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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Feb 13. 2024

마지막마음이들리는공중전화

내가 송연아였고, 유나은이었다. 정유화였으며 임상우였다. 나는 남겨진 자였다. 우리는 모두 남겨진 자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주를 하나씩 잃은 자들이다. 때로는 알 수 없는 이유와 연유로 이별을 맞이하게 되며, 그 까닭조차 답을 낼 수 없어 고통받는다. 남겨진 자들은 끊임없이 질문하지만 누구도 답을 해줄 수가 없다 그런 이별이 있다. 


나는 동생을 잃었다. 동생은 스스로의 이유로 극을 끝냈다. 우리는 그 연유를 짐작할 뿐 확신하지 못한다. 그 마지막 마음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책 속의 송연아는, 유나은은, 정유화는 모두 그런 이유로 고통받았다. 남겨진 자들의 답을 낼 수 없는 질문에 괴로워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들과 같은 질문을 품고 살았다. 


왜? 그의 마지막은 어떤 생각을 했던 걸까? 무엇이 그를 그 선택으로 이끌었나. 


강지안은 그들은 알 수 없었던 마지막 마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모두가 궁금해하던 그 질문의 답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부러웠다. 나도 그 공중전화를 찾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다. 남겨진 자들의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은 늪처럼 발목을 잡는다. 소설임에도 그 유가족이 부러웠다. 부러움과 질투에 책장을 넘겼다. 


송연아의 이야기가 끝이 나고, 유나은의 이야기가 끝이 나고, 정유화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마치 내가 전화를 받은 듯했다. 작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는지, 머리보다 마음으로 먼저 다가왔다. 책을 읽을수록 나는 남겨진 자의 죄책감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떠난 자를 그리워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이 소중한 누군가를 잃었다면, 그로 인해 힘든 하루를 버티고 있다면, 당신의 마음을 조금은 쓰다듬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남겨진 자의 후회에서 시작되지만, 우리가 지키지 못한 것은 떠나간 이가 아닌, 우리 자신일지 모른다. 


판타지 속의 이야기가 현실을 치유하는 힘이 되는 것은 작가의 글솜씨뿐 아니라, 작가가 이야기를 바라보는 경험과 시선의 차이가 아닐까? 아픔을 아는 사람이 그 아픈 곳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이수연 작가는 상처받고, 남겨진 자들의 아픔을 가만히 보듬어 주고 있다. 심리부검센터의 강지안 소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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