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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Mar 05. 2024

3월 첫째 주만 볼 수 있는 휴먼다큐

네 살 터울의 삼 남매를 키우다 보면, 이 맘 때만 경험할 수 있는 가슴 몰랑해지는 그런 장면들이 있다. 참고로 오늘은 막내의 6살 첫 유치원 등원일. 이야기에 앞서 그동안 긴긴 겨울방학을 아이들과 씨름하느라 고생하고 수고했을 우리 엄마, 이모,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기타 등등의 양육자분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이제 조금 숨통이 트이는 날이 왔습니다. 오늘만은 즐기세요


이 쯤되면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감이 오지 않는다면 자! 몇 가지 키워드를 줄게.


1. 5살

2. 첫 아이

3. 첫 등원


바로 첫 유치원 등원 장면이다.


어린이집을 졸업한 5살 아가들이 처음으로 원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새 가방과 운동화를 신고서 유치원 버스를 기다린다. 공주님들은 머리에 예쁜 핀으로 단장하고,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은 온 세상을 뛰어다니기 바쁘다. 3월이지만 여전한 찬바람에 볼이 빠알갛게 될까 엄마들은 알을 품은 암탉처럼 아이들을 품고, 아빠들은 무겁지도 않은 아이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며 몸으로 바람을 막는다.


꺄르르 웃음소리가 날카로운 바람을 타면, 그 순간은 바람마저 누그러진 듯 상냥히 불어온다. 새 학기의 설렘을 알까냐만은, 그저 새 옷과 새 신발 친구들이 좋은 아이들은 다가올 앞날은 생각지도 못한 채 마냥 즐겁기만 하다. 저 멀리 유치원의 버스가 다가오면, 부모들은 마음의 준비를 한다. 우리 아이의 첫 등원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동영상을 준비하고, 제발 울지 않기를. 제발 무사히 자리에 앉아 주고 예쁘게 손을 흔들어 주기를 기도한다.


그래도 형아들이 의젓하다. 고 나이대에 1년이라 함은 인생의 1/5이 될 큰 경험일 테니까. 제법 씩씩하게 버스에 오른다. 오늘부터 동생과 함께 등원하는 언니는 동생의 손을 꼬옥 잡고 함께 버스에 오르며 선생님께 말한다.


"제 동생이에요 오늘부터 함께 유치원에 갈 거예요"


아기인 줄만 알았던 꼬맹이들이 동생도 챙기는 모습을 보면 이렇게 봄이 오는구나 싶다. 말라비틀어진 가슴속에서 예쁜 싹이 솟아오를 것만도 같다. 하나 두울 버스에 오르고 자리에 앉아 이제는 안전벨트까지 손수 채운다. 또 울컥한다.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고맙기도 하다.


자 우리 신입생들 차례다. n년차 엄마들은 이제 뒷자리로 비켜주고, 위풍당당 신입아가들이 버스에 오를 차례다. 이제부터 부모들의 카메라 잔치가 시작된다. 첫 등원 장면을 기록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나도 그랬다. 그것도 세 번 다 그랬다.  


영문도 모른 체 형아들이 오르는 버스에 함께 오른다. 같은 옷을 입은 친구들이 버스에 오르니 덜 낯선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첫 등원 풍경이 완성되나 싶을 무렵. 그렇지!!


한 공주님이 울음을 터트린다. 엄마의 가랑이 사이를 요리조리 숨으면서 엄마의 손을, 선생님의 손을 피한다. 이미 얼굴을 눈물범벅에 콧물도 한 가득이다. 예쁘게 땋은 머리는 헝클어지기 일보직전이다. 불안한 맘에 종종거리는 아이의 스텝에 뒤에선 형아들의 부모들은 빙그레 웃는다.


"우리 아이도 저랬지"

"3월이면 저 장면들은 꼭 봐야 하는 장면이야"


아이의 부모만 안쓰럽고 속이 탄다. 의외로 버팅기는 아이는 무겁다. 온몸으로 저항하는 것이 어찌 가볍겠는가. 5살아이의 인생이 걸린 저항인 셈이다. 선생님과의 합작으로 아이를 버스에 앉혀 안전벨트까지 채우면 아이는 이제 몸부림을 포기한 체 버스에서 내리는 엄마를 원망 어린 시선으로 쳐다본다.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울먹울먹 한 처진 눈이며, 입꼬리며 보고 있자면 가슴 한켠이 아련이 아파오는 아이의 모습이다.


물론 이 장면도 아이의 부모에게만 해당된다. 한바탕 경험하고 난 n년차 형아들의 부모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재밌다. 3월 이맘때만 볼 수 있는 휴먼 드라마다. 아이의 성장기와 부모의 성장기를 함께 경험할 수 있다. 첫 아이의 울음이 안타까워 몇 번을 버스에서 내렸던 기억도, 며칠이 지나자 무정하게 버스 안으로 밀어 넣었던 나의 기억도. 그렇게 울고 불고 떼를 쓰던 아이도 적응을 했는지, 체념을 했는지 고개를 푸욱 숙이고 터벅터벅 버스에 오르는 명장면은 한 인간의 성장을 그린 휴먼 다큐와도 같다.


3월에만 볼 수 있고, 3월에만 만날 수 있는 아이의 성장기가 난 좋다. 내게는 벌써 3번째 반복되었고, 년차로 따지면  10년이 된 장면이다. 그래도 3월 이 장면은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봐라 그 몰랑한 장면이 단단해 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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