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국에는 '운수 좋은 날'이 있다지.
- You are lucky. Your room has been upgraded for free.
- Oh, really? That makes me feel great. I really like the room, too.
버기카를 타고 숙소에 들어올 때만 해도 아내와 나는 배정된 숙소의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메인 풀을 가기에도, 해변으로 가기에도 어정쩡하거나 가깝다고는 할 수 없는 위치의 숙소였기 때문이다. 첫 숙소를 떠나 두 번째 숙소는 미케비치에 닿아 있는 리조트였다. 여섯가족이 머물기에는 빌라 타입의 숙소가 좋았기에 조금은 무리를 해서 넓은 숙소를 잡았다. 방이 두 개가 있는 2층의 빌라를 예약했는데, 예약 당시에 5인가족으로 예약했다, 출발 전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숙소에 임시 베드를 하나 넣어주기로 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얼리 체크인을 할 수 있는지 확인했지만, 아직 숙소가 정리되지 않았기에, 짐을 맡기고는 근처의 식당에서 한 끼를 해결했다. 호이안에서는 생각보다 한국인을 많이 만나지 못했다. 올드타운에서 오다가다 마주치는 정도였고, 숙소 근처에는 한국인이라고는 우리 가족 밖에 없었는데, 다낭에 들어서니 심심찮게 한국어와 한국인을 마주치게 되었다. 경기도 다낭시라는 말이 조금씩 실감이 나기 사작했다. 유달리 식당 내에서 한국어가 많이도 들려 의아했는데, 나오면서 입구 구석에 한국 블로그와 카페 할인이 적용된다는 안내문구와,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K-mart가 위치한 것을 보니 한국인이 많은 것도 우연이 아닌 듯했다.
35도를 넘는 한낮의 더위는 고작 왕복 30분을 걸었을 뿐인데도 가족들을 지키게 만들기는 충분했고, 짐을 맡기기 전에 좋은 위치의 숙소를 부탁했음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숙소의 위치에 버기카 안에서 아내와 우리는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 뭐야.. 여긴 너무 구석인데...
- 메인 풀도, 해변도 한 참 가야겠네..
- 아휴... 아쉽긴 하다..
버기카를 함께 타고 온 매니저가 숙소의 대문을 열고 우리를 안내했다. 마당 한가운데의 넓은 수영장을 보자마자 아이들은 뛰어들 태세였고, 이내 싱글벙글 해졌다. 숙소는 에어컨이 잘 작동되어 있어 시원했다. 더위 속에서 지쳐서일까 이 서늘한 기운이 너무도 반가웠다. 숙소는 1층에 거실과 주방, 2층에는 킹사이즈가 있는 방이 하나, 퀸 사이즈의 침대가 2개 있는 방이 하나씩 있었고, 3층에도 퀸 사이즈의 침대가 있는 방이 하나 더 있었다. 총 방이 세 개가 있는 숙소였다.
- You are lucky. Your room has been upgraded for free.
- Oh, really? That makes me feel great. I really like the room, too.
함께 온 매니저는 환한 미소와 함께 우리에게 이렇게 말을 했고, 투덜거리던 버기카의 불평을 들었을까 내심 걱정되면서도 사람 좋은 미소와 기쁨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곳곳을 친절히 설명해 준 매니저가 떠나고 우리는 무료로 업그레이드해주었다는 말에 벌써 리뷰에 별 다섯 개를 예약하고 있었다. 짐을 풀자마자 아이들은 수영장으로 퐁당 다이빙을 하고는 불러도 나올 줄을 모른다. 열대의 나무들이 골목과 마당 안에 높게도 자라고 있었다. 어디를 보아도 이국적인 풍경과 귀를 뚫을 듯한 매미 소리들. 그리고 동남아 특유의 그 꽃잎이 수영장에 떨어져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아이들은 한 껏 높아진 데시벨로 소리를 지르고 까르르 웃고, 물속을 휘젓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5시간의 비행도, 35도의 뜨거운 햇빛도 으레 겪어야 할 통과의례쯤으로 여겨진다. 이 느낌에 동남아를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태양이 적당이 기울어 수영장에도 그늘이 졌다. 선배드에 타월을 깔고는 책을 한 권 들었다. 이번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다짐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꼭 책 한 권을 다 읽어보자고. 이번에 여행에 함께 하는 책은 [선택받는 글의 비밀 - 박요철 작가]이다. 이 책은 류귀복 작가의 추천 책이다. 천재작가의 등장부터 함께 해온 독자로 응원과 함께 질투도 했던 작가님이다. 돌풍처럼 나타나 아직도 그 바람이 약해지지 않는 지치지 않는 작가님이다. 배울 점이 많다. 여행에서 글쓰기 책을 읽게 될 줄 몰랐는데, 어쩌면 적절한 선택처럼 느껴진다. 낯선 곳에서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글에 대한 책을 읽는다는 건, 조금 더 저항 없이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나를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조그마한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눈앞에서는 아이들이 수영을 하고, 적당히 그리워진 그림자로 더위도 적당한 그런 길고 긴 여름의 동남아. 어린 시절 이런 꿈을 꾸었었던 같은 느낌이다. 어느 해변에서 책에 몰두하는 그런 장면, 적당히 석양이 지고, 해변에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그 순간만은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그런 풍경들. 버킷리스트에서 하나쯤은 지워도 될 것 같다.
우리는 숙소가 마음에 들어 1박을 추가하기로 했다. 무료 업그레이드 한 비용보다 더 큰 금액을 결제해야 하지만, 이 뒤에 예약해 준 숙소를 하룻밤을 그냥 날려버려야 했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하루를 더 머물러야겠다고 결정했다.
리조트의 꽃은 조식이다.
부지런히 일어나 첫 타임에 아무도 앉지 않았던 테이블에 앉아 잘 차려진 아침을 푸짐하게 먹는 걸 좋아한다 우리 가족은. 첫 밤을 잘 보내고, 한 껏 배부르게 조식을 먹고는 하루 종일 수영장을 돌아다니며 리조트를 즐겼다. 20여 미터는 족히 자란 것 같은 나무들로 그늘질 수영장은 더없이 좋았지만, 가방만 자리 잡고 있는 선베드를 보자니 좀 민망해졌다. 아무리 봐도 한국인이 가방만 던져두고 아침을 먹으러 갔거나, 수영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이제는 이런 행동이 많이 줄었다 들었는데 여전할 걸 보니 아직 멀었다는 생각도 든다. 내일은 나도 좀 더 일찍 나와 자리를 잡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그런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필요할 때만 사용하고 다른 이들도 즐길 수 있게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몇 군데의 수영장을 돌아다니고, 지치면 숙소로 들어와 시원하게 낮잠을 즐기고, 저녁은 직원이 추천해 준 시푸드 레스토랑의 시그니쳐 메뉴를 주문해 먹었다. 동남아에서 누릴 수 있는 호사는 다 누리는 듯하다.
내가 이 해변의 왕이 된 것 같았다.
둘 째날은 조식은 좀 더 우아하게 먹어보기로 했다. 조금 더 천천히 대화를 나누고, 여러 음식을 천천히 먹어보자고 제안했다. 그래봐야 아이들은 우당탕탕 먹고 마시기 바빴다. 그래도 음식 가리지 않고 잘 먹는 걸 보면 부모는 그저 흐뭇하기만 하다. 6살 막내도 김치며, 고수며, 초밥이며 못 먹는 음식이 없다. 아이 셋의 위력은 이런 것인지 모른다. 그래도 어른들은 조금은 더 여유롭게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이제는 제가 제 먹을 걸 챙겨 오기도 하고, 혼자서도 잘 먹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집중하며, 커피도 나누고 디저트도 나누며 여행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다. 바쁜 여행도 좋지만, 나는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여행을 좋아한다. 천천히 밥을 먹고, 풍경을 즐기고 낯선 곳의 분위기를 즐기는 이런 여행이 좋다.
참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불현듯 낯설면서 익숙한 기운이 든다. 그런데 결코 유쾌하지 않은 듯 한 기억이다. 머리가 멍해지면서 자꾸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배가 살살 아픈 것이 배탈인지, 급체인지 싶었다. 갑자기 정신이 멍해지고 머리가 빙빙 돌아 차가운 타일 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웠다. 서늘함에 조금은 정신이 드는 것 같아, 배탈약을 한 알 먹고는 어제 못 가본 수영장엘 들렀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풀 옆에 선배드에 누웠다.
뜨거운 태양이 빙빙 돈다. 아니 내가 돌고 있는 건가?
더위에 머릿속이 급격히 익어가는 것 같고 갑자기 구역질이 나온다.
가족들에게 말도 못 하고, 룸키만 챙겨 서둘러 집에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1층 화장실에서 변기를 잡고 구토를 시작했다. 웩!~ 웩~ 아무도 없는 숙소가 울린다. 속은 뒤집어지는데 신물만 넘어온다. 그래도 한바탕 속을 뒤집으니 조금은 살 것 같다. 여전히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 기분은 어쩔 줄 모르겠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이 기분 알겠다.
그 녀석이 다시 왔다. 10년 만에...
아....그럼 나가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