다. 거실은 툇마루와 이어져 있다. 요즘 아파트 식의 공간에 거실과 마루가 이어져 있는 셈이다. 그리고 창고 겸 작업실이 하나 딸려있다. 지금까지는 해진의 아버지가 공구며 작업도구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집이 40평 작업실이 20평 정도 되었다. 그리고 대지가 200여 평이 조금 넘는다.


해진과 수인은 작업실을 스탭 룸으로 바꾸었다. 스탭룸엔 테이크아웃 커피숍처럼 외부로 향하는 바를 만들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집은 민박을 위해 각 방들을 적당히 꾸몄다. 수인과 해진이 추구하는 컨셉을 유지하기 위해 과한 실내 장식과 가구들은 피했다. 딱 머무를 수 있을 정도의 소박하고 담백한 가구와 침구류가 전부였다. 대신 불멍을 할 수 있는 공간에 더 큰 투자를 하기로 했다.



10평 정도 되는 공간을 정해 정중앙에 현무암 담장석으로 동그랗게 파이어피트를 만들었다. 주변은 폐석으로 혹시나 화재에 대비하고, 캠핑용 의자 중에 가장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를 4개 골랐다. 파이어피트를 중앙으로 5미터쯤 떨어진 곳에 불을 중심으로 원을 그려 낮은 담장을 쌓았다. 바람이 잠잠해져 훨씬 더 안락한 분위기가 들었다. 담장뒤로 주문 제작으로 특대형 파라솔을 설치했다. 태풍만 아니라면 웬만한 비에도 불멍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작업은 둘이 머리를 맞대고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었다. 그 사이 수인은 서울 자취방을 정리하고 짐들을 옮겼다. 그래도 이사라고, 해진의 픽업트럭에 한가득 짐을 옮겼다. 해진이 요리를, 수인은 청소를 전담하고, 그 외의 일들은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민박의 프로그램은 간단했다. 2박 3일의 일정에 도착한 밤에는 불멍을 하고 낮에는 과수원을 산책하거나 멍 때리는 지극히 간단한 프로그램이었다. 멀리 이동하거나 하지 않고, 과수원은 곳곳에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등과 산책로를 만들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정이다. 해진과 수인은 대단한 홍보를 하지 않았지만, 예약에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하루의 여정은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최소 2박 정도는 여기서 묵어야 자신들이 추구했던 힐링을 조금이라도 경험해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그 사이 눈이 쌓였다 녹았고 과수원의 사과나무엔 통통하게 살이 오른 봉우리들이 봄이 옴을 알리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해졌다.


민.박.집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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