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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Mar 11. 2024

10년 숙성비법 상처 극복기

하루종일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때가 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지나버린 점심시간을, 열중한 나머지 예매한 영화시간을 까먹기도 한다. 그런 날은 몸이 물먹은 솜같이 무거우면서도 때로는 무언가 해내고 있다는 성취감이 들 때도 있다. 살아가고 있다는 만족감말이다.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 천근 같은 몸으로 집으로 돌아와 정말 말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질 때면 오늘 하루 고생했다며 나를 다독이기도 하고, 녹록지 않은 현실을 살짝 원망도 하곤 한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곤 한다.


그렇게 바쁜 하루가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툭 하고 스위치가 꺼질 때가 있다. 열심히 달리고 달리던 자전거에서 체인이 팍 하고 빠지는 느낌이다. 나는 여전히 페달을 밟고 있는데 바퀴는 헛돌기만 하고, 자전거는 느려지고 종국엔 균형마저 잃게 된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자전거에서 내려 체인을 손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 옆 길가에 누워 있는 것이 종량제 봉투가 아니라 내가 될 수도 있다. 특별한 사건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누구나 한 번쯤은 맞이하고, 일어서는 순간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은 그리 특별치 않다. 다른 이들처럼 우리도 성공하고, 아파한다. 나의 상처나 영광이 더없이 기쁘고, 우울할지 몰라도 어찌 보면 병가지상사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재빠르게 체인을 갈고, 고쳐 재빠르게 레이스에 다시 오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영 솜씨가 시원찮아 한참이나 그 자리에서 머물러야 하기도 한다. 손이며, 옷에 기름칠은 당연한 수순이겠다. 그러다 결국 다른 이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온다. 이것은 부정해도 소용없는 인생의 단편이다.


노력 끝에 레이스에 다시 올랐다 해도, 우리의 레이스는 상당히 달라져 있다. 어떤 이에겐 휴식이 달콤함이 되어 더 힘을 내서 페달을 밟기도 하고, 다른 이에겐 뒤쳐저 버린 순위에 가슴 아파하는 원망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멈춤의 순간을 잘 보내서도 아니고, 잘 못 보내서 벌어진 결과도 아니다. 똑같은 시간을 아파했던 사람도 모두 똑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의 삶은 지극히도 주관적이고, 지극히도 개인적이다. 모든 조건이 같은 사람에게서 전혀 다른 대답이 도출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인간의 삶과 감정은 유기적이고, 복잡하다. 직설적이고 일방적이지가 않다. 과거의 일들이 상처가 되기도 하다가 교훈으로 변하기도 하고, 과거의 영광이 자신감의 원천이 되다가 실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삶은 복잡다단하다.


과거의 일은 변하지 않는 일이다. 이미 벌어져버린, 확정되어 있는 사실이자, 고정값인 셈이다. 이제와서는 우리가 변화시킬 수 없다. 우리는 그 고정값으로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곤 한다. 어찌 보면 고장 난 계산기 같다. 똑같은 수를 넣었는데 계산기마다 다른 답이 나온다. 똑같은 시련을 주어도 누군가는 밟고 일어서고, 누군가는 그 시련에 아주 파묻혀 버렸다. 우리가 삶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 어떤 답이 도출될지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각각의 계산기가 연산하는 방식은 같지 않다. 계산기 고유의 연산법으로 답을 도출하기에, 내 실패가 나에게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연산을 해봐야 알 수 있다. 미리 미래를 포기하기 이르다는 것이다.




자전거의 체인이 고장 나면, 누구나 당황스럽다. 어떤 사람은 몇 번씩 경험하기도 하겠지만, 모두 처음의 순간은 있다. 처음으로 자전거 체인이 고장 나 더 이상 달려갈 수 없을 때의 그 당혹감은 크다. 레이스는 끝이 난 것 같고, 자전거는 고쳐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대부분 고친다. 예전같이 매끄럽지 않을 수도 있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그래도 열에 아홉은 그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로 향하게 된다. 유명한 드라마 대사처럼


"누구나 가슴에 상처 하나쯤은 안고 사는 거잖아요..!!"


그렇기에 상처를 치유하는 법, 다시 레이스에 오르는 법은 크게 새로 배울 것은 없다. 뻑뻑한 체인에 기름을 치고, 톱니에 체인에 제자리에 걸리도록 천천히 아귀를 맞추고, 무리하지 않는 기어로 언덕과 내리막을 균형 있게 달려주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그 멈추었던 순간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자세에 있다. 성의 없는 대답이라 욕할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에게 문제는 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서 얻는 상처들도 있다. 완벽할 듯 한 엄마 친구 아들에게도 상처와 고민은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주욱 있을 예정이다. 냉정한 현실은 엄마 친구 아들은 그 상처가 그의 발목을 잡고 있지 않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누구나 안고 사는 상처가 왜 유독 나에게만 쓰리고 아프고 무거울까? 왜 나는 지난날의 상처를 자꾸만 돌아보고, 아물어가는 딱지를 다시 떼어내어 덧나게 할까? 우리가 집중해야 할 곳은 상처 입은 순간보다 상처를 회복하는 순간인지 모른다. 최선을 다해 치료한 상처에 우리가 또다시 걸려 넘어지는 것은 상처를 돌보는 과정을 소홀히 해서 일 것이다. 어떻게 넘어진 것인지, 이 상처로 내가 무엇이 달라졌는지 천천히 돌아보고 받아 들어야 하는 일들을 소홀히 했기에 다시 겪어야 할 족쇄가 되어버린지도 모른다.


나의 상처는 이것 때문에 생겼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극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앞으로 내가 할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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