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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Mar 23. 2023

그 유치원의 주력상품은 뭐예요?

아이가 하원했다. 평온했던 오후의 여유는 깨어졌다. 

아이의 등쌀에 못 이겨 아파트 놀이터로 향했다. 같이 하원하는 친구들이 모두 다시 놀이터에서 만난다.

유치원을 다녀온 것인지, 여기가 유치원인지 모르겠다. 

날씨가 제법 따뜻해져 아이들이 놀기에 좋다. 층간 소음에 살금살금 걸어야 할 아파트 생활에 진저리가 나기 시작하는데 놀이터에서 꺄~꺄~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난다. 

어서 집을 짓고 싶다. 넓은 마당이 있는. 문제는 집을 지을 때쯤엔 우리 막내는 더 이상 뛰어다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넓은 마당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놀이터는 만원이다. 아이의 유치원뿐 아니라 하원 시간이 엇비슷한 동네 아이들도 모두 화창한 날씨를 즐기는 모양이다. 엄마들과 할머님들 그리고 이모님들이 저마다 한 두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를 누리고 계신다. 

아이들의 사회생활이 이렇게 시작되는가 보다. 


놀이터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원복이 궁금하셨나 보다. 아이 셋을 데리고 나오신 빨간 티셔츠를 입으신 할머님이 관심을 보이신다. 관심을 보이시기보다, 유난스러운 손자가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버팅기며 미끄럼틀을 오르려 떼를 쓰는 것이 내심 미안하셨는지도 모른다. 그 아이로 인해 미끄럼틀 위에서 똘망똘망한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서 내려가고 싶은데 거꾸로 오르려는 떼쟁이 아이를 어찌할 줄 몰라하는 모습마저 귀엽다. 


- 너 그렇게 말 안 들으면 경찰 아저씨한테 전화할 거야. Police 한테 call 할 거야 저기 police officer 오시네 어서 내려와야지 - 


영어를 섞어 사용하시는 게 아이가 영어 유치원을 다녀서인지, 아니면 할머님이 외국에서 살다 오신 모양인지 모르겠다. 떼를 쓰는 아이는 그렇게 몇 분을 버팅기다가 내려왔고, 할머님에 이마엔 땀이 송글 맺히셨다. 미안하셨던 모양이다. 원복을 입은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이신다. 


- 어디 유치원이에요? 아이들이 꽤 많이 다니네요 - 

- 네 이 아파트에서는 OO 유치원을 많이 보네요 - 

- 아 그래요? 그 유치원의 주력 상품은 뭐예요? - 

- 네? - 


주력상품이라는 말이 아이의 교육에 어울리는 말일까? 잠깐 혼란스러워 머리를 굴리고 있었는데 


- 아 어떤 특징이 있는지 궁금해서요 - 


악의는 없겠지.. 그냥 단어 선택이 그냥 튀어나오신 거겠지 넘기려 했다. 


- 아 그곳은 몬테소리 교육을 바탕으로 가베와 영어 수업이 잘 되어 있어요. 유치원에 수영장도 있고, 숲도 있어서 아이들이 뛰어놀기도 좋구요 - 

- 아 그래요? 몬테소리는 미국에서 중하위 레벨의 수업인데... 그래요... - 


뭥 @.@ 


할머니의 물음에 친절히 답해주던 아이 친구 엄마의 얼굴색이 변한다. 나름 아이 교육에 열심힌 엄마 입장에서 미국의 중하위 레벨의 교육이라니 속이 상한 모양이다. 


- 그래도 여기 유치원은 아이들 인성 교육도 잘 되어 있고, 넓은 숲도 있어서 엄마들의 만족도는 꽤 높은 편이에요 - 


워킹맘인 와이프가 어색할 수 있는 상황을 재빠르게 마무리한다. 어색해진 공기를 느껴서일까 할머님은 곧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를 벗어나셨고, 와이프는 속상해하는 친구 엄마를 데리고 치맥을 하자 꼬셨다. 


- 아니 아이들 유치원을 주력상품이 뭐냐 묻다니 무슨 말이야 그게? -

- 저 아이 때문에 애들이 기다려주고, 그러면서 짜증 내지도 않고 하는 게 더 중요하지. 어느 유치원을 다니는지 모르겠는데 저렇게 이야기하는 게 제정신인 거야? - 

- 모르지 저 할머니 손자들은 엄청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으시나 보지 그런 분이 여기는 왜 왔대 - 

- 저 완전 맘 상했잖아요 중하위레벨이래 우리 유치원이. 참나 그래도 언니는 사회생활을 잘해서인지 대처를 엄청 잘하세요 전 그 할머니 쳐다보기도 싫었는데. - 

- 나도 엄청 짜증 났어. 그냥 잊어 치킨이나 먹자 - 


아이들의 교육에 특별한 철학이나 자부심이 있지는 않다. 그저 아이들이 다른 친구들을 배려하고, 사이좋게 지내고, 낯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 할머니 말처럼 몬테소리 교육이 미국에서는 중하위 레벨의 교육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인사 잘하고, 오늘 배운 것들을 조잘조잘 떠드는 게 좋다. 아이들의 사회생활은 배움의 내용보다 배우는 과정에서 상호작용하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일까 그 할머니가 말하는 고차원적인 교육법이 부럽지는 않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양보하고, 배려하고, 서로 함께 개미를 쫓아다니면서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가 좋다. 친구들 만나면 멀리서도 누구야~ 반갑게 인사하고, 선생님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좋다. 

정신 승리라 불러도 좋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정신 승리하면서 아이들과 또 놀이터를 찾을 것이다. 


아 오늘은 하루 쉬어야겠다. 

하루종일 황사에 미세먼지가 좋지 않다는 알람때문이다. 


그 할머니가 싫은 건 아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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