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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May 16. 2024

그깟 키위 하나가 뭐라고...

마트를 드른 아내가 전화를 한다. 


- 엄청 큰 키위가 10개에 12,800원이래 이거 살까? 집에 키위 남았나? - 

- 응 아직 키위 6-7개 남아 있어. 나중에 다 먹고 사도 될 거야 - 

- 근데 이거 엄청 싸게 파는 거야. 애들 키위 좋아해.. 내가 아껴 먹으라고 했단 말이야. - 

- 그럼 사던지.. 왜 나한테 묻는 거야? - 

- 아니 키위가 싸니까.. 나 저번에 더 작은 것도 18,000원인가 주고 샀는데.. -

- 근데 우리 대출이 아직 많이 남았어. 그런 것부터 정리해야 하는 거 아냐? - 


다른 일로 마트를 들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키위를 싸게 파는 것을 보고 아내가 전화를 했다. 나는 괜스레 집에 남아 있는 키위도 있는데 또 키위를 사려하는 아내가 못마땅하여 한소리를 했다. 대출도 많은데 자꾸 낭비한다는 뉘앙스로 들렸으리라.


- 아니... 그러니까.. 내가 열심히 돈 벌어서 애들 먹고 싶은 것 좀 먹이겠다는데... 그런 소리 할 거면, 어서 돈 벌어올 궁리 부터해.. 내가 지금까지 뼈 빠지게 일해서 너랑 애들하고 싶은 거 다 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당신 하고 싶은 거나 하고 살면서 돈 벌 생각도 안 하면서 나한테 꼭 그렇게 이야기해야 해? - 

- 뭐? 그럼 내가 이런 말도 못 해? 나는 돈 벌어오기 전까지는 그럼 아무 말도 못 하고 살아야 하는 거야? 그럴 거면 나한테 왜 물어본 건데? - 

- 지금까지 그렇게 뭐 좀 해봐라. 해봐라 하는데 할 생각도 없고, 지금까지 내가 잠 못 자고 일해서 이렇게 만들어 온 건데 나한테 그렇게 말해? 그럴 시간에 나가서 돈 벌어올 생각부터 먼저 해-


우리는 또 폭발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요 며칠 너무 싸우기만 했다며,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던 우리는 또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아내가 보살이다. 나는 결혼 후 2년 정도만 월급을 가져다주었을 뿐이다. 첫 직장의 이직에서 실패한 후로 제대로 된 월급봉투를 가져다준 적이 없다. 무엇하나 일을 벌일만한 머리도 없어 아내가 하는 일에 손을 보탤 뿐이었다. 그나마 아내 없이는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는 일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내가 전적으로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살아왔다. 그리고 나는 육아라는 그늘 뒤로 숨어 버렸다. 그렇게 10년을 살아만 왔다. 힘든 일은 외면하며, 아이를 돌본다는 방패로 숨어 살았다. 


다행히 경제적으로 많이 부족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아내가 영혼을 갈어넣어 일구는 사업이 우리 집안의 기둥이 되었다. 친구들은 팔자 좋은 놈이라며 놀려대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속으로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돌아보면, 아내도 참 복장 터지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 같은 남편을 만난다면 어떻까 생각해 보면... 참 불행하겠다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 같은 남편은 어디 포털의 조롱거리나 푸념거리가 되기 딱 좋은 남편상이겠다 싶다. 경제적인 능력 없는 남편. 밖에서만 사람 좋다는 이야기나 듣고, 실속은 없는 남편.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싫은 일은 안 하려고 하는 한량 같은 사람. 철도 없어 여태껏 하고 싶은 일만 하려고 하는 사람. 쓰면서 보니 비참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온 것은 아니다. 아내를 대신하여 육아를 했고,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내의 일에 일손이 필요할 때면,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몸을 쓰기도 한다. 자질구레한 일들은 오롯이 내 담당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성 역할이 바뀌었을 뿐이다. 최고의 내조를 하거나 육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집 안이 굴러가게 한쪽 바퀴를 담당하고는 있다. 


문제는 이것 모두가 '돈을 벌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미가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남성의 역할은 어찌 되었던 경제적인 부분을 담당할 때 빛이 난다. 이후의 자상하고, 잘 놀아주고, 육아의 참여도가 높은 남편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필수요건인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나머지 것들은 별로 의미가 없다. 


변명이겠지만, 이제는 답이 없어 보인다. 10년을 경력단절로 살아왔기에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하는 것은 어렵게 되었다. 아직 막내가 어린 탓에 풀타임 직장을 잡는 것도 쉽지 않다. 참... 적어놓고 보니... 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더 힘든 사람도 살고 있고, 더 어려운 사람들도 제 몫을 하며 살아가는데 난 여전히 조건과 환경을 탓하며 살고 있으니 아내의 화풀이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님을 알겠다. 


미련하게도 나는 글을 쓰면서 먹고살기를 바란다. 언젠가는 내가 쓰는 글이 책이 되고 사람들에게 읽히게 될 거라는 꿈을 꾸고 살아간다. 아마도 어렵겠다. 그렇게 살아가기란. 


꿈만 꾸기에 나는 나이가 많고, 현실이 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현실 속에서 꿈을 위해 살아가는 데, 나는 꿈속에서만 헤매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니 팔자 좋은 놈이란 소리를 들어도 아무 말할 수 없는 거다. 내가 나를 잘 알고 있으니까. 


키위가 뭐라고... 아니 키위 덕분에 좀 더 나의 자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꿈속에서 살고 있고, 현실로 내려와야 할 시기라는 것. 최소한 인간으로, 남자로서의 도리를 할 때라는 것... 나도 못된 게.. 다툼을 하고 반성을 하면서 결국 내가 못나서 그런 이야기 조차 할 수 없다고 나 자신에 화살을 꽂고 있다. 아내의 어려움을 이해할 생각은 안 하고. 


타인을 비난하는 것보다 나 자신에 화살을 꽂는 것이 익숙하다. 나만 잘하면 세상일은 문제가 없다는 생각만이 맴돈다. 




나도 아내도 서로 상처주려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스스로들 마음속에는 알고 있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때때로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쏟아내곤 한다는 것이다. 알고 있는데... 아내가 얼마나 힘들게 일을 하는지, 얼마나 마음고생을 많이 하며 생활하는지 알고 있는데 맘과 같지 않다. 나 역시 현실의 어려움을 그저 이해해 달라 생각할 뿐, 아내 말처럼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오지 않았던 것도 틀리지 않다. 


창피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부끄럽다. 나 스스로 못난 사람임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알면서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스스로 이기적이고, 못나게도 살아온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십 년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왜 굳이 이제와 고백을 하느냐 묻는다면, 바로잡기 위해서다


곧잘 입으로만 내뱉고 실천하지 않았던 내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스스로 검증받기 위함이다. 나는 달라지고 싶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그래서 부끄럽게도 나의 가장 창피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언제고 지금의 선택을 잘했다 말할 수 있도록 되새기며 살아가겠다. 

지금의 내가 아닌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고작 키위 하나 때문이 아니라. 

키위 하나 덕분에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필요성을 느꼈다. 

아내에게는 미안하고 

키위에게는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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