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hamalg Feb 22. 2016

01. 무엇을 위해 빌어먹을 회사에서 일하고 있나.

월요일,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슈퍼파월.

피곤해 죽을 것 같은데도 뻑뻑한 두 눈을 부릅뜨며 늦은 밤까지 잠을 참아본다. 그러나 어서 빨리 눈을 감는 편이 현명하다. 아무리 졸음을 참으며 내일을 미루려 애써도, 아침은 여지없이 찾아 올지어니. 그리고 내일의 우리는 조만간 모두의 기분을 망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팀장에게 생글, 방실거리며 굳모닝 인사를 친절히 건네야 할 운명이다.


매번 지치지도 않고 (또!) 찾아오는 아침.

눈을 뜨자마자 '언제나 다시 이 침대에 몸을 뉘울 수 있을까' 싶어 속이 상한다.

그래. 매일 같이 출근하는 나는 정말로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출근하기 싫다.


우리는 도대체 왜 (빌어먹을) 회사로 나가 (빌어먹을) 일들을 처리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아무렴, 뭐니뭐해도 맛 중의 으뜸은 돈맛이렸다. 따박 따박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월급으로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사고 싶은 것도 사는 그 맛. 바로 그 맛이 으뜸이렸다.

금전적 인센티브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무거운 몸으로 겸상조차 하기 싫은 인간들과 마주 앉아 나의 귀중한 시간과 노동력을 소모하는 일 따윈 없을 텐데...

이 빌어먹다 못해 버러지같은 인생.


실제로 스탈린 역시 1931년 초반에 이미 금전적 인센티브 없이 기꺼이 일하는 사회주의 남성과 여성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포기한 바 있다. 예나 지금이나 모두들 돈 때문에 빌어먹을 짓들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다.


스탈린의 지시하에 본인이 희망하는 업무와 환경을 상상해볼 기회조차 박탈당한채 강압적으로 하루하루를 견뎌야했던 '사회주의 남성과 여성'에게 금전적 보상마저 주지 않고 그저 꽁으로 부려먹으려 한 스탈린의 발상은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지. 기이할 정도다. 그의 빠른 포기는 당연한 것이었다.


입사의 기쁨은 찰나였고, 취직만 시켜주면 무슨일이든 하겠다던 취준생의 마음가짐은 아스라진지 오래다.

우리는 '사회주의 남성, 여성'과 달리 적어도 자발적으로 이 회사에서, 이 일을 하고 있다. 이 빌어먹을 일좀 나에게 맡겨주길, 제발 나 좀 뽑아주길 바랐고, 그렇게 안간힘을 써서 매일 아침 이리 괴로울 기회를 힘들게 성취했다.


실은 원한다면 언제든지 휴먼굴림체(유머코드 알아차려줘!)로 사직서를 휘갈기고 당당히 회사에서 걸어나올 수도 있다.

월급 말고는 그 어떠한 메리트도 없고, '아침이 오는 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는게 마냥 두렵고 지긋지긋하다. 그 (빌어먹을) 자리를 박차고 나와 조금은 덜 빌어먹을 자리로 옮겨 버리면 그만이라고 호기롭게 말해본다. 그러나 그 변화가 어디 쉬운일인가?


다시 한번 그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채 제발 나좀 뽑아달라며 절절 기어다니게 될까 두렵기도 하고, 퇴근 후 지친 몸과 마음을 다잡아 이직 준비를 위해 별도로 에너지를 쏟는 일은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다. 12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왔는데, 또 다시 의자에 앉으려면 온 우주의 의지를 필요로 한다. 몸뚱이를 어디에라도 눕히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입으로 끊임없이 음식을 넣는 것 뿐. 누워서 먹어대면 역류성 식도염이 금새 다시 도진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고 살고싶은지는 알지 못한채 눈뜨면 알아서 시작되는 하루를 남들에겐 그럴싸하게 사는 듯 보일 정도만 어찌 저찌 살아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돈을 제외하고는 나의 하루를 사랑하게 만들 요소가 무엇인지 아는 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은 동시에 또 생각보다는 알음 알음 꽤 있기도 하다.


반면,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나 지금 하는 일이 싫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는 사람은 정말 생각만큼 어마무시하게 많다.


경험상, 모든 것은 현재를 싫어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현재가 싫어 죽겠다 보면 고민이란 걸 하게 된다.

저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팀장이 성격파탄으로 성장하게 된 원인을 탐구하는 것에서부터, 본인 인생의 가장 중대한 결단을 내릴 수 있게끔 하는 고민까지 다양하다.


우선, 시간을 들여 다음에 답해보았다.

1. 내가 이 회사를 다니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 혹은 이 회사에 소속됨으로써 얻는 이득은 무엇인가?

2. 회사가 싫어 죽을 것 같은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 회사가 싫어진 이유들이 나에게 어떤 부정적 영향을 주는가?


공을 들여 며칠간 고민하다 보면 팀장의 보기 싫은 면상을 포함하여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들도 파악할 수 있다. 회사와 나의 가치관 차이, 지나친 자기애, 낮아진 자존감, 나라는 소모품이 언제든 대체 가능하다는 사실 등 다양한 문제가 발견된다.


다음으로, 내가 회사에서 맡은 모든 업무를 최대한 세세하게 (회식 장소 검색 같은 뒤치다꺼리부터 본연의 업무까지) 나열하고, 그 업무들이

1. 나에게,
2. 회사에,
3. 다른 사람들과 이 사회에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를 고민해보았다.


마지막으로,

1.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2.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은 무엇인가?
3. 위에 나열된 일들이 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가?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한 신중한 답은 나에게 가치 있는 이 회사에 남는 쪽일지, 떠나는 쪽일지의 결단을 내리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더 나아가, 떠날 것이라면 내가 떠나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에 대한 방향성에도.


그러나, 퇴근 후 겨우 온 우주의 도움을 받아 저만큼의 고민에 저녁 시간을 할애하는 불굴의 의지를 발휘했다손 치더라도, 고민의 결과를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분명히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사람들은 옳은 선택을 하려고 너무 많은 고민을 하다가 아무것도 선택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실은 옳은 선택이란 것도 없고, 그른 선택이란 것도 없다.
그러니 그냥 무엇이 되었건, 지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일단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선택을 옳은 선택으로 만들어나가길 바란다.
  - 동기 언니의 책꽂이에 꽂혀있을 어느 책 中


그리고 나는, '그냥 무엇이 되었건, 지금이 아니라는'것 만큼은 확실했기에, '일단 선택을'해버렸다. 휴먼굴림체로 작성한 사직서로 팀장의 싸대기를 날릴 계획이었으나, 회사 인사 프로그램으로 정 없이 처리되더군.


그리하여 고민의 결과, 충고를 받고자 보낸 이메일 한통으로 인해 운 좋게도 금세

1. 내가 잘하고, 2. 나에게 의미 있으며, 3. 나의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일을 하게 되었다.


연봉은 반토막인데, 눈뜨자마자 눈감을 순간을 염원하던 나는 이제 걱정없이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요즘의 나는, 아침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쁘게 반기는 인생을 산다.

(심지어 월요일에도!!!)


- 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