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걱정 없는 사랑.
간만의 버스였다. 한파주의보와 대설특보가 돌아가며 사람 괴롭히는 이런 시즌이 아니더라도 주차장에서 애먼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나의 붕붕이에 쌓인 먼지도 털어줄 겸, (얄밉게 다달이 49만 원씩 꼬박꼬박 나가는 할부금의 뽕도 뽑을 겸,) 혹여 종아리에 알이라도 잡힐까 두려워 평일 출퇴근 길에는 엄두도 못내는 10cm 킬힐도 신을 겸. 이런저런 이유들로 주말엔 주차가 힘든 동네를 피하기 마련인데, 홀몸이 아닌 선배의 콜은 불가항력인지라 이리 칼바람을 몸빵 하며 버스를 기다릴 수밖에. 버스가 도착하자 어디서들 그리 추위를 피하고 있었는지 우르르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줄곧 홀로 서있었는데도 제일 먼저 타지 못해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기사 아저씨께 우렁차게 인사하고 애매하게 듬성듬성 비어있는 자리들을 다급하게 둘러본다. 몸빵 한 건 난데, 숨어있다 쏜살같이 먼저 버스에 몸을 실은 치들에게 명당은 이미 모두 빼앗겼다. 그나마 어르신들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뒤쪽 구석자리에 엉덩이를 붙인다. 어르신이 타면 어쩔 줄 몰라 엉덩이를 들썩이면서도 부디 어르신들의 시야에 포착되지 않길 내심 바란다. 끝끝내 서가시게 되면 그제서야 일어나 자리를 양보드리는 나의 비겁함.
간만에 올라탄 버스는 묘하게 설렜다. 꽤나 먼 거리를 돌아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두서없이 흘러 다니는 별 의미 없는 상념들에 시간이 잘도 흐른다. 네비 언니의 좌회전, 우회전 목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지나가던 때엔 매일 지나쳐도 모든 길들이 매번 처음 가는 길 같았는데, 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서울 풍경 속엔 추억이 안 깔린 곳 없더라. 그 추억을 함께 공유한 사람들은 대부분 잃고 말았지만.
1. 사람을 한 명, 두 명 잃어가면서 '격정적인', '열렬한'과 같은 치열한 감정들 또한 영영 잃어버리고 만 걸까. 매번 나는 오로지 그를 보겠다는 의지로 눈을 떴고, 내일 그를 보기 위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겨우 눈을 붙이곤 했다. 나는 퍽이나 사람 질리게 하는 여자애였고, 그는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가 내 인생 그 모든 곳에서 티끌만치도 찾아볼 수 없게 되더라.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없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다는 믿음.
(그리고, 나는 가끔 가족을 잃는 악몽에 시달리곤 한다. 항상 통곡하다 깨곤 하는데, 현실이 아님을 인지했음에도 눈물을 멈추지 못한다. 현실이 아니란 사실에서 오는 안도감에 압도당하는 것이다. 현실이라면 견딜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결국에 나는 그렇게나 나약한 인간이다.)
가슴속에 움푹 흔적을 새기는 본인의 경험만이 진정한 깨우침을 남긴다. 눈을 감을 이유도, 뜰 이유도 잃은 나는 말 그대로 눈뜬장님으로 꽤나 오랜 시간을 지냈고, 견뎠고, 결국엔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 눈을 뜨고, 눈을 감는 광명의 시대가 도래했다. 네가 물처럼 내게 밀려왔기에 행복했고 물처럼 내게서 빠져나갔기에 불행했다. 너로 인해 알게 된 이정하 시인의 시가 너무나 짜릿해 온몸이 떨렸던 그때 나는 정말이지 겁 없이 용감했다. 지금은 저 시가 소름 끼치게 무섭다. 내가 나를 다 비워내고,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으로만 가득 차 버릴까 봐. 내가 아닌 그를 위해-정작 그는 원치도 않는-나의 인생을 기꺼이 내어주고 싶어 질까 봐.
그 사람만이 내 존재의 이유가 될까 봐.
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고여들 네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차곡차곡 쌓여 떳떳하고 자랑스러울 내 인생의 소중한 24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눈을 뜨는 지금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인이 그렇게나 그립다. 그렇게나 보고 싶고, 같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항상 꿈꾸며, 함께라면 즐겁고, 기쁜 마음에 행복이 벅차오른다. 흠을 잡으래야 잡을 게 없는 그 사람의 옆에 있는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됐음 한다.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주고만 싶다.
세상에 와서
내가 하는 말 가운데서
가장 고운 말을
너에게 들려주고 싶다.
세상에 와서
내가 가진 생각 가운데서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
세상에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표정 가운데
가장 좋은 표정을
너에게 보이고 싶다.
이것이 내가 너를
사랑하는 진정한 이유
나 스스로 너 앞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이다.
그런 그의 부재가 내 숨을 죄일까? 아닐 것 같다. 그가 내 인생에서 갑자기 빠져나가버리면 슬퍼서 눈물 흘릴 테고, 공허함에 쓸쓸해질 테지만, 내 인생이 방황과 고통에 방치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품은 이 감정이 사랑일까?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고는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없긴 하겠는데 말이야. 잃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잃는데도 분명 잘 견딜 수 있을 거란 확신. 보고 싶을 테지만 보지 못하게 된데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을 거란 믿음. 그의 상실이 뼈저린 고통은 아닐 거란 생각과 그를 향한 나의 감정은 철저하게 모순되어 의구심이 생기고 만다. 지금도 보고 싶어 마음 한구석이 뻐근한 주제에. 이제나 저제나 나 잘났다고 떠들어대지만 너무나 사랑해서, 너무나 불행해질까 무서운 것뿐일지도.
2. 잠수교를 지나 세빛둥둥섬이 보인다. 어느새 사람 가득 실어 도통 속도를 내지 못하고 꿀렁꿀렁 서행하는 버스 안에서 빛나는 배려심이 (마침내) 발휘되어 (드디어) 엉덩이를 떼고 (드디어) 어르신께 자리를 양보한다.(정말이지 최후의 최후까지 미루었다.)
물론 어르신이 편하게 가셨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실은 나 역시 편안히 가고 싶다. 주말은 매주 정말이지 쉽게 오는 법이 없고, 토요일 아침 나의 몸뚱이는 물먹은 솜뭉치마냥 나른하고, 돌떵이처럼 무겁다. 모두들 그렇겠지. 그래서 나 아닌 누군가가 먼저 양보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무거운 엉덩이를 그저 들썩일 뿐, 일어날 타이밍을 그렇게 최대한으로 늦춰보는 것이다.
어쭙잖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타인의 안위를 배려하는 내 모습이 뿌듯하고, 또 그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적극적인 배려는 의무사항이 아니다. 그렇기에 뿌듯한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본인의 목적을 추구하는 인생 또한 선량하다.) 반면,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에 눈곱만치도 스스럼없는 적극적인 이기심은 분명한 해악이다.
본인 안위를 위해 타인과 약자의 안위를 위협하는 부조리한 상황에 다수가 타협하고, 적응하며 살아가는 세상이라면 되려 정의와 도덕의 원칙을 지키는 그 자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셈이다. 모두가 모두의 등을 처먹는 세상이라면 고고한 척 기회가 와도 결단코 남의 등을 처먹지 않는 인간이 등신이 되는 법이다.
(rhyme 뿌듯행)
자유를 누리는 우리네 대한 국민은 비겁해질 권리도 함께 부여받는다. 한번 비겁해진 인생은 비겁하게 획득한 혜택을 몽땅 토해내고, 진심 어린 반성으로 죄책감을 떨치지 않는 한 떳떳해질 수 없다. 그렇게나 어렵기에 한 번의 타협은 영원한 타협으로 자연스레 이어지기 마련이다. 굽신거리고, 남의 등 처먹는 와중에도, 내 등 처먹는 인간을 욕하며 뻔뻔하게 살아나간다. (다 같은 非양심자들)
누군가는 이 부조리한 세상에 나 대신 독박 쓰며 맞서길 바라면서도 융통성이라곤 갈아먹고 고지식하게 맞서는 사람들이 한심스럽다.
여태는 이뤄둔 성취가 미미하여 비겁해질 기회조차 온 적 없다. 그럴 기회가 언젠가 분명 찾아올 테지만 떳떳한 선택을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상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한 지인은 힘들어하는 것들(사람, 동물, 식물)을 보면 마음이 아파 마냥 도와주고만 싶단다. 또 어떤 사람은 종교적 믿음을 실천하고자 베풀며 살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도 했다.
타인을 배려하고, 정의롭고자 하는 근본적 동기는 이렇게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내 경우는 그 원천이 자기애(愛)에 기반하고 있다. 너무나 소중한 나 자신이, 정의롭고 바른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까닭이다. 타의 모범이 되기를.
이것이 내가
사랑하는 진정한 이유,
나 스스로 가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이다.
또다시 빈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요리조리 눈을 굴리며 멀뚱히 서있는 나를, 어르신께서 다급히 부르신다. 바짝 앞으로 다가가니 나에게 양보받은 자리를 다시 돌려주시며 말랑말랑하고 미지근한 귤 하나를 건네신다. 소소하지만 감동받아 버리고 만다.
어르신의 마음에 한번,
나의 배려로 일궈낸 어르신과 나의 따뜻한 아침에 한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