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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Mar 06. 2023

분실물

찾아가지 않아도 좋을법한. 

딱히 별 것 하지 않아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과 있으면 재미있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편안하기도 하다. 그 사람이 떠오르는 순간은 나에게 부정적인 순간이 더 많다. 


할 일이 없거나,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거나, 

기분이 너무 우울하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거나

무언가 하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잘 모를 때


나에게 부정적 기운이 최고조를 이룰 때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한다. 정말 만나기 힘든 상황이 아니라면 그 사람은 나의 온갖 투정을 다 받아주었다. 그렇다고 열심히 위로를 해준다거나, 듣기 좋은 말을 해준다거나, 고민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정신없이 웃겨준다거나 그렇지 않았다. 


때로는 커피를 마시며, 때로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저 듣다가 한마디 하다가. 

쓸데없는 잡다한 신변 잡기로 화재가 바뀌다가, 또 생각나면 다시 한번 물어봐 주다가 식으로 

중구난방의 대화를 나눈 뿐이었다. 


또 나는 그런 대화 분위기에 휩쓸려 진지하게 이야기도 했다가, 그의 화재 전환에 넘어가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가, 또 생각나면 다시 저 지하실 밑바닥의 이야기도 꺼냈다가 그랬다. 정신없는 대화 스타일이다 보니 이게 투정을 부리는 건지, 내가 위로를 받고 있는 건지 생각할 정신도 없다. 그저 몇 시간을 떠들고, 눈을 마주치고, 웃다가 울다가 하는 거다. 


그리고 막상 헤어짐 때 보면 내 어깨는 몇 시간 전보다 살짝 가벼워졌다. 목 뒤를 누르는 뻐근함이 조금은 말랑해진 듯하고, 가슴속의 답답~함도 조금은 숨구멍이 뚫린 것 같다. 그렇다고 그 사람의 표정을 보면 내 짐들을 나누어 가진 것 같지도 않다. 나 대신 고민을 해주거나, 해결 방법을 찾으려 하는 시도는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그저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다는 표정에 한 껏 취해 붉으래 달아오를 얼굴로 비틀비틀 잘도 걸어가고 있다.


 '사람이 힘들다는데 고민하는 척이라도 좀 해주지'라고 조금 씁쓸한 듯 느껴도 막상 집에서 자려고 누우면 그날은 잠도 잘 온다. 


무엇이 우리를 위로했던가?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만남이 좋았고, 만나서 나눈 이야기가 좋았고, 눈빛이 온기가 좋았을 뿐이다. 서로의 상처에 진심으로 공감하면서도 섣부르게 위로하지 않았고, 끼어들지 않았다. 선을 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살포시 내려 두었다. 나의 짐과 그 사람의 짐을.. 


우리는 함께 만난 그 시간 동안 서로의 어깨 위의, 목 뒤를 누르는 뻐근한 고민들을 내려놓고 있었다. 상대방에게 해결해 달라, 들어달라 넘겨주지 않고, 함께 만난 그 자리 구석쯤에 살포시 내려놓았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헤어짐의 발걸음이 가벼웠고, 누구도 상대방의 짐을 더 떠안지 않았기에 언제든 다시 만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서로에게 빚을 지우지고 독촉하지도 않는 사이인 것이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의 관심으로 상대방을 조금 더 편안하게 이끌어주었다는 것을 그때의 우리들은 알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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