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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hamalg Apr 17. 2017

23. 알면 알수록,

과거는 선명해지고, 미래는 아득해지고.

1.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너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너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게걸스레 파헤치고 탐구한다.

알면 알수록, 서로에게 더욱 탐욕스러워만지는 사랑에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게 아니겠냐며 서로의 존재 자체로 감동받는다. 이렇게 멋진 사람이 나와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단 점에 한번. 내 앞에 나타났단 점에 두 번. 서로를 동시간에 사랑하게 되었단 사실에 세 번.

그렇게 세 번, 우연이 겹치니 운명인가 싶어 진다. 너의 하나부터 셋에 모두 감격해버린 나는, 넷부터 열까지 속속들이 알고싶어져 안달이 날 수밖에.


그리고 어느새 또 육 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평생이 지나도 너한테서 보지 못할 거라 여겼던 모습을 우연하지만, 운명적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마주한 너와의 네 번째 우연이 꽤나 경악스러웠던 나는 문득 겁이 났다. 내가 앞으로 당면하게 될 너의 새로운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모습들이 두려워진다. 몰랐으면 좋았을 너의 네 번째를 땅속에 파묻고 모르는 척 치워버리고 싶다. 평생이라도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괜히 알아버려 나의 믿음이 휘청거리는 게 마땅찮다.


너는 특별하다고.

너는 여태 만났던 거기서 거기인 남자들과는 다를 것이란 나의 굳건했던 믿음이.


과거의 많은 남자들이 일과 스트레스에 치여 피곤해들 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따져봐도 그들은 힘들만했다. 힘이 되어주고 싶었던 나는 밤 열두 시에 쩔어서 퇴근하는 그를 차로 편안히 모셔다 드리기도 하고, 야참을 싸다 바치기도 하고, 매번 모바일 손편지나 그림을 전송하기도 했다. 그저 힘이 되어주고 싶었지만, 나란 존재가 힘이 될 거란 생각 자체가 오만한 착각에 불과하단 사실을 모를 만큼은 어렸었다.

관계의 재앙은 우습게도 항상 그에게 주어지는 간만의 여유와 함께 찾아오곤 했다.

모처럼 일 없이 푹 쉬고만 싶어도 그동안 바쁘고 힘들단 핑계로 당당하게 소홀했던 나에게 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에 눈치가 보여 짜증이 치솟나 보더라고. 나의 '보고 싶다'는 한마디에 욱한 그 사람은 주구장창 '여유로워지면', '이번 건만 끝이 나면'과 같은 의미 없는 약속들로 나의 희생을 당연시했다. 그런 그를 믿고 인내했던 내가 '여유로워진' 그를 당당히 보고파하자, 간만에 찾아온 휴식시간을 빼앗으려 하는 파렴치한으로 내몰렸다.


그날 나에게 욱해버린 너를 보며 과거의 그가 떠올랐고, 간담이 다 서늘해졌다. 내가 보고 싶다길래 집에 데려다주겠단 나의 호의를 다양한 이유로 거절하던 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겠단 나를 끝까지 거절할 순 없었고, 11시까지 데리러 가려 대기 타던 나에게 10시쯤 너무 힘들어서 그냥 집에 가겠단 카톡을 보내버렸다. 그 사건 이후로 예전 같지 않은 나에게 '이번 일만 얼른 끝내면'을 외친 너. 네가 힘들어하는 평일에 이런 이야기를 피하고 싶어 주말까지 아무 일 없는 듯 참아 넘긴 내가 말을 꺼내려 우물쭈물 거리자 인상 쓰며 '사람 마음 갖고 장난치지 말고 빨리 말해.'라고 화를 내는 너.

그러자 나는 정말이지 너랑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그러나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보고 싶다길래 보러 간다는 나를 못 오게 한 그 사건으로 네가 뱉은 보고 싶다는 말의 진정성이 훼손되었다는 점과 나이 먹고 책임질 일이 많아질수록 힘들고 바쁠 일이 계속해서 생겨날 수밖에 없지 않냐는 말에 너 왜 이렇게 예민하냐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았더라면,

역시나 아무 말 않았어야 했는데. 대화가 되지 않는다니. 충격적인 만큼 서글펐다.


나를 사랑하는 너의 사과와, 너를 사랑하는 나의 이해가 이번처럼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까?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 여덟 번, 아홉 번 그리고 열 번을 넘어 영원히?

왜 많은 연인들이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을 약속하고, 6개월 만에 웨딩마치를 올리는지 알 것도 같다.

알면 알수록, 간담은 서늘해지고, 욕망은 소원해지고, 행복한 미래는 아득해지는 건지도 몰라.

그렇게 인연의 끈을 놓아버리거나, 놓쳐버리거나.


2.

중학교 2학년 1학기 때 유학을 갔다. 그 전까진 여자중학교에 다녔는데 친구들과 즐거운 추억을 그 산동네에 참 많이도 남겼다. 먹는 낙으로 살이 통통하게 올랐던 여자아이들은 무서울 것이 없던 만큼, 패기도 넘쳤다. 19금 딱지가 붙은 만화책, 귀여니 소설, 수학여행에서 반 대표로 브리트니 스피어스 언니의 Oops I did it again 댄스를 장기로 선보이겠다며 설치다가 반 망신 제대로 시킨 사건, 기본 4시간씩은 놀아줘야 직성이 풀렸던 노래방.


학교라는 작지만 가차 없이 잔인한 사회에선 응당 세력 신경전이 붙기 마련이다.

외모, 공부, 집안을 기준으로 입학과 동시에 모두의 순위가 순식간에 매겨진다. 머리는 악성 반곱슬에, 토끼 이빨을 장착하고, 세상 어떤 왕눈이도 단춧구녕으로 만들어버릴 기적의 안경까지 갖춘 나의 외모는 꽤나 처참하여 구석에 찌글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엄마가 어릴 때부터 쏟아부은 교육비 덕에 공부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고, 정작 우리 집에는 개뿔 아무것도 없었으나 부잣집 딸내미, 아들내미였던 엄마 아빠 덕에, 초등학교 때부터 잘 사는 집 딸내미 이미지가 굳어져있던 나는 살벌한 신분 피라미드 내에서 중상 정도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1학년 5반의 피라미드에서 우리 그룹과 비등비등했던 다른 그룹 아이들이 전학생이나 소심한 몇몇 아이들의 교과서나 가방에 우유를 뿌려둔다던지 의자를 숨겨둔다든지 하는 어찌 보면 유치하고, 당하는 입장에선 악랄한 장난을 치곤 했는데 나와 친구들은 정의감에 불타올라 지금은 입에도 담지 못할 험한 쌍욕을 그들 들으라며 큰소리로 현란하게 날리며 우유를 닦아주곤 했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아이들을 우리 그룹에 넣어준 건 아니었다.

그저 저 정도의 선의를 베풀며 우쭐했을 과거의 내가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럽다.


증권사 때려치우고 좋은 일 하겠다며 고군분투하는 나와 같은 뜻을 품은 동료들이 한국에 최초로 도입한 제도의 첫 수혜자는 시설에 거주하는 지능지수 71에서 84 사이의 경계선 지능 아동들이다. (자랑인 듯 자랑 아닌 자랑 같은 문장.) 이들은 지적장애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아이들보다 다소 느리고, 방치될 경우 지적장애 수준으로 지능지수가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사업을 통해 이 아이들을 진심 어린 마음으로 보듬어 주고 계시는 멘토 선생님들과 만나 이야기를 듣는 2시간 내내 코끝이 찡하고 목이 메어 뒷골이 당겼다.

어린이라면, 학생이라면, 당연히 누렸어야 하는 그 모든 것들을 처음 경험해보는 우리 아이들은 선의를 베푸는 멘토 선생님들의 진심을 끊임없이 시험해본다. 또다시 어른에게 상처받을까 두려운 마음에. 시설에 거주하는 통에 주어진 시간표에 따라, 주어지는 음식을 먹고, 주어지는 옷만 입어야만 했던 아이들에겐 오늘 하루 무엇을 하고 놀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일처럼 사소한 일조차 생애 최초로 겪어보는 특별한 경험이 된다. 친구가 없어 놀이터에서 시소를 못 타는 아이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외식을 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이번 사업을 통해 멘토 선생님과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맺으며 "오늘은 이모네 떡볶이 집에 가서 순대랑, 라볶이를 먹을 거예요." 라며 신나게 외식 메뉴를 정할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때때로 초등학교 저학년에 불과한 어린아이가 멘토 선생님께 앗차 싶어 묻곤 한다. "선생님, 저한테 시간 쓰는 거 아깝지 않으세요? 저한테 이런 거 주는 거 아깝지 않아요?"

 

중학교 1학년 때, 우리 반에는 항상 웃기만 하는 여자애가 있었다. 잘하는 것이 없었다기 보단 모든 것을 너무도 못했던 그 아이를 반 친구들 모두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가끔씩 우리 그룹이 챙겨주곤 했던 것도 같다. 어느 날 그 아이가 반듯하게 접힌 편지를 건네며 선생님께 전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울면서.

우리는 곧장 교무실이 아닌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편지를 몰래 읽었다. 그 좁고 더러운 화장실 한 칸에 여자애들 다섯 명이 우르르 문을 걸어 잠그고선. 낄낄거리며 들어갔던 우리는 씩씩거리며 곧장 교무실에 쳐들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공책 한 장에 빼곡했던 편지에는 우리와 경쟁그룹이었던 아이들에게 여태 받았던 믿기 어려운 수위의 괴롭힘으로 시작해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내용으로 끔찍하게 심각해지더니, 자퇴하겠다는 결론으로 끝이 났다. 그때 우린 얼마나 순진했던지, 우리끼리의 피라미드가 선생님께도 적용된단 사실을 미처 몰랐다. 피해자를 괴롭혔던 가해 학생들은 피라미드 중상에 있던 만큼 공부도 잘하고, 이뻤으며, 집안도 나쁘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 무엇도 못하는 그 친구보다는, 뭐든지 잘하는 아이들이 이뻐 보였던 것이다.


아이들은 선생님께 한소리 들었던 것 같고, 그 여자애는 그 이후로도 아마 계속 알게 모르게 해코지당했지 않았을까. 사실 기억이 자세하게 나지 않는다. 이제나 저제나 나는 그다지 신경 안 썼던 것 같다.

저 정도 했다는 나 자신의 정의로움에 만족하고, 도취되어 이후의 일에는 크게 관심 없었던 것 같다.

끔찍하고 잔인하게도 무관심했던 어린 나.

요즘 들어 한 번씩 그 아이 생각이 난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멘토 선생님의 학창 시절 이야기가 마음에 여운을 남긴다. 멘토 선생님은 담임선생님을 도와 반 아이들의 시험 성적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항상 꼴찌만 하던 아이가 여지없이 꼴찌를 했더란다. 그 아이는 눈치도 없고 친구들의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해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했기에 그냥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담임선생님이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시더란다. "나는 이 애가 참 이쁘다. 매번 꼴찌를 하는데 얼마나 공부가 싫고, 학교가 오기 싫겠니. 그런데도 결석은커녕, 지각 한번 없이 성실히 학교에 오는 이 애가 나는 참 너무 이쁘다."


나에게 편지를 건네었던 그 친구에게도 저런 담임선생님이 있었더라면, 그 아이의 인생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또 내가 그때 조금만 더 정의로운 사람이었더라면 그 아이의 인생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금융기관 입장에서 보면 마이너스 통장의 이자를 높이고 또 높일 수밖에 없는 비루하고 변변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실제로 증권사 다닐 때보다 금리가 너무 뛰었다. 젠장. 혈기왕성했던 중학교 시절 현란했던 욕 사위가 내 안에서 날뛴다.

좋은 일 한다니 언뜻 착한 것 같아 만만해 보이는 우리 앞에 끝도 없이 등장하는 방해꾼들을 해치우는 데 정작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이 상황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때려치우고 싶어 질 때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 그래도 잊을만하면 이렇게 깨닫는다. 나와 우리가 일구어낸 엄청난 변화를.

나의 중학교 동창은 그러지 못했지만, 이번에 우리를 만난 모든 100명의 아이들은 어쩌면 그들의 남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운명 같은 만남을 가졌다. 멘토 선생님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된 만큼, 아이들도 멘토 선생님들께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 되어주었다고 한다.

변화하는 아이들은 또 얼마나 큰 감동과, 파급력, 영감을 주변에 퍼뜨릴까.


3.

이번 주 화요일, 오빠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밤늦은 시간 잠깐이라도 보고 싶다며 찾아왔다. 하루 종일 함께 했던 토요일, 나는 진심으로 오빠와 같이 보낸 그 모든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막연하기만 했던 결혼이라는 결정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다 결혼 후에도 그 사람이 나를 지금처럼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이 툭 튀어 오른다.

알면 알수록, 아득해질지도 모를 우리의 미래가 불안하지만, 지금 함께하는 우리의 현재가 너무나 황홀하단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흘러도 황홀한 현재가 계속된다면 미래야 아득해지든 불안하든 알바가 아니다.

지금의 미래가 곧 우리의 현재가 될 테니. 지금은 불안해도, 그때가 되면 우린 또 함께 황홀할 테지.


있잖아, 알면 알수록 난 이일을 하길 정말로 잘했다 싶어 진다. 아이들과, 멘토 선생님, 그들의 주변까지 그 모두에게 운명적 사건을 선사한 우리다. 또 앞으로 이 사회에 더 많은 운명적 사건을 만들어낼 나다.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게 되길,

피라미드의 모든 사람들이 부당한 상황을 마주하지 않게 되길.

멘토 선생님의 담임선생님처럼 모든 아이들의 있는 그대로를 이뻐해 줄 담임선생님이 이 땅에 더 많아지길.

과거의 나와 달리 도움을 요청하는 친구의 편지에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학생들이 많아지길.


그리하여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따뜻한 마음으로 행복한 일생을 살아가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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