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보단, 나. 손해는 보고 살지 말라.
사랑 소설을 좋아하던 때도 분명 있었다. 한 번도 겪지 못한 애틋함, 절절함, 애환, 슬픔, 비통, 환희, 절정 그리고 절망 같은 것들에 대한 동경이었을까. 그러나, 현실에서 견뎌내야 했던 나의 사랑은 질척거리거나, 지저분하거나, 심심하거나, 미쳐버릴 것 같았으므로, 가상세계의 단골 레퍼토리인 영원한 사랑이라느니 아름다운 이별 같은 귀신 시나락 까는 소리는 이젠 웃기지도 않다.
S: 언니, 「Me Before You」라는 책 엄청 재미있다던데, 오늘 살래?
나: 자기개발서야? 나 자기개발서는 싫은데, 다 거기서 거기잖아.
S: 무슨 소리야?
나: 아니 남 걱정하다 괜한 오지랖 떨면서 손해보지 말고 내 인생이나 잘 살라는, 뭐 그런 내용 아니야?
S: 아니야.... 엄청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라던데...
난 도대체 어디서부터 망가진 걸까?
대학교 신입생과 입사 3년 차가 사회를 바라보는 프레임의 차이는 소름 끼칠 만큼 충격적이었지만, 선뜻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은 묘하게 씁쓸했다. 가상 속 세계와 실제를 구분하지 못했던 시절엔 좌우지간 사랑의 주인공이던, 비련의 주인공이던 나는 내가 모가 되던 도가 되던 주인공이 아닐리는 없다 여겼다. 그래서 참으로 헌신할 수 있었으려나. 결국 나의 열정은 내가 주인공이란 확고한 믿음과 무지에 기초하고 있었는데, 그가 주인공인 이야기에서 내가 맡은 배역이 스쳐 지나간 여자 6번쯤이었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이 현실임을 깨달았을 때 느낀 그때의 치욕이란. 그에게 쏟은 애틋함과, 품었던 설렘과, 꿈꾸었던 미래와, 쌓아 올린 과거와, 그를 위해 흘린 눈물과, 변해버린 내 모습에 손해보고 말았다는 결말은 너무나 찌질하고 구차해서 가상 세계엔 이런 이야기는 없는 걸까.
손해를 봤다는 건 응당 받아 마땅한 것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실은 나 또한 영원히 지속될 그와의 미래를 담보로 철저한 계산 아래 마음을 허락했을 뿐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나의 알량하고 치졸했던 감정을 설명하기엔 너무 과분할지도 모른다. 동화 속 공주님이 되고팠던 철부지 20대의 허무맹랑한 백일몽. 배신당했다 울부짖어보지만 진상을 파고들면 진정한 피의자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를 이루기 위해 위선적으로 그를 상대한 나일 테지. 가증스러운 피해자 코스프레.
국어사전에 의하면 손해의 반대말은 이익이나 덤이라고 한다. 이익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탬이 되는 것인데 실은, 희생이야 말로 손해에 진정으로 반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기꺼이 하는 것과,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의 차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희생적 행위는 실로 존경받아 마땅하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주었다면, 기대하는 보답을 받지 못하였을 때 손해 보았다고 느낄 테니.
억지로 내어주게 되면 보상심리라는 치사하고도 얄궂은 마음이 빼꼼 고개를 든다. '너를 위해 이만큼이나 양보한 나에게 네가 이럴 순 없잖아.'라는 심보는 어느새 사랑의 마음을 통째로 갉아먹기 마련이고 기대한 만큼의 대가를 돌려받지 않는 한, 절대로 만족할 수 없다. 충족 없이 행복은 오지 않고 그 사람의 존재는 나를 되려 외롭게 할 뿐이다.
희생은 누군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성질의 행위가 아니다. 순수하게 자발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렇기에 숭고하다. 나의 희생이 그의 행복으로 이어질 것이란 신뢰가 구축되어 있다면, 그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면, 기꺼이 희생하지 못할 이유 없겠고 내가 스쳐가는 여자 6에 불과할지라도 주인공이 되지 못할 리 없다.
절대 만나서는 안될 인간을 꼽으라면 타인을 기만하고 희생을 유도하여 그 숭고한 행위를 악용하는 부류를 꼽겠다. 사람의 순수한 감정을 이용해 본인이 원하는 것을 손쉽게 이루려는 사기꾼들은 결국엔 고독이라는 감옥에 갇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이 죄책감 없이 밟고 지나간 나의 감정은 상당히 오랜 시간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순전히 자발적으로 희생하였고, 발톱의 떼만큼이라도 더 나은 상황을 위해 기여했다는 뿌듯함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알고 보니 나의 희생이 타인의 철저한 계산과 계획하에 유도되었던 것이라면, 나의 희생은 내 의도와 무관하게 타인의 목적 달성에 상당한 기여를 했을터. 이때는 알량한 보상심리를 넘어 걷잡을 수 없는 배신감에 분노가 타오른다.
100만의 촛불을 뜨겁게 밝힌 우리의 절규 어린 분노가 진정한 혁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우려와 걱정 그리고 진심 어린 희생을 교묘히 이용하여 호시탐탐 본인들의 세를 넓힐 기회로 삼으려는 치들에게 교란당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행사하여 정의로울 것이라 맹목적으로 믿어온 그자를 손수 권력의 자리에 앉힌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다. 국민들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그자를 먹이고 재워준 이유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그자가 본인 사생활의 많은 부분을 기꺼이 포기할 것이라 단언했기 때문이었다. 여자의 사생활을 운운하며 대한민국의 책임감 있는 여성 전체를 폄하한 그자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국민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맹목은 우리들로 하여금 합리적인 판단을 이토록 무섭게 마비시킨다.
그러나 불행히도 맹목은 100만의 촛불 사이사이에도 우리 편인 척 숨죽인 채 도사리고 있다. 국민의 더 나은 삶이 아닌, 특정 세력의 권력 확장을 위해 국민의 목소리에 묻어가려는 이들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항상 유의해야만이 우리의 혁명이 또 다른 몰상식한 세력으로의 권력 이양으로 흐지부지 막 내리는 일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직책은 국민입니다. 이 세상 모든 나라의 국민들이 그 나라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지, 어떤 이상을 좇아야 하는지, 어떤 가치들이 우리를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결정자가 되어야 합니다.
-버락 오바마
사람 마음을 분탕질하는 치들에게 농락당하지 않도록 경계를 늦추지 말자.
희생은 하되, 손해 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여자로서도,
남자로서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