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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hamalg Dec 06. 2016

18. 헤픈 여자의 고해성사.

솔직함을 가장한 자기변호.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제일 열심히 살고, 가장 정의롭기 위해 노력하며, 그 와중에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해. 남에게는 관대하고, 솔직하려 애써. 가식적이지 않으려 그렇게 진실로 노력하는 사람 처음 봤어."


이토록 비현실적으로 위대하게 묘사된 인간이 이 나라, 이 땅에 정녕 존재하기는 할까 싶은데, 실은 내 이야기라는 믿기 힘든 사실. 물론 몇 년째 나에게 콩깍지가 제대로 씌어있는 그녀의 평이 엄격하게 객관적이라 보기는 힘들지만-좀 씌었으면 하는 인간에겐 안 씌고 애먼 그녀의 눈에서 몇 년째 요지부동이네.-전반적으로 나는 신의를 져버릴 인간은 아니라 평가된다.


아! 우리는 정말이지 얼마나 평화로운 세상에 살고 있는가. 착한 척 위선 떨며 타인과, 더 나아가 자신마저 기만하기 딱 좋은 시절이니 과연 호시절이다. 세상을 속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아마 나 자신을 속이는 것이리라. 쉽사리 속아주지 않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에 억울한 감정마저 느낄 테니.


진실은 이러하다. 그럴싸하게 과대 포장된, 몸도 마음도 헤픈 여자.


법정스님, 테레사 수녀도 감탄하실 만큼 괄목할만한 도덕성이 빛나는 글을 찌글찌글 SNS에 포스팅하고 그 누구도 읽지 않는 장문의 글을 혼자서 몇 번씩이나 되읽어본다. 문자 그대로 느껴지는 나의 도덕성에 감격에 겨워 자위하는 꼴이란 우습기 그지없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나의 본질 사이의 간극에 문득 소름이 끼칠 만큼 회의감이 든다. 그 누구라도 알아챈다면 수치심에 밤을 지새우다 결국엔 그와 인연을 끊고, 두 번 다시 들키지 않도록 더욱 철저히 나 자신과 세상을 속이겠지. 세월과 함께 한 명, 두 명 절연한 관계의 수도 쌓여나가고 나의 세상엔 오직 나만이 남게 된다. 신의 있는 인간이라 인정받기 위해 평생을 자신마저 기만하며 살아온 나라는 위선자는 속일 세상을 상실함과 동시에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할 수밖에.


그런 내가 아무도 봐주는 이 없는 순간에도 과연 떠벌린 대로 고고하게 도덕성을 꿋꿋이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처럼 도시 전체가 시력을 잃어 그 누구도 나의 도덕성이나 비도덕성을 알아챌 수 없다면, 그때도 잘난척하며 이기심을 억누를 수 있을까? 도덕, 정의, 존중 이란 가치관으로 뒤범벅된 나의 글들만 놓고 보면, 현재까지 옳다고 주창해온 행동을 일말의 망설임 없이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도 행할 수밖에 없는 인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303명의 SNS 친구들을 기만하고 나면 포스팅한 글과 같은 인간이 되기 위해 더욱 열렬히 노력하곤 하는데 이러한 노력과 시도가 수반된다는 것 자체가 애당초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반증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나의 모순과, 가식, 허영심을 낱낱이 고백하는 글을 이곳에 남긴다. 아무도 관심 없고, 궁금해하지도 않는 나의 내면을 진솔하게 밝히는 까닭은 그저 나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함이다. (안물 안궁!) 나의 본질을 악의적으로든, 의도적으로든, 숨기거나 속여서 나를 믿도록 하는 것은 그들이 나에게 관심이 없거나, 알고 싶지 않아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나는 이렇게 그 누구도 딱히 물어본적 없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을 진실되게 기록함으로써 과분한 평가를 받을 때면 느끼곤 했던 찝찝함과 이유모를 죄책감에서부터 나를 해방시키고자 한다.


나는 더 나은 사회 같이 거창하고 뜬구름 잡는 꿈을 꿈꾸는 게 아니라, 그저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천하지 않으면 나 자신에게 떳떳해질 수 없을 것 같았을 뿐이다. 최소한 나만 보는 일기장에도 기록하지 못할 남사스러운 일은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살 작정이다. (물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부끄러워지는 일 또한 없어야 할 것이다.)


간혹이긴 하지만 칭송받곤 하는 나의 행동과 결심은 현재 나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대변한다기 보단, 추구하고 있는 목표에 더 가까운 듯하다. 그저 동경하고 있는 인간상을 묘사하는 글들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나 자신이 그런 인간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은 진심이다. 그 바람의 현실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언젠가는 누군가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 나의 속마음을 읽어낼지언정 내면과 겉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아 수치심을 느끼는 일 없이 한점 부끄럼 없는 인간으로 늙었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그녀에게 꽤나 깊은 애착을 느끼는 나로서는 그녀의 눈에 씐 콩깍지가 홀랑 벗겨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더 노력할 수밖에. 아직은 그녀의 생각과 실제의 내 모습 사이에 꽤나 큰 거리가 있지만, '제일 열심히 살고, 가장 정의롭기 위해 노력하며,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고, 솔직하려 애쓰면서, 가식적이지 않으려 그렇게 진실로 노력' 해야지.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아니 그 누구에게라도 떳떳한 인간이 되기 위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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