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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un 04. 2024

과 말고 랑

어느 바람결에 흘러 들어온 이야기. 


어젯밤에 너무 달렸다. 코로나 시기에 못했던 회식이고, MZ세대 신입 사원도 들어와 회식 문화가 조금은 변했을 거라 믿었건만, 방송판의 회식은 변한 게 하나도 없다. 근로시간의 규칙 따위는 잊고 살아가는 존재들. 저마다 자부심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매너리즘에 빠져 시청률의 지표에 목을 매는 존재들. 미디어의 홍수로 이제는 'One of them'이 되어버린 존재들. 그럼에도 과거의 영광 속에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꼰대마인드의 선배들. 


평소에 과묵한 선배들마저 회식자리에서는 신입 때의 패기와 열정이 살아나는 것 같다. 줄기차게 말아 마셔대는 소맥에 정신도 함께 말아져 버렸다. 몇 차까지 


놓아버릴 것 같은 정신을 차리려 밤바람을 쐰다. 건물 옆 작은 공간에 커풀이 다툰다. 

싸움 구경은 언제나 재미있지.


커플이 투닥거리며 다투고 있었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여성이 연신 사과를 하고 있었다. 보통 남성이 사과를 하는 그림이 익숙한데. 새롭다. 그래서 귀가 쫑긋하다 


남자는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다. 발끝으로 바닥만 톡톡 치며 딴청을 피운다. 화가 잔뜩난 표정은 아닌데..쉽게 받아줄 모양은 아닌가보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미안하다고! 내가 진심으로 사과할게!"



남자애가 말한다. 


"과 말고 랑..."


헛.. 술이 확 깬다. 허허허

푸릇 돋아 난 싹들이 봄바람에 예쁘게도 춤춘다. 

푸릇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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