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 치 앞.
가장 존경하는 작가를 꼽으라시면 선뜻 대답할 수 없겠다. 그러나, 가장 사랑하는 작가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브래드쇼다. 마지막 시즌에서 몽환적인 매력을 뿜뿜 내뿜는 러시아 출신의 예술가는 구두와 뉴욕을 사랑하는 성칼럼니스트인 그녀에게 파리에서 함께 지내지 않겠냐는 세상 로맨틱한 제안을 한다.
친구들에게 "I am going. To Paris."라고 선언해버린 그 순간 그녀의 마음은 "나 간다. 시집." 이런 느낌이었을까?
파리에서 그와 함께 쌓아갈 시간을 위해 일까지 때려치운 그녀에게 절친은 소리친다.
"네가 쓰는 칼럼은 니 인생이야. 이렇게 그만둘 순 없어. 일도 없이 거기까지 가서 도대체 뭐할 건데? 크루아상이나 씹어댈래?"
평생을 찾아 헤매던 운명을 드디어 만나고 말았단 생각에 행복으로 부풀어있던 캐리가 악에 바쳐 소리친다. "칼럼은 내가 아니라 그냥 내가 하는 일일 뿐야. 나는 여기 남아 내 인생을 써 내려갈 수도 있고, 그와 함께 내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는 거야."
절친은 코웃음을 치며 회심의 반격을 날린다.
"그이의 인생이겠지."
너는 어떡할 것 같아?
그러게. 과연 내가 어떤 우매한 선택을 내릴는지 나는 당최 모르겠는데, 다들은 알 것 같단다.
최근에 사모펀드 운용 쪽에서 인터뷰를 한번 보지 않겠냐는 잡 오퍼(job offer)가 오래간만에 왔었다. 매끄럽게 거절하고자 꽤나 애를 썼다. 나는 오퍼 받은 곳이 조금 더 영향력 있는 회사였다면 갈등했을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되려 주변의 다들은 "어차피 안 갈 거잖아." "언니는 갈마음 없잖아." "넌 그런 쪽은 관심 없잖아." 라며 단박에 나의 결정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예측해버린다.
혼기가 서서히 차고 있는 여자를 만나는 남자는 필연적으로 여자 친구가 아는 모든 사람의 품평을 받게 된다. 타고난 특급 노안 덕에 내 나이 22살 이후 나를 만난 모든 남자들은 꽤나 진지하고, 깐깐하며 무척이나 편파적이고 주관적인 기준을 잣대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아왔다. 현재 무직인 지금의 남자는 압구정에 위치한 mba 학원에서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헤어져.", "다음에 볼 때는 혼자겠네."라는 최하위 등급을 부여받았다. 어차피 내년 9월에 미국행 비행기를 탈 그 사람과 내가 함께하는 미래는 있을 수 없을거라 그들이 금세 단정 지어버리는 이유는 "너 어차피 지금 하는 일 그만두고 따라갈 마음 전혀 없잖아."라는 말로 단순 요약된다.
정작 나는 어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든 파리든 다시금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기도 하다고. 그들의 확신은 프랑스에 살고 싶은 마음에 소르본 대학교 어학연수 코스 링크를 몇 년째 인터넷 즐겨찾기에 추가해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일지도.
아래는 최근에 받은 심리검사 결과이다.
1. 당신의 삶의 추진력은 자기충족적 신념(self-fulfilling belief)에 그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자신이 목표하는 바를 위해 노력하면 안 될 게 없다는 믿음이 강합니다. 강한 확신과 불굴의 의지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도하려는 욕구도 매우 높습니다.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틀어쥐고 있으려는 적극적인 삶의 자세로, 자기 앞에 놓인 험한 길도 꿋꿋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2. 당신은 뚜렷한 목적에 따라 행동하며, 이에 몰입하는 능력 또한 뛰어납니다. 주변 상황에 크게 휘둘리지 않으며 정해진 목표를 향하여 소신껏 나아갑니다. 목적과 필요에 따라 냉철하게 가치 판단을 하고 이에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집어내어 활용합니다.
3. 당신은 세상을 자신이 '따라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으로 여깁니다. 기본적으로 '나' 중심적인 사람입니다. 이미 정해져 있는 원칙이나 규율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 스스로 옳다고 판단하는 부분만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따라서 불합리해 보이는 틀은 완전히 바꾸려는 노력도 서슴지 않습니다.
어쩌면 주변인뿐 아니라 심리검사지까지 완벽히 속일 만큼 뛰어난 위선자일지도 모르지. 정말이라면 실로 굉장한 능력자다.
어떨 때에는 나의 선택과 결정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확고하여 앞으로의 길 또한 너무나 명확하단 확신에 사로잡힌다.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내가 앞으로도 걸어갈 길이 분명하다고. 한눈팔지 말자고. 흔들리지도 말자고. 용케도 길을 찾아냈단 사실에 자신을 기특해하며, 기쁘고 당당하게 걸어 다니는 내 모습이 사람들 눈에는 꽤나 자신만만하고 결연해 보일 수밖에 없었을 거다.
또 어떨 때에는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이 확실하긴 커녕 걸을 수 있는 길이긴 한 건지 의심스러워지고, 되려 내 청춘과 열정을 뽑아먹는 늪이 아닐까 싶은 불안감과 두려움이 몰려올 때 있다.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에 기여함으로써 나 자신을 영원히 사랑하고 행복해지고팠는데, 하다 보니 이렇게 쭉쭉 빨리기만 하는 일이 진정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미심쩍다.
평생 동안 환하게 내가 걸어나갈 미래를 비춰줄 것만 같던 의지와 확신이라는 가로등은 점점 그 빛을 잃어가고, 멀리서부터 조금씩 캄캄하게 물들이던 어둠이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발걸음이 위태롭다.
이 길의 끝이 정녕 행복이려나.
도움받은 그들은 조금이라도 행복해졌을까? 이도 저도 아닌 건 아닐까?
부러질바엔 휘어지지. 먼 길을 순간의 망설임 없이 내내 걸어가기엔 나는 무척이나 소심한 인간이다. 이럴때도 종종 있겠지. 정녕 늪이라면 빠져죽기전에 나오면 그만이고, 길이라면 또 다시 천천히 그러나 똑바로 걸어가야지.
인간인 저의 의지라는 것이
늦여름 잠자리의 날개만큼 얇고 나약하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릿터 3호, 소설가 김송 인터뷰-
눈앞이 캄캄하다.
그래서인지 부쩍 졸음을 견디지 못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