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31. 어떤 글이든 온전히 내것으로 만든다면

by 성준

p 111-113 <김은경,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학교과제, 회사 업무라 하더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멋진 글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oo를 위한'이 아닌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요.




평소와도 같은 오후였다.

유치원을 간 막내가 돌아오고, 첫째, 둘째가 학원을 한차례 돌고 나면, 점심을 먹은 것이 어느 정도 소화되는 오후가 된다. 이 시간부터는 가족의 시간이다. 가족들이 모두 모인다. 부부가 하는 일이 겨울에는 조금 한가한 때라 시간의 여유가 생긴다. 곧잘 여행을 떠나곤 했다. 한겨울에 뜨거운 바닷가를 찾는 일은 꽤나 매력적인 일이기에 내심 겨울 방학을 기다리곤 했다. 남몰래 어디로 떠날까 고민도 하고, 사진이며 블로그며 그곳의 정보를 모으는 일이 나쁘지 않았다. 하얀 피부가 한 여름처럼 까맣게 그을려 돌아올 때면, 올겨울을 잘 보냈다는 만족감과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겨울을 기다렸었다.


평소와도 같았으면 좋았을 겨울이었다.

올겨울은 유난히도 춥다. 날씨가 추운 것쯤이야 계절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겠다만, 올겨울은 뜨거운 바닷가를 찾을 계획이 없어 더 추운 듯하다. 매 번처럼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여행을 준비해야 하는데 올해는 조금 다르다. 매년의 농사를 기분 좋게 마무리한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삶이겠지만, 인생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지주에게 줄 나락을 모으는 소작농의 마음이 이럴까? 보릿고개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이 이럴까? 춥고도 배가 고파진다. 실제로 굶지도 않는 배가 고파오고, 춥지도 않은 집안이 썰렁하게만 느껴진다.


평소와도 같아질 내일이었으면 좋겠다.

그동안의 추억이 하나의 훈장이 되어 머릿속에 새겨진다. 뜨거운 바닷가의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흩어지던 기억이, 뜨거운 햇살에 못 견뎌 수영장으로 뛰어들던 재미가, 낯선 음식에 코를 막으며 먹던 장면이 모두 머릿속에 훈장처럼 새겨진다. 그동안 뜨거운 바닷가는 한 해를 고생했던 우리 가족들에게 훈장 같은 여행이었다. 한 해의 고생을 치하하고, 다가올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하던 루틴이었다. 훈장처럼 꺼내어 추억만 해야 할 올겨울이기에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농부는 씨를 뿌리기 전에 논과 밭을 갈아엎는다. 거름도 주고, 씨앗도 고르고, 모종을 내기도 한다. 한 해의 농사는 계절이 오기도 전에 시작을 한다. 올해는 조금은 다른 루틴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셈이다. 평소와는 다른 기대감을 가지기에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농사를 준비한다. 다른 씨앗을 고르고, 다른 밭을 갈지만 원하는 바는 다르지 않다. 또다시 겨울이 왔을 때 그 뜨거운 바닷가 모래알이 다시 내 발을 간지럽힐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코를 막고 먹었던 음식을 이제는 입꼬리를 올려가며 다시 맛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일의 오늘이 그동안의 평소와 같아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겨울이 깊어진다. 올해는 뜨거운 태양을 품고 올 수 없기에 견뎌야 할 추위가 더 오랠 수도 있겠지만, 추운 겨울을 견딘 씨앗은 더 튼튼한 줄기를 내곤 한다. 나의 겨울도 그럴 것이다. 이제 올해의 새로운 농사를 준비할 시간이다.




안녕하세요 성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월/수/금 :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화요일 : 가족을 심어도 가족은 산다.

목요일 : 짐은 민박집에 두고 가세요

비정기매거진 : 파닥파닥 오늘의 횟 아니 글감

연재 중입니다.


브런치북 <Daddy at home>, <시대극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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