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쁠 때 즐거운 글이 나오고 분노했을 때 거친 글이 나오는 것처럼 밤에 쓴 글은 자칫 한없이 감성적이기 십상입니다.
어쩌지? 내게 남은 시간은 밤뿐인데?
하루 중에 나에게 집중하고, 내 생각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한밤중뿐이다. 요즘은 버릇을 잘 못 들인 탓인지 오후 8시에 잠들어 밤 12시 1시 사이에 깨어난다. 그러고는 컴퓨터 앞에 앉는다. 이 시간이 소중하다 느끼는 것은 아무도 나를 찾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이 깨어날까 머신이 아닌 인스턴트 드립 커피 한 잔을 준비해 가장 먼 방의 구석진 책상에 앉는 것이 나에게는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온전한 시간들.
그간의 글들이 지극히 감성적이고, 말랑거렸다면, 한밤중에 쓴 탓이겠다. 작은 소리마저 더 크게 들리는 밤중이라 작은 감정들이 더 크게 울리고 이어져 나의 글을 타고 내려왔는지 모른다. 한밤중의 글이 더 감성적인 건 사실이다. 한낮의 감정은 지금과도 달라 지금의 감정을 받아들이기에 버거워 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밤에 쓴 글을 밤에 읽어야 한다.
때로는 조금 감성적이면 어떠랴? 조금은 더 촉촉한 글이면 또 어떨까? 한낮의 무미건조한 일상에 조금은 촉촉할 수 있다면 한밤중에 글을 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는 오늘도 또 무거운 하루를 견디며 살았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건조하게, 냉정하게 하루를 보냈을지 모른다. 살아내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으로 최고의 에너지를 소비했는지 모른다. 그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우리에겐 밤이 필요하다. 밤이 필요하다면 밤에 쓴 글도 필요하지 않을까? 밤의 에너지가 담긴 밤에 쓴 글이 낮 동안 건조해진 나의 감정에 수분을 더해 줄지 모른다.
때로 너무 깊은 밤에 쓴 글이 너무 깊은 감정을 담고 있다면, 낮에 한 번만 더 퇴고를 하면 괜찮을까? 밤의 감정을 낮의 예리한 칼로 도려내면 조금은 동글동글한 글이나, 더욱 날카로운 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낮에도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되겠다.
나는 밤에 쓰는 글이 좋다. 조금은 더 감성적이고, 조금은 더 멜랑꼴리 한 글이 될 수 도 있겠지만, 내가 쓰고 싶은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낮의 이성은 이야기를 너무 억누른다. 나중에 읽어 조금은 부끄럽고, 조금은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라도 밤에는 덜 부담스럽게 글로 옮길 수 있어 난 밤에 쓰는 글이 좋다. 나의 글은 밤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