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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May 30. 2024

짜증으로 모든 감정을 퉁치지 마세요(feat. 김영하)

하루에도 몇 번씩 짜증이 났다. 

미리 챙겨놓으라고 말한 아이의 가정통신문을 식탁 위에서 발견하고는 짜증이 났다. 

운전 중에 신호 없이 끼어드는 몹쓸 차량에 짜증이 울컥 솟았다. 

예쁘게 깎아 놓은 연필로 메모를 남기는데 똑하고 뿌러저버린 연필심에 짜증이 났다.

마트에서 정성껏 고른 과일의 아랫부분에 곰팡이를 보고는 또 짜증이 났다. 


그런데 나는 짜증이 난 것이 아니었다. 

미리 챙겨놓으라고 말한 아이의 가정통신문을 두고 간 아이가 곤란해 질까 걱정이 되었고, 

운전 중에 신호 없이 끼어드는 몹쓸 차량에 사고가 날까 봐 덜컥 심장이 내려앉을 정도로 놀랐고, 

예쁘게 깎은 연필의 심이 똑 부러지자 당황했고, 

마트에서 정성껏 고른 과일의 곰팡이를 보고 마트의 눈속임에 실망을 한 것이다. 



오늘의 하루를 돌아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조금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아침 햇살과, 그보다 더 환하게 웃을 수 있었던 막내아들의 애교들. 잔뜩 쌓아놓은 설거지와 집안일에 잠시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고, 무례하게 엘리베이터를 밀고 들어오는 탑승객에 당황하기도 했다. 몇 번의 신호를 기다려야 건널 수 있었던 꽉 막힌 도로에 답답해했고, 정체를 벗어나자마자 시원하게 뚫린 도로에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어두워진 짙은 구름에 아이들 하원길에 비라도 내릴까 걱정이 되기도 했고, 오늘 내어 놓아야 할 분리수거에 조급해지기도 했다. 하루를 돌아보니 나는 참 많은 감정을 느끼며 보내고 있었다. 


김영하 작가는 강의에서 만난 학생들에게 <짜증 난다>는 말과 단어를 금지시킨다고 한다. 짜증이라는 한 단어 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수한 감정들을 우리는 느끼고 살아간다. 그 결이 다른 감정을 '짜증 난다'는 말로 퉁치면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인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감정을 좀 더 세세하게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짜증 난다는 말로 뭉뚱그려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글쓰기 능력인 것이다. 


나는 그간 얼마나 많은 말과 글에서 내 감정을 뭉뚱그려 놓았을까? 기쁘다. 행복하다, 힘들다, 짜증 난다의 적당한, 익숙하고 편리한 단어들만으로 내 감정을 표현해 왔을까?  그저 쉬운 단어와 말만 골라 써 왔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 나의 언어라고, 나의 말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들이 그저 익숙하고 편리한 것들만으로 안주해 버린 내 모습을 발견해 조금 부끄러웠다. 


글 속에서도 우리는 많은 일들을 겪는다. 인간의 삶이 통째로 녹아있는 글에는 등장하는 사람의 수 보다 훨씬 많은 감정들이 오고 가고, 표현된다. 그 감정들이 이야기가 되고, 독자들이 공감하는 포인트가 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요소가 되곤 한다. 우리는 그 중요한 포인트를 얼마나 주의 깊게 고민했을까? 


감정을 파고든다는 것은 단순히 나의 기분이 어땠을까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었던 사건이 동반된다. 어떤 일들로 인해서 인간이라면 느낄 수 있는 감정들 속에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는 것이다. 이는 문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사건과 화자의 관계와 시간의 흐름 등 많은 요소를 꿰뚫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감정을 잘 표현한다는 것은 사건을 잘 이해한다는 것이고, 화자와 얼만큼 동일시되었는지 깊이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게 까지 해야 해? 

물론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까지 파고들 필요까지는 없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일상의 대화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작가가 대단한 사람이서가 아니라, 그 장면을 가장 잘 전달하고 표현하기 위해서 그 감정을 나타낼 수 있는 글과 단어를 고르는 수고정도는 해야 할 것이다. 일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일을 더 잘하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고, 배운다. 


글도 일이다. 


잘 쓰고 싶다면, 당연히 한 번 더 해체하고, 조립하고, 다져보고, 뒤집어 봐야 하는 노력은 당연하다. 우리가 감동받는 작가들의 글과 책들은 정말 그런 노력도 없이 천재적인 재능으로만 탄생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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