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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Feb 29. 2024

권태기는 부부사이에만 오는 줄 알았다.

익숙함이 주는 함정에 살짝 발을 담가 버렸다. 우리는 곧잘 그러곤 한다. 낯선 감정이나 일들이 익숙하게 다가올 무렵이 되면 한 번쯤 걸려 넘어지게 된다. 익숙함이라는 함정은 모습을 달리 하면서 우리에게 경고를 하곤 한다. 자신의 존재를 잊지 말라는 듯 말이다. 


연인들 사이에 익숙함은 권태로 다가온다. 전화를 거는 생각만으로도 두근거리던 심장은 오래지 않아 상대의 체온을 느끼는 순간에도 차분한 박동을 유지한다. 이제 설렘보다 편안함이 더 크다. 처음부터 이렇게 만나왔던 사람 같은 착각마저 든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몇 시간의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상대를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기도 하고, 더 예쁘게 보이고 싶어 자신을 꾸미는 노력을 다한다. 분명 그랬던 적이 있었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빈 노트만 보아도 마음이 콩닥콩닥 거리며, 무엇을 써야 할지 머리를 쥐어짜던 시기가 있었다. 내가 쓴 글을 몇 번이고 다시 읽고, 고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기도 하고, 그런 때가 있었다. 완성된 글을 혼자 읽고선 뿌듯해하기도 하며, 내 글에 사람들이 눌러주는 반응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했다. 글쓰기에도 익숙함이 찾아올 줄 몰랐다. 매번 새로움을 고민하는 글쓰기에 권태가 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내게 글쓰기의 권태가 찾아왔다. 


글을 쓴다는 것에 두려움이 찾아왔다. 빈 여백에 글을 채워간다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웠던 일인가 싶을 정도로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한 줄을 쓰고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한참 쳐다보다가 또 깜빡이는 커서를 보고는 생각을 쥐어짠다. 잘 나올 리가 없는 문장을 일단은 써 놓고, 나중에 고쳐보자 마음먹는다. 그렇게 겨우 한 줄을 더 채웠다. 이런 일들의 반복이다. 머릿속에 머물던 생각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문득 왜 써야 하는 거지? 란 생각이 든다. 문득 겁이 난다. 이런 것이 양가감정이던가? 특정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되는 유형의 행동, 의견, 감정 사이에서 동요하는 경향성으로 상반된 감정이나 태도가 동시에 존재하고, 두 가지 상반되는 목표를 향해 동시에 충동이 일어나는 상태라는 양가감정을 나는 글을 쓰는데서 느끼게 된다. 쓸 것들이 많고 쓰고 싶으면서, 이걸 써서 뭐 하나.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는 짓인가 싶을 감정이 동시에 드는 형국이다. 하고 싶으면서 하기 싫은 이 감정.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다들 이런 감정쯤은 다 겪어보며 지나가는 일이겠다. 경험상 내가 겪는 문제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도 겪을 만한 문제였었다. 나만 특이한 경험을 하는 일은 잘 없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글 쓰는 이들은 겪는 일일 것이며, '그게 뭐 대수라고... 그냥 써. 그냥!' 라며 응원해 주실 분들도 계실 것도 같다. 그런 응원을 미리 받았다 생각하고 나는 이 글을 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어찌 되었건 넘어가는 법을 찾는다. 은근슬쩍, 스리슬쩍, 어물쩍 넘어가는 법을 알게 된다. 나도 이렇게 권태를 스을쩍 넘기려 한다. 응원도 받았겠다, 이쯤이면 많이 쉬었던 셈이니 괜찮다 자위하고 권태란걸 모르는 척  비켜가야겠다. 그나마 이런 글이라도 쓸 수 있는 건 아직은 권태에 아주 발목을 잡힌 건 아닌 듯하여 다행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글 한편을 썼기에 처진 어깨 토닥이며, 내 스스로 수고했다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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