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에서의 소회
약속 시간이 남거나, 생각이 하고 싶을 때는 버스 정류장을 찾곤했다.
너무 덥거나, 추운 날이 아니라면 커피숍보다 먼저 떠오르는 곳이 버스 정류장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척 앉아 주위 사람들을 관찰하며 여러가지 망상을 하곤 했다.
관찰대상들은 어디론가 떠날 목적이기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고,
대상이 사라지기 전까지 부지런히 생각을 해야 했다.
그사람의 옷차림, 가방, 옷 브랜드를 보며 어떤 사람일까 상상을 했고 간혹 통화를 하고 있는 사람이면
은근슬쩍 귀를 열어 대화를 엿들어보기도 했다.
그들의 대화에는 내가 상상한 모습이 담겨져 있기도 했고,
전혀 다른 상황에 실소를 머금기도 했다. 혹 누군가도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면 '참 이상한 사람이다' 싶었을 수도 있다.
버스 정류장의 가장 큰 장점은 관찰 대상이 끊임없이 바뀐다는 것이다.
나를 제외하고는 30분 이상 같은 정류장에 머무는 사람은 없었다. 관찰하던 대상이 곧 떠나면 또 다른 대상이
등장했다. 어느날은 오래도록 곁에 머무를 수도 있었고, 다른 날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어
눈과 귀 머리가 동시에 바빠지는 날도 있었다.
딱히 무언가를 알아내야 한다는 목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다른 단순한 물음에서 어디로 갈까? 누구를 만날까? 퇴근일까? 약속일까?처럼
점점 질문이 세분화되며 대상을 말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었다. 관찰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가진 문제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거나, 예상치 못한 난관에 다다를때 잠시 기분 전환의 이유로 버스정류장을 찾는 것이다.
내가 그곳에 있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으며, 파도처럼 들고 나는 사람들 덕분에 조금 덜 지루한 장소 였던 것이다.
관찰로 얻은 답으로 당시 내가 가진 문제들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제들은 해결되거나 개선되었다. 돌이켜 원인을 찾자면 문제를 대하는 시선의 흐름이
버스 정류장에 머무르기 전과 후가 달라진것이다. 다른이들을 보며, 다른 관점이 있음을 체험하며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지금까지는 다른 방향으로 대하게 되었고, 최선의 방법이 아니어도 마무리 짓는 법을 찾아갔다.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 저마다 자신에게 편한 공간이 존재한다면 내게는 버스정류장이었던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