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비슷비슷한 일상을 살고 있는데 누구는 작가가 되고, 누구는 독자가 된다.
남들이 찾지 못한 포인트를 드러내는 것,
그것이 낯설게 보기입니다.
이거 큰일 났다. 트라우마가 이곳에서 나타날 줄이야. 나 이제 어떡하지??
17년도 나는 소송을 걸었다. 지인이었던, 친구라 믿었던 사람에게서 대금을 받지를 못했다. 그리고 달라지는 말들과 배짱. 결국은 소송을 걸었다. 그리고 부분 승소를 했다. 그가 우기는 것들은 대부분 인정받지 못했지만 나의 주장에 증거가 조금 부족했기에 전부를 받을 수 없었다. 소송은 17년도에 시작을 해서 19년도에 끝이 났다. 길고도 지루한 싸움이었다.
준비서면을 직접 작성했던 때라 글을 쓸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배신감에 화가 났다. 몇 년을 알고 지내고, 했던 인연을 이렇게 갚는다 생각하니, 그 사람 원망도 들고, 나도 잘 못 살아온 듯했다. 그럴 때면 설거지를 했다. 더러운 것을 조금이라도 씻어 나가면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는 것 같았다. 그릇과 냄비와 수저를 씻어나가며 상대방의 얼굴을 지워나가고, 기분을 지워나가고, 그렇게 2년 가까이를 설거지를 하면서 마음을 달랬다.
소송이 항소심에서 끝이 났다. 긴 싸움이었다. 소송은 끝이 났지만 금전이 오가는 일들은 또 다른 문제였고, 이에 발생하는 부대적인 일들이 남아 있었다. 처음 소송을 경험해 본 사람으로 모든 것이 다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잘 넘겼다.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믿었다.
그랬었다.
문제는 이제 설거지를 할 때마다 그 일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잊으려 시작했던 설거지를 몸과 정신이 기억하는지 설거지를 하려 접시를 집어 드는 순간 그 얼굴과 준비서면이 떠오른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러고는 예전처럼 하나하나 깨끗이 지워나간다. 지금까지 다행이라면 설거지를 마칠 시간이 되면, 그 얼굴도 사건도 다시 저 깊은 곳으로 다시 밀어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트라우마라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일로 사람들의 관계에서 한 발 멀어졌다. 사람에게서 기대치를 낮췄다. 낮아진 기대치만큼이나 사람에게서 실망하는 일이 적어졌다. 삶이 편해졌다.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았다. 한 번 받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상처가 있으니 새로 시작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날 상처 주려 한다는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또 상처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는데... 잘 안된다.
이놈의 설거지가 문젠가? 어느 책에선가 사람의 문제는 사람으로 풀라고 했다. 이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다른 사람에게서 위로받을 수 있다고, 어쩌면 연애와 비슷한 가보다. 새로운 사랑으로 지나간 사랑을 잊을 수 있는 게 연애라면, 상처의 극복도 비슷하겠다.
아직 사람들 사이에 나를 던져보지 않았다. 그동안 편한 곳만을 찾아다녔다. 결국 난 그 뿌리를 치료하지는 못한 셈이다. 24년도 목표 리스트 중에 하나를 무얼로 채워야 할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