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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hamalg Aug 21. 2016

13. 헤픈 엔딩.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서.

어린 시절 컴퍼스로 둥근 원을 그려 시간별로 알록달록 색을 칠한 종이를 제출하고 나면, 이는 곧 방학의 시작이었다. 빈틈없이 꽉 채워진 나의 시간들을 감상하고 있자면 마음이 든든해지곤 했다. 실제 계획대로 보낸 시간은 가장 어두운 색으로, 가장 크게 칠해둔 꿈나라뿐이었지만.


인생에 방학이라는 한가로운 빈틈은 사라지고 말았으나, 여전히 알록달록 다양한 요소들로 인생을 채우고 싶어 용을 쓰며 살아간다. 독서, 강의, 공부, 가족, 친구, 회사, 꿈(일), 철학적 사유, 그리고 연인.

이 모든 것들이 빈틈없이 확실하게 시간을 꽉꽉 채워주지 않으면 불안감에 사로잡히고 마는 안타까운 현재의 내 모습은, 시간이 남아돌아도 알록달록한 생활계획표 한 장에 뿌듯해하던 과거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월'래부터 짜증 나는 월모닝

'화'가 나는 화모닝

'수'미(숨이) 막히는 수모닝

'목'빠지게 기다린 목모닝

황'금'같은 금모닝

고난의 아침을 무려 5일씩이나 맞이하고 나서야 주말의 광명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애태우며 기다렸건만, 겨우 맞이한 주말 시간의 동그라미는 외로움이라는 우울한 색채가 배경으로 깔려, 아무리 밝은 색을 칠해도 음울한 채도를 뿜어내고, 나는 그만 맥이 빠져버리 만다.


시간이 남아돌기만을 바랬던 어린 시절, 일요일의 시간은 그저 일요일이라는 이유만으 마냥 즐겁기만 했다. 나의 라면 과다 섭취 방지를 위해 탄생한 우리 가족의 <일요일 아침은 무조건 라면> 전통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어찌 달콤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루 종일 tv 바로 앞에 누워 뒹굴거리며 투니버스(환상게임, 아따맘마, 행복한 세상의 족제비, 카드캡터 체리, 웨딩피치)를 끝도 없이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오늘 하루, 꿀처럼 풍족했다 만족하며 끝나가는 일요일을 그저 붙잡고만 싶었다. (투니버스 ARS 시청자 퀴즈 정답자 중 당첨자 3인으로 선정되어 선물을 받은 경력이 있는 화려한 전적의 소유자다.)


나만 이렇게 외로운 건가요?

다들은 무엇으로 각자의 동그라미를 채워나가고 있나요?


나의 채도는 어떠한 사건이 발생하면 유독 더 어두워지는 경향이 있는데, 엄마는 그럴 때마다 우울함을 온몸으로 풍기는 덩 산만한 딸내미가 안타깝다. "너는 남자 친구가 있을 때와 없을 때가 왜 이렇게 다르니?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 연애라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항상 밀림의 왕을 도맡았던 엄마는 매번 고라니 역을 맡아 목덜미를 뜯어 먹히고 마는 딸내미가 속상할 수밖에. 엄마의 백전백승 연애경력에 찌질한 딸내미가 생채기를 내고 있다. ^.^


부정하고 싶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고 혼자 기나긴 주말의 시간을 감당하는 일은 나에겐 역부족. 나는 정말이지 남자가 끊임없이 있어야만 했다. 


반론 발언 1

항상 옆에 남자가 있어야 하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저 남자만 있으면 만사 행복해지는 단순한 인간은 또 아니다. 나는 정말이지 원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항시 빈틈없이 소유하고  있어야 하는 사람일 뿐이다. 즉, 나의 동그라미를 채우는 다음의 요소들 - 독서, 강의, 공부, 가족, 친구, 회사, 꿈(일), 철학적 사유, 그리고 연인- 중 그 어떤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 중 한 조각이라도 잃어버리면, 동그라미는 완벽한 원이 될 수 없고, 불완전한 원은 외로움과 우울이라는  절망의 늪에서 아무리 굴러 나오려 해도 빠져나오질 못한다. 동그라미를 채우는 조각들 중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조각이 연인에 국한되어왔기에, 타인의 눈에는 나라는 사람이 연인이라는 요소의 결핍에만 유독 나약해 보였던 것이다. (물론 나조차도 아리송했지만.)


모든 조각들의 결핍에 무방비한 나는 실은 하나의 요소에만 취약하다 과대평가되어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최악의 최악으로 치닫는 나라는 사람.)


반론 발언 2

주말이 이틀이나 되는 게 문제다. (오! 이 세상 모든 이들을 적으로 돌리는 발언이군.) 금요일 오후와 토요일 하루 정도까지는 혼자서 완벽히 행복한 마음으로 충만하게 지내곤 한다. 토요일 오전, 일찍 일어나 웹툰을 보고(진눈깨비 소년, 숲 속의 미마, 썸남), 책도 읽고, 일주일간 밀린 일기를 보충한다.


오전 10시, 남들은 마음을 수양하며 평온을 찾는 요가 수업의 시작과 동시에 풀려버려 부들거리는 다리로 기괴한 동작들을(차투랑가,업독, 다운독, 우카타사나, 비라바드라......하...쓰는데 열 받네) 흉내만 겨우 내는 나는, 5분에 한 번씩 마음의 신발을 찾아가며 화를 가라앉힌다.


오후에는 집 앞 카페로 노트북, 책, 공부 및 업무 거리, 생각노트 등을 바리바리 챙겨 들고나가 버터향이 담뿍 나는 크루아상과 진득하게 달콤한 바닐라라테를 마시며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누구보다 혼자서 알차게 하루의 시간을 꼬박 보내고 나면, 남은 반절의 주말 시간이 텅 비어버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일요일의 동그라미를 채울 거리들이 하나도 남지 않아버리는 것이다. 똑같은 일을 하루 더 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겠지만, 나 역시 7일 중 하루의 동그라미는 차분함을 가장한 마음의 수양일랑 집어던지고, 깔깔 웃고 떠들며 감정적으로 왕성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이다.  친구가 몇 없는 나는, 있는 친구 없는 친구 아무리 돌려 막아보아도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주말을 한 달에 두 번 이상 가지기 힘들다. 각자의 삶이 바쁘기도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아무리 친구라도 지켜야 할 예의와 선이 점점 더 명확히 그어진다. (흠 나만의 문제일지도.)


그러나 남자 친구는 다르다. 우선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보아야 하는 속박의 관계가 구축되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점이 가장 훌륭하다.)


나는 그저 커피 마시고, 밥 먹자며 불러내는 것이 눈치 보이거나 어렵지 않은 상대가 필요한 것일 뿐인 걸까? 그 외에도 서로 많은 감정과 추억을 물론 공유할 테지만, 기본적으로는 역시나 그런 것일지도 모른겠다.


결론.

동그라미에 연인이라는 조각이 최초로 생성된 이후, 연인이라는 조각이 떨어져 나갈 때마다 나는 줄기차게, 그리고 신속하게 이 빈 공간을 채워 넣어 왔다. 나와 맞지 않는 조각일지라도 임시방편으로나마 빈 공간을 매워 넣다 보니 엔딩은 당연하게 헤퍼져 버리고 말았다.


특정인이 나를 위해 평생 동안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이미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이와는 1년에 한두 번 겨우 보지만 10년을 넘게 인연을 유지하고, 어떤 이와는 1년 365일을 열정적으로 만나다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평생을 볼 수 없게 된다. 평생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1년 안에 압축적으로 모두 소진해버린 것이다.


그러니 헤픈 엔딩에 유난 떨 필요 없다며 나를 타이른다. 그저 이 사람과는 평생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빨리 소모해버린 것에 불과하다고.


'어차피 이별은 멀쩡히 살아 숨쉬는이 마음에 묻게 하는 그런 죽고 죽이는 일'인지라, 그 누가 다가와 나의 외로운 시간을 메꾸어주어도, 그와 나의 영원한 관계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그치고 만다. 


'사랑을 하는 건지, 이별을 하려고 만나는 건지', 영원한 사랑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나사 빠진 지지배의 일요일을 영원히 채워줄 어리석은 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영원한 사랑을 굳게 믿는다 할지언정 그런 생각을 하는 여자를 영원히 사랑해줄 이가 있을 리도 만무하다.


애초에 우리는 영원한 것이라고는 존재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탐스럽게 익은 딸기를 볼 때마다 딸기가 태몽인 그가 떠올라 목이 메어 한입도 넘길 수 없던 나의 목구멍은 이제 거리낌 없이 탐욕스레 딸기를 꿀떡 삼킨다. 헤어지고 가슴에 구멍이 뚫려 들리는 바람소리에 잠 못 이루던 과거는 소멸된 지 오래다.


외로움을 망각하기 위해 하고 싶지도 않은 일정들로 바쁘게 동그라미를 가득 채워봤자 그 하루의 끝에서 고독함은 더욱 짙어지고, 결국에는 외롭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사랑을 받고자 기대하는 건 욕심일지도 모른다. 엄마, 아빠, 동생 그리고 소수의 주변인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으니 나를 맹목적으로 사랑해줄 사람이 한 명 더 나타나는 일은,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보다 백배는 더 비현실적이다.


이제 그저 외로운 나의 시간과 더불어 나의 사랑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을 뿐이다.

상처받을지라도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나는 또 금방 신속히 다른 조각으로 빈자리를 채워 넣을 테니 무서울 건 없다.

사랑으로 일요일의 동그라미를 가득 채워 넣어야지.

자 또 쉴틈 없이 조각을 채워 넣어볼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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