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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Apr 08. 2022

40대의 굳은 심장이 다시 말랑해 지는 순간

왜 가끔 그럴 때 있잖아. 

퇴근길 오래 된 동창에게 전화를 걸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명절에라도 한 해 한 두 번 얼굴을 보던 사이였는데, 못 본지 꽤 되었다. 초등학교 부터 알아왔으니 거의 30여년의 인연이다. 인연이라 해 봐야 고등학교 졸업 후 일년 에 한 두번쯤이거나 혹은 몇 년을 못 보고 살거나 했던 관계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인연에 가끔 생존여부를 확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주말 퇴근 길이 막히는 지 네비게이션은 돌아가지만 빠른 길을 안내해 주었고, 막히느니 달리는게 심리적으로 나을지도 모른다 위안하며 초행에 가까운 길로 핸들을 돌렸다. 


몇년 만에 누른 번호에 새삼스레 가슴이 콩닥거렸다. 차라리 받지 말아라라고 생각할 때 쯤 건화를 받았다. 

특유의 하이톤이다. 아주 높은 하이톤은 아니고, 그저 조금 텐션이 높은 톤이라 해야겠다. 


- 이~여! 이게 누구야? 오랜만이네?

- 어 잘 지내셨나? 애는 잘 크고?

- 뭐 우리애야 늘 그렇지. 너희 애들은 잘 크고 있어? 언니는 여전히 바쁘고?

- 무럭무럭 자라지요. 이제 막내가 36개월쯤 되어가고


몇년 만에 서로의 근황을 물어보는지라 물어볼 것도 많다. 실상 대답의 내용은 그리 중요하지도 기억남을 이야기도 아니지만 이렇게 서로 어떻게 지내왔는지 대략 확인을 한다. 뭐 별 다를 건 없다. 그 아이나 나나 서로 각자의 삶에 충실해오고 있었던 것 뿐이다. 


- 오랜만에 전화주니 반갑네~ 코로나로 애들 모임 못한지도 꽤 된 것 같네.. 어떻게 지내는지 뭐. 다들 잘 있겠지만.. 

- 그러게나 말이다. 이제 조금씩 나이가 드니 새롭게 만날 사람들도 없고, 그저 친구들끼리 모여 옛날 이야기나 나누는게 낙이기도 한데.. 그게 아쉽네

- 그치? 요즘은 일 아니면 어디 친구들 만들기가 쉽지가 않아요. 동네 엄마들이랑 만나도 어느 정도 선이 있으니 예전 친구들같은 느낌도 아니고.. 그렇다고 직장에서 그렇게 친해지기도 어렵고.. 때로는 정말 그립다니까..

- 내 말이... 그냥 어쩌면 우리들의 가장 반짝였던 순간들이 그리운가봐. 그 시절을 자꾸 꺼내고 싶은데 누군가 내 반짝이는 시절을 알아야 대화가 될텐데.. 그게 옛 친구들 밖에 없으니. 그런 수다를 못해 아쉽네


- 그치.. 가끔은 그게 그리워. 맨날 일 전화나 그런 것만 받다가 이런 이야기 하는 전화를 받으면 왠지 가슴이 말랑해 진다니까. 옛 생각이 스물스물 떠오르면서 가슴이 찌르르 하기도 하고


- 늙었네 우리.. 그래도 예전에 우리 어릴 때의 40대 보다 우리는 좀 젊게 살고 있지 않을까?

- ...바램이야 우리 나이대가 가지는 바램 지금의 10대 20대는 우리가 그 때 40대를 보던 시선으로 우리를 볼걸? 


- 그게 맞네.. 맞아..




나이가 40이 너머가면서 당연하듯 살아왔다. 가정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친구들과의 만남이 줄어들면서 감정이 조금씩 무뎌져가는 것이 당연하듯 살아왔다. 피가 끓는다는 20대의 성격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얌전해지고 감정기복이 심하지 않은 적당히 잘 적응해 나가는 어른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40대라고 심장이 뛰지 않을리는 없다. 감정이 없을리도 없다. 하지만 40대 이후의 감정과 심장은 그런 데 쓰라고 있는건 아니란다. 나를 위해서 쓰기보다 가족을 위해서 써야한다. 그래야 한단다. 가정을 이룬 어른의 의무이며,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대견하다. 


오랜만에 통화를 하면서 평소에 느껴보지 못한 조금은 낯선 감정이었다. 무언가를 해서가 아니라 오랜만에 나의 어린 시절을 알고, 그 시절의 수다를 나눌 수 있게 되어서 그 순간의 감정들이 끄집어져 내어졌던 것 같았다. 순간은 평소 느끼지 못한 감정들에 심장이 조금은 말캉해진 것 같았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우리들에게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민망함에 이런말을 꺼내는지도 모른다. 내가 느꼈던 감정의 이질감이 타당하다는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도 심장이 말캉해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나는 아직 늙고 싶지 않은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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