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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백을 가져온 남자 5

by 성준

"네 여기가 민박집인데 어떻게 오셨나요? 저희는 예약제라서요"

"네.. 혹시 여기에 40대 중년 남자 키는 보통 체격에 안경을 쓰고, 아.. 보스턴백을 가지고 나갔어요. 그런 남자 혹시 오지 않았을까요?"


"오늘 오신 손님이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찾으시는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네 박영준이예요"

"보자...맞네요 오늘 입실하신 분 성함이 박영준 님 맞으세요"

"그 사람 어디 있어요? 괜찮아요? "

"네... 저녁 드시고 지금 위에 계신데.. 안내해 드릴까요? "


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녀는 자동차의 시동도 끄지 않은 채 과수원 위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자동차를 쳐다보다, 그녀를 쳐다보다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리다 일단은 그녀를 쫓아 언덕 위로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매일을 오르내리던 길이다. 이제는 이곳을 한달음에 오르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녀와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무언가 필사적인 뜀박질이었다.


"헉... 헉... 저... 저기요~"

그녀도 나만큼이나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것 같았다.

"저... 저기요 헉~ 저 좀 데리고 헉~가 주세요... 헉~ 저기에 남편이 헉~ 있는 것 헉~ 같아요... 저.. 저 좀... 헉


나도 모르게 그녀의 팔을 잡고서는 걷듯이 잔걸음으로 그녀를 끌어 달렸다. 멈추면 울어버릴 것 같은 그녀의 눈을 보자니 천천히 가더라도 달려야 할 것 같았다.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올라가고 있는 길인데도 좀처럼 숙소에 다다르지 못하는 느낌이다. 저 멀리 파이어피트에서 두 남녀가 이곳을 내려다보이는 것이 보인다. 초로의 남자는 무언가 놀란 듯 허둥지둥 제자리에서 왔다 갔다 하더니 손으로 마른세수를 한다. 무언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여봇!!!"

"아... 어?!... 어~ 나 여기 있어"

"여봇!.."

".. 어.... 그래..."


남자가 허둥거리며 대답을 하는 모습에 안심했는지.. 오랜만의 전력질주에 지친 것인지 여인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팔을 잡고 있던 나도 덩달아 주저앉혀졌다.


".... 흑흑... 나 큰일 난 줄 알았잖아요... 우아아앙..."


여인은 무엇이 서러운지 아이처럼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여인의 울음에 남자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뛰어내려와 그녀를 마주 보고 땅에 주저앉았다.


"여기는 어떻게 왔어... 어떻게 알고...."

"엉엉.... 그게... 그러니까... 엉엉... 그런 편지를 써놓고 가고서는..... 내... 내가... 얼마나.... 놀랬는데... 왜..."

".... 미안해..."

"나 어떡하라고... 우리 애들은... 어쩌고..."


울음반 공기반 소리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남자가 여자의 어깨를 살포시 안고 등을 토닥이며 울음을 달래는 모습을 보니 분명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해진은 숨을 고르며 무릎에 힘을 주었다. 툭툭 바지를 털고는 천천히 올라 수인에게 다가갔다.


"오빠 무슨 일이래? 괜찮아? 아까 보니 넘어진 것 같은데.."

".. 난 괜찮아.. 우리 의자 하나 더 있었지? 그거 챙기고 따뜻한 코코아 한잔만 더 준비해 줄래?"

"응? 아! 그래 내가 준비할게 숨좀 고르고 있어"


수인이 준비하러 가는 모습을 보고 해진을 아래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남녀는 울며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수인이 의자와 차를 준비하는 동안 해진은 그들을 내버려 두었다. 초로의 남자는 무언가 열심히 설명을 하고 여인은 듣고 있다가 무엇이 원망스러운지 퍽 소리가 나게 남자의 가슴을 때리기도 했다.


"... 괜찮으시면 두 분 앉아서 이야기 나누세요. 저기 위에 의자와 차를 준비해 놓았어요"

"... 그럼 신세를 좀 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조금 쉬자. 하실 이야기가 많으신 것 같아.."

"그래 오빠. 손 좀 보자 아까 보니 피가 나는 거 같던데.."

"어? 그래? 정말이네 아야... 갑자기 쓰라려오는데?"

"으이구 엄살은 그 정도는 아니네요. 그래도 모르니 일단 소독하고, 약 발라줄게 가자."


해진과 수인은 두 남녀를 파이어피트 자리로 안내하고 담요와 뜨거운 코코아를 건넸다. 여인도 이제는 진정이 된 듯 보였다. 오랜만의 뜀박질 때문인지. 무언가 안심한 탓인지. 뜨거운 불기운에 달아오른 건지 여인의 볼이 붉게 물들었다. 그 붉은 뺨 위로 눈물이 한 줄기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잡고 있는 남자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해진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에게 시간을 주어야 할 것 같았다.


해진과 수인이 자리를 비켜주고,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아까와는 다르게 조용히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꽤 오랜 시간 말소리를 끊이지 않았다. 장작이 모자랄까 걱정이 되었지만 방해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불길이 사그라들며 두 커플의 모습이 점차 어둠 속에 잠겨갔다. 어둠에 그 모습이 물드는 만큼 소곤소곤 이야기가 그들은 감싸고 있었다. 오늘 밤이 짧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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