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는 일단 열심히 집중해서 쓰고
퇴고할 때 의식적으로 문장을 자르는 겁니다.
나는 글감을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라 생각했다. 기막힌 글감을 찾으면 글이 술술 써질 것이고, 내가 쓴 글은 사람들의 이마를 탁 치고 뇌리에 박혀 두고두고 회자될 수 있을 것이라 상상했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상상이긴 하다. 그러나 여기서 잘못된 것은 딱 하나였다. 기막힌 글감이 아니라는 것.
글을 쓰면 쓸수록 글감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적어졌다. 물론 좋은 글감을 찾은 날이면 좀 더 수월하게 글의 토대가 세워지고, 나름 내 안의 명문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글쓰기는 특이한 재료로 채워지지 않았다. 그저 나의 주변의 일들과 내가 보고 들었던 일들 중의 하나. 그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물어 도달한 생각들 중에서 글감을 찾았다. 사람 자체가 평범한 일상을 누리다 보니 소재나 글감이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를 이유가 없었다. 대부분이 보통의 사람들이 경험하고 공감하는 일들이 다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감을 찾는 일이 좀 더 수월해진 것은 나중에 고쳐도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쓰는 작가는 없다는 것을 점점 체화하는 것 같다. 헤밍웨이는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란 말을 할 정도로 퇴고에 대해 중요성을 말했다. 헤밍웨이조차 이런 말을 하는데 나란 인간이 초고에 완벽한 글을 써 내려가야 한다는 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일까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초고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때로는 의식의 흐름으로, 때로는 기본 틀만 세운다는 생각으로 말이 되지 않아도 써 내려간다. 때로는 문장도 완성하지 않는다. 흐름을 이어 줄 단어들. 혹은 짧은 생각들로 채운다. 건축에 재료들을 모아 둔다는 느낌으로.
초고가 있는 경우 글을 완성하기는 훨씬 쉽다. 건축에 설계도와 재료가 이미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는 느낌이다. 대략의 모습도 머릿속에 있고, 글의 재료들도 어느 정도 갖춰놓은 셈이다. 이제 각 벽돌과 재료들을 제자리에 두고 마감을 하면 된다. 건축과 인테리어의 마감은 손이 많이 간다. 직접 보이는 부분이기에 세세한 마무리와 꼼꼼한 마무리가 필수다. 글도 마찬가지다 퇴고를 거친 글들은 독자에게 보이는 부분이다. 꼼꼼하지 않은 퇴고는 집안에 벽지가 덜 붙어 있거나, 색이 다르거나, 페인트가 제대로 칠해지지 않는 것과 같다. 튼튼하게 지은 건물이라 해도 꼼꼼한 마감이 없다면, 그 가치를 온전히 보여주기 어렵다. 튼튼하게 쌓은 글의 구조가 어설퍼 보이거나,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퇴고는 튼튼하게 쌓은 글의 구조를 보기 좋게 만드는 것. 더 예쁜 마감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디테일한 수정일 수 있다. 조사 하나, 단어 하나로 글을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가 더 고민할 부분은 글의 재료보다는 이 부분일 것이다. 노인이 바다에서 물고기 잡은 일이 특이한 글감은 아니지 않을까? 이제 우리가 신경을 쓸 부분을 이쪽으로 옮겨 보자. 글고침. 새로고침. 그러면 좋은 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