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39. 에피소드를 아까워하라

by 성준

p 135-136 <김은경,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매 에피소드를 후회 없이 소비한다는 느낌으로 써야 합니다.



산이 깊으면 골이 깊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인생을 가만히 돌아볼 때마다 나의 인생은 기쁨도 있었고, 슬픔도 있었고, 고통도, 위안도 있었다. 때때로의 이벤트들의 진폭은 달랐지만, 깊은 고통 후에 오는 기쁨은 더 큰 위안을 주었다. 때로는 깊게 사귀었던 벗들에게 그만큼 깊은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 고통은 다른 때보다 넓고 깊었고, 아물기도 오래 걸렸다. 그만큼 위안 받았던 값을 한 번에 치른 것 같았다.


어른이 되면서 인간관계가 좁아지는 것도 있지만, 그 깊이나 열정이 20대의 그것만 못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아니 못하다는 표현 말고, 20대의 인간관계에 비해 진폭이 작아진 것 같다. 20대의 인간관계는 쉬이 깊이 빠지고 탐닉하며, 열정적으로 접근했다. 작은 것 하나에도 깊은 감동을 받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했다. 남녀의 연애관계뿐 아니라 친구와의 우정에서도, 무엇보다 우선순위가 되기를 바랐고, 내가 생각하는 만큼 상대방도 나를 바라봐 주기를 바랐다. 관계가 삶의 중심이 되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렇게 깊었던 기억이 나중에 추억으로 남기도 하며, 시간이 지난 후 젊은 날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인생 어느 지점보다 치열하게 만나고, 사랑하고, 다툼을 지니던 시기가 아닐까? 그래서 사랑했던 사람도 미워했던 사람도, 대부분 그 시기에 추억 속에서 꺼내곤 한다. 그 절정의 시기가 결혼이 아닐까? 결혼을 기점으로 우리는 감정의 진폭을 조금씩 작게 조절한다. 날카롭고 커다란 진폭에 유리잔이 깨어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감정의 진폭을 조절을 한다.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위안도 예전에 비해 덜하다. 소위 안정적인 인간의 삶이 된다. 20대의 치열했던 삶은 어쩌면 어디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상처받은 지점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자신감의 원천이 되고, 무모함의 뿌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순간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다. 결혼은 그 시작할 수 있는 지점이 고정되어 있다. 쉽게 옮길 수 없는 고정값이 되어 버린 셈이다.


내가 돌아가 쉬고, 충전하고, 삶을 보내야 하는 곳을 쉽게 버릴 수가 없다. 어찌 보면 조금은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 감정의 연필을 무디게 깎는다. 부드러운 글이 되도록, 부드러운 그림이 되도록 연필을 일부러 뭉툭하게 깎아 타인과의 공유된 삶을 살아간다.


내 20대 지점에서 이런 말을 들을 때는 비겁하다 생각했다.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삶을 사는 거라 여겼다. 40대 지점에서 다시 보았을 때, 어쩌면 이런 것이 사랑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보살핌, 관심 등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함만으로 충족될 수 없다. 모든 것의 바탕에는 희생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배우자에 대한 희생, 자녀에 대한 희생, 이것이 충족되지 않은 감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희생이라는 것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구성원들 하나하나가 1인분의 인간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우리는 당연히 돌보아야 하고, 배려해야 한다. 아이가 혼자 씻지 못하는 것처럼, 청소년들이 아직 돈을 벌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각 구성원들이 제 몫을 할 때까지 서포트를 하고 키워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희생이다. 희생은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상대방의 처지와 상태를 이해해야 한다. 상대의 모자란 점을 채워주기 위해서 내 감정을 날카롭게 표현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뭉툭한 감정이 도움이 된다. 희생은 말 그대로 많은 것들을 자기를 돌보지 않고, 자신의 목숨이나 명예 등을 바치거나 버리는 일이다. 그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일 리가 없다. 우리는 그 대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희생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상이 가족이기에, 대상이 삶의 이유가 될 수 있을 만큼 중대차 하기에 우리는 받아들인다. 희생을 결정한다면 자신의 것들은 때때로 포기해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중년의 감정의 진폭은 20대의 그것만큼 크고, 날카롭지도 않다. 오히려 작아지고 안정적인 감정의 진폭이 제대로 된 삶이런 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삶이 재미없어 보였던 것은 사실이 그럴 수도 있겠다. 감정의 진폭이 작아져 극도의 기쁨도, 슬픔도 느끼지 못하는 삶이 재미있어 보이지는 않으니까. 아쉽게도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라면 이제는 받아들여도 될 것 같다.






안녕하세요 성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런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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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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