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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Sep 12. 2023

영화 "청춘"과 "상실의 시대"

내 맘대로 읽는 리뷰

청춘 :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


이 말에 영화를 택했다. 

뜬금없이 시간이 남는 오후에 넷플릭스를 탐닉하다 이 영화를 골랐다. 단지 제목이 좋아서 


지금의 화려하고 깔끔한 영상미에 비하면 다소 거칠기도 하고, 투박해 보이기도 할 뿐 아니라. 전개되는 과정과 감정선이 낯설기까지 했다. 그간 한국 영상컨텐츠가 많이 발전했음은 분명했다. 기분상으론 90년대쯤 영화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2000년 밀레니엄 시기에 개봉한 영화였다. 


10대 후반과 20대 중반까지의 성장기를 그린 영화다. 감정은 폭풍처럼 역동적이고, 주인공과 주변인들의 관계는 직설적이면서 원초적인 모습에 가까웠다. 육체적인 관계에 집중하며, 스스로의 감정을 닫아버리는 주인공과, 스스로의 감정에 매몰되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주변인들의 모습에 나의 이십 대가 떠올랐다. 친구를 잃고 그 행적을 쫓고, 감정을 열고 남옥에게 전화를 거는 마지막 장면은 딱 소설 상실의 시대 마지막 장면과도 같다. 그리고 그 장면이 키가 되어 영화의 모든 내용들의 조각이 맞춰졌다. 


주인공 자효는 와타나베처럼 학창 시절 첫 경험을 가진 동급생을 잃었다. 소설 속에서는 동급생의 여자친구인 나오코가 등장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동성 친구인 수인으로 등장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수인은 어린 시절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후 감정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소설 상실의 시대에서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사랑하는 관계였을까? 20년 전에 읽었던 그때는 연인이라 생각했지만 독일로 향하는 와타나베의 나이가 된 지금 돌아보면 과연 그 둘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였을까? 둘은 감정을 공유하지 못했다. 나오코는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말하는데 어려웠다. 그리고 그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와타나베와의 일들이나 과거, 미래의 일들이 아니었다. 와타나베 역시 나오코의 쾌유를 바랬고 응원했지만 그녀를 정말 사랑했었던 걸까? 과거 절친의 여자친구를 우연히 만나고 돌보아 주고, 응원했지만 와타나베에게 그녀는 어떤 의미였을지 점점 확실히 서지 않는다. 둘은 지금은 곁에 없는 카즈키를 연결고리로 함께 있게 되었지만 그 연결고리는 약했고, 서로를 끝까지 이어주지 못했다.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서로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한 셈인 걸까? 


영화 청춘은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관계가 자효와 수인과의 관계로 묘사되는 것 같았다. 서로에게 깊은 애정과 관심이 있지만 결국 각자의 사랑을 찾아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관계지만 그 위안은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 못했다. 첫 경험의 상대의 자살을 목격한 자효와 친구의 죽음으로 예민해진 감정과 이룰 수 없는 선생님과의 사랑으로 힘들어하는 수인을 서로는 지켜봐 주지만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마치 와타나베와 나오코가 서로의 상처가 어디인지 알고 지켜봐 주지만 서로에게 그 상처를 보듬어 줄 힘이 없었던 것 같다. 서로에게 근본적인 아픔과 문제는 서로의 이야기가 아니었지는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청춘은 아픈 시기다. 스스로 관계를 맺고 이어가며, 상처를 주고받는다. 때로는 상처가 될 것임을 알면서도 탐닉하게 되고, 놓아야 함을 알면서도 놓지 못한다. 이성과 감성이 핑퐁게임을 하면서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시기 같다. 그리고 가장 많이 성장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인간의 성장은 우상향의 직선이 아닌 어느 하루 갑자기 부쩍 커버리는 U 모양의 성장 곡선을 보이고 그 성장하는 시기가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기를 쉽게 잊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고, 아무리 힘들었고 아픈 기억도 청춘에 경험한 일들은 추억이 된다. 대부분의 실패와 실수를 경험하는 시기이기도 하며, 대부분의 추억과 기록들이 맺혀지는 시기이기에 모두가 청춘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상실의 시대는 내 청춘의 가장 아픈 소설이었다. 와타나베의 쿨한 듯 자조적인 모습을 따라 하고 싶었고, 세상에서 반 발쯤 떨어져 지켜보는 관조적인 모습으로 사람을 대해 보기도 했었다. 청춘이 성장해 나가는 가장 아픈 모습을 가장 예쁘게 그려낸 소설처럼 느껴졌고, 각자의 캐릭터를 사랑했다. 내 청춘 속의 누군가들에게도 나의 청춘이 그런 기억들이길 조심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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