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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an 23. 2024

어둠에 먹히지 마세요

밤에 생활은 위험하다. 인간은 태생이 낮에 일을 하게 되어있다. 인간의 신체는 어둠에 취약하다. 인간은 뛰어난 시각도, 청각도 발달되어 있지 못하다. 어둠 속에서 인간은 포식자이기보다 사냥당하는 존재다. 그런 인간이 어둠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불이었다. 


불을 발견하고 인간은 어둠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두렵고, 피해야 할 어둠을 인간은 즐기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웅크리던 인간의 감성을 불과 함께 뿜어내었다. 낮의 생활이 먹고살기 위한 노동이었다면 어둠의 생활은 즐기기 위한 유희였다. 그래서 어둠 속의 인간은 더 감성적이며, 감정적이다. 어둠 속에서 즐거움이 가능해졌다. 


감정적이고, 감성적인 인간은 어둠 속에서 먹고사는 일이 아닌 즐기는 것에 대해 고민했고, 발견했다. 어둠 속의 많은 일이 새롭게 다가왔다. 많은 일들이 어둠 속에서 태어났고, 인간은 본격적으로 밤의 즐거움을 찾기 시작했다.


그 감성이 지금껏 우리 핏줄 속에 남아 있다. 내가 밤과 새벽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이 원래 그렇게 때문이다"라고 핑계를 댄다. 아무것도,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즐거운 밤엔 한 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아직도 인간의 생존은 해가 떠 있는 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오롯이 밤에만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은 없다. 홀로 살아간다 해도 인간의 사회는 아직 낮에 머물러 있다. 밤을 즐기는 인간은 낮에도 살아야 한다. 


최근의 나는 밤에 잠식당했다. 하루의 수면이 고작 서너 시간이 전부일 정도로 잠에 들지 못했다. 무언가를 해내고 있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목표한 무언가에 다가가고 있었다. 소음이 없고, 조용한 어둠 속에서 사부작사부작 거리며 기어나갔다. 성과도 있었고, 무엇보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되도록 이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무언가를 이뤄 나가고 있다는 성취감. 


하지만 낮에도 살아내야 한다. 아직까지 진짜의 삶은 낮에 있다. 온정신에 집중해야 할 삶이 아직은 밤에 있지 않다. 


깜빡 내려앉은 눈꺼풀에 차는 중앙선을 넘어갔다. 다행히 차가 없는 이면 도로라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아찔했다. 옆에는 아이가 타고 있었다. 하마터면 나는 밤에 잡아먹힐 뻔했다. 밤의 삶이 그냥 삶을 끝내버릴 뻔했다. 낮의 삶을 경시한 벌이다. 


그날 이후 조금 더 잠을 자고 있다.  벌써 내 삶을 끝내 버릴 수는 없으니까. 이뤄갈 것들도 소중하지만 가지고 있는 것들을 망가트릴 수는 없으니까. 나는 욕심이 많다. 둘 다 가지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타협을 해야 한다. 


밤에 잡아먹힐 뻔했지만 여전히 밤이 좋다. 밤의 생활을 포기할 수는 없다. 어둠 속에서만 느껴보았던 그 감정을 잊고 싶지가 않다. 스스로 무언가 하고 있다는 그 느낌. 나는 앞으로도 밤에 살 것이다. 하지만 낮에도 살아갈 것이다.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이유는 인류가 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프로메테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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