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때문에
어리석은 실수를 했다. 아직 5살밖에 되지 않은 막내의 치과 치료비로 170만 원 가까이 지불하고 왔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곧 빠질 유치에 그렇게 큰 금액을 쓰는 것이 맞는지. 그 치료법이 아이에게 무리는 없는지 확인했어야 했다. 조금만 관리하고 영구치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될 텐데. 어린 나이에 치과 치료를 받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기타 등등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산재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맡았다.
아이의 상한 이빨을 보면 저거 깨끗하게 해 줘야지, 내가 못 했던 것들 해주고 싶다는 애정에서 탄생한 그릇된 판단에 아이에게 어쩌면 치과 트라우마를 남긴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의식 저하 시술로 반수면 상태의 아이는 1시간이 넘게 치료를 받았고, 아이의 이빨들은 깨끗해졌지만, 의식이 없어 헤롱거리는 모습과 하루에 모든 치료를 하느라 힘들었을 아이를 보고 있으니, 내 욕심이 아이에게 괜한 상처를 준 것이 아닌지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정확한 치료 내용을 몰랐던 아내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고, 우리는 다투었다. 아이에게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냐고.
정신없어 헤롱거리는 아이를 다독이는 모습에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퍼뜩 정신이 났고, 내 욕심에 돈은 돈대로 아이에게 고통은 고통대로 주고 말았구나 싶었다. 왜 그랬을까? 왜 나는 합리적이고,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한 것일까? 스스로 보이스피싱이나,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내가 그들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굳이 하지 않았어도 될 치료에 돈을 낭비하고, 아이에게는 치과의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스스로 어리석음을 반성할 뿐이다. 과잉진료라고 탓할 수 있지만 결국 상담 내용을 듣고 내가 결정한 일이다. 어쩌겠는가. 내가 좀 더 확인하고 결정했어야 했다. 돈은 다시 벌면 된고 지출은 조금 더 아끼면 된다지만 아이에게 혹혀나 문제가 생겼을까. 혹은 치과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진 않을까? 많이 아팠을 그 치료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치고 팔짝 뛰겠다.
우리 부부는 며칠을 서로 말도 않고 지낸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지만 속이 상하다. 쉽게 용서가 안된다. 와이프는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나도 그렇다.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오늘 아침에도 유치원을 가느라 환하게 웃는 아이의 예쁜 얼굴을 쉽게 바라보지 못했다. 예쁜 이빨에 환한 미소가 예쁘지만 그 미소를 얻기 위해 아이가 치렀어야 할 고통은 필요하지 않았던 일이다. 아이의 예쁜 미소를 볼 때마다 가슴 한 곳이 무거워지면서 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