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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Apr 07. 2023

안맞을 수 없다면 먼저 맞아라

초등학교 6년 동안 반장 5회 부반장 1회. 

중학교 3년 내내 반장. 

고등학교 3년 동안 반장 

학창 시절 연애경험 없음

수시 떨어지고 정시마저 떨어졌는데 기적적으로 원하는 대학 문 닫고 입학함


어떻게 보면 재수 없어 보이지만 난 그랬다. 적어도 대학생이 되기까지 실패나 좌절이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않았다. 랜덤으로 배정되던 중학교마저 내가 가고 싶어 하던 중학교를 입학했고, 고등학교 시절 별 방황이나 무리 없이 학업에 매진했다. 목표도 분명했다.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동기가 어찌 되었던 시트콤에서 멋지게 보이던 그 대학의 그 과를 목표로 정했고, 중간에 쉽게 흔들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평소 실력보다 실전 수능에서 더 높은 점수를 얻었고, 나는 원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내 전성시대는 딱 거기까지


대학생활은 무난했고 졸업반이 되었다. 원하는 대학에 원하는 과를 왔으니 원하는 직장을 얻어야 했다. 지금까지 늘 그랬듯이 내가 원하는 직장은 소위 'OO고시'라고 불린다. 경쟁률도 치열했다. 서류 전형까지 포함하자면 근 2000대 1 정도의 경쟁률을 뚫어야 했고, 나는 그 시험의 최종까지 올랐다. 2명 모집에 최후의 6인 


두둥! 


떨어졌다. 3등으로 떨어진 것인지. 6등으로 떨어진 것인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나는 선택받지 못했다는 것. 인생에 있어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와 실패를 처음 경험한 순간이다. 반년이 어찌 지났는지도 모르게 흘렀고, 우습게도 계열사에서 연락이 왔다. 


'자네 면접을 보지 않겠나' 하고 그곳엔 최후의 최후까지 남겨진 4인들이 다 있었고, 나는 패배자의 자리에서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나의 실패와 좌절은 극복되지 않았다.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도 못했다. 원했던 자리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딱 그 위치에서 시작한 직장생활 이어서일까? 질투했고, 자격지심이 넘쳤다. 나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데. 내가 왜 그때 더 적극적이지 못했을까? 일은 잘했다. 나름 빠릿빠릿 배웠고, 큰 실수도 없었으며, 선후배 간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단지 내 스스로 그 일을 극복하지 못했을 뿐이다. 


극복하지 못한 상처는 자꾸만 나쁜 선택을 하게 만든다. 


그 뒤로 직장을 옮기곤 했지만 결국 점점 더 나쁜 선택을 했다. 방송국에서 소셜커머스로 또 더 작은 콘텐츠 회사로 나의 몸짓과 가치를 점차 낮추어 나는 바닥으로 향하고 있었다. 선택받지 못했다는 극복하지 못한 감정이 조급하게 만들고, 부정하게 만들었다. 나는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을 몰랐다.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방법을 몰랐다. 그냥 그 실패했다는 사실이 싫게만 느껴질 뿐. 왜 실패를 했고, 다음에 그런 기회가 온다면 어떻게 잡아야 할지 등의 지극히 초보적인  전략조차도 생각하지 못했다. 단순 부정하고 후회만 해왔다. 근 10여 년 동안이나 


만약 내가 좀 더 어린 나이에 실패를 경험했다면 어땠을까? 

결과론적인 이야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더 나아졌을 수도 있고, 더 안 좋은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그건 아무도 모르긴 한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들이 적당한 실패와 좌절을 겪기를 바란다. 

얼마 전 큰아이가 초등학교 전교회장에 입후보했다가 떨어졌다. 나름 포스터도 정성스럽게 만들고, 공약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했고, 내 아이지만 예쁘게 생겼다.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떨어졌다.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왜? 왜 내 아이가 떨어졌지?라는 물음이 들었고, 나의 과거와 오버랩되었다. 차라리 잘 된 거다. 이 일을 잘 극복하면 된다. 이걸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했다. 


- 괜찮니?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아빠도 - 

- 괜찮아요. 경쟁후보가 생각보다 잘했어요. 나는 이제 2학기때 노릴 거예요 1학기때 했던 애들은 2학기에 출마 못하니까. 내가 더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어요 - 


어라... 언제 이렇게 컸지? 이 아이는... 


어른이 되었다. 받아들일 줄 알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안다. 속상해할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 거짓말을 한 것이라 해도 벌써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는 아이가 된 것이다. 이 아이는 또 도전할 것이고 또 다른 실패를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또 극복하게 될 것이고 성장할 것이다. 


그 방법을 몰랐던 아빠보다 더 큰 어른이 되어 누리고 싶은 삶을 만들 것이다. 


그런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아빠는 아이들이 실패할 때마다 옆에서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아마 아이들은 알지 못하겠지? 

이건 비밀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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