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온 전화였는데요??-
수인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채근하며 물었다. 서윤은 커피를 마시며, 잠시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꼿꼿이 지탱해 오던 자신이 무너지듯 의자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날을 타오르는 불길로 던져버리고자 마음먹었다.
-병원 간호사였어요. 영호의 보호자가 맞는지 확인하시려 연락을 주셨어요. 깨진 휴대폰 액정 속에서 간신히 제 번호를 찾아 전화를 주셨어요. 퇴근 시간이 다 될 무렵에 배달 전화가 왔나 봐요. 영호는 퇴근하면서 배달을 하려 했나 봐요. 배달비를 아끼려고 본인이 직접 배달을 나갔어요.
그리고는 신호위반 차량에 사고가 났어요. 음주에 신호위반의 차량이었데요. 병원에서는 자세한 설명은 해주지 않았고, 그저 남편분이 사고가 나서 여기 병원에 있다 알려주셨어요.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어요. 핸드폰 하나만 들고 무작정 집을 나서 택시를 탔어요. 그리고 병원으로 가는 동안 계속 영호에게 전화를 했어요. 그럼 영호가 전화를 받아서 나 괜찮아라고 말해줄 것만 같았거든요. 전화는 아무도 받지 않았고, 택시는 금방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어요 그제야 알았어요. 제가 지갑도 없이 집을 나왔다는 걸요. 이미 눈물범벅에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리다 기사분께 제 전화번호를 남기고 꼭 계좌이체를 드리겠다며 양해를 구했어요. 그리고는 응급실로 뛰어 들어갔죠.
사람들은 많은 데 영호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어요.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 갈팡질팡하는데 접수해 주시는 분이 제 모습을 보시고는 물어보셨어요. 저는 영호를 찾는다고.. 오토바이 사고가 난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분이 안내를 해주셨어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어느새 신발 한 짝이 사라졌나 봐요. 차가운 바닥이 발바닥에 느껴지는데 저쪽 침상을 가르치는 거예요. 가려진 커튼을 열어 영호를 만나려 했어요. 커튼을 걷었는데도 영호 얼굴이 보이지가 않는 거예요. 대신 침대에는 하얀 천으로 덮여진 누군가 누워 있었어요. 하얀 천이었는데 군데군데 핏자욱이 보였어요. 아주 아주 빨간 자국이요.
아...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아 지나가는 간호사를 잡았어요. 여기 이 사람이 영호가 맞느냐고요.. 간호사는 잠시 주저하시더니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다고 하셨어요. 제 손을 잡으시고 머리 위의 천을 살짝 걷어주셨는데 영호가 누워 있는 거예요. 얼굴에 핏자욱이 말라 붙어 있는데 영호는 그냥 누워 있는 거예요. 나랑 아기가 왔는데 말도 안 하고 가만히 눈을 감고 쉬고 있는 것 같았어요..
영호를 깨우려고 얼굴을 쓰다듬는데 생각보다 차가운 얼굴에 깜짝 놀랐어요. 너무 놀라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갑자기 제 몸도 차가워지는 것 같고, 머리부터 싸늘한 기운이 뚫고 내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는 기억이 나질 않아요.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침대에 누워 있었어요. 옷도 갈아입혀져 있었는데.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어요. 아랫배가 싸늘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주위에 지나가시는 간호사를 보고는 제가 왜 여기에 있는지를 물었어요.
영호를 보고는 제가 정신을 잃었다고 하셨어요. 간호사님께 우리 영호는 어디에 있냐고 물었더니.. 영안실로 옮겨졌데요.. 영호를 보러 가야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제 어깨를 살포시 잡으시더니 좀 안정을 취하셔야 할 거라고 하셨어요. 그러고 보니 제 팔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고, 좀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게 이상했어요.
아닐 거라고 믿었지만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어요. 아기는... 아기는 괜찮냐고요.. -
불꽃은 서윤이의 감정처럼 격하게 일렁거리다가, 다시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갑자기 한기가 몰아친다. 수인이는 차오르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벽에 쌓아둔 장작을 몇 개 집으러 발걸음을 옮겼다. 서윤이는 차가워진 손을 불길에 쬐며 눈을 감았다. 허전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천천히 사그라 드는 온기가 느껴졌다. 영호와 아이의 유골함을 들었을 때 너무 따뜻해서 깜짝 놀랐다. 두 개의 유골함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두 팔로 꼭 안아주었다. 나를 안아주던 영호의 손길이 그리웠고, 아직 안아보지 못한 아이를 놓치지 않으려 꼭 안아주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영호와 아이를 안은 두 팔로 눈물을 닦아낼 수 없어 흐르도록 두었다. 입술을 깨물고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서윤이는 친척도 없고, 친구도 없었다. 장례를 어찌해야 할지도 몰랐다. 병원에서 마냥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커피숍 사장님께서 오셔서 서윤이를 챙겨주셨다. 영호와 아이의 장례를 맡아주셨고, 화장터를 예약하고 납골당도 예약해 주셨다. 납골당으로 가는 차도 없어 커피숍 사장님께서 직접 운전해 주셨다. 납골당으로 가는 차 안에서 서윤이는 영호와 아이가 점점 차갑게 식어가는 걸 느꼈다. 마치 서윤이에게 작별하듯 천천히 식어가는 온도가 서윤이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납골당에서 영호는 서윤이와 볕이 잘 드는 가족실에 모셔졌다. 안아보지 못한 아이와 아빠가 한 집에서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이름도 없어 영호와 서윤이의 유일한 가족이라고 유골함에 새겼다. 영호와 서윤이를 납골당에 남겨두고 서윤은 홀로 돌아왔다. 모든 과정을 커피숍 사장님께서 챙겨주셨다. 집 앞에서 서윤이를 내려주시고 사장님은 말없이 서윤이를 꼭 안아주셨다.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주시는 손길은 영호의 그것과는 다르게 따스한 온기가 남아있었다.
서윤은 더 이상 흘릴 눈물이 남아있지 않을 줄 알았는데.. 속절없이 사장님의 가슴에 기대어 소리 내어 울었다. 사장님은 서윤이의 머리를 가만히 쓸어 주시며 괜찮아... 괜찮아... 되뇌어 주셨다.
이미 해는 뉘엿 저물어가고 있었고.. 곧 파르스름한 어둠이 골목을 메워갔다.
며칠을 비워진 집안에는 아직도 영호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그의 옷가지가 그대로 있고, 함께 찍은 사진이 남겨져 있고, 그가 좋아하는 반찬이 냉장고에 남아 있었다.
서윤은 침대에 무너지듯 누워 영호의 옷가지와 미처 입혀보지 못한 아이의 배넷옷을 끌어안고.. 새우처럼 몸을 동글게 말았다. 서윤이는 보육원에서의 첫날이 떠올랐다. 옆에는 영호가 있어고, 서윤이는 영호의 옷소매를 살짝 잡고서야 잠에 들었었다. 그날 밤이 떠오르며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서윤이는 또 그곳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혼자였다.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외로움은 서윤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큰 무게로 다시 서윤이를 누르기 시작했다. 밤은 점점 더 깊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